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남북 대화와 협력을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북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연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단 하루 만에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북 제의를 일일이 거론하며 “뻔뻔하기 그지없는 기만의 극치”라고 매도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광복 70년을 남북 화해의 계기로 삼으려던 박 대통령의 선의가 오히려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재가 된 형국이다.
분단 70년이기도 한 올해는 남북 모두에 민족의 통일염원을 결집시킬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국가 지도자에게는 70년이나 지속된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북이 직접적 도발을 했는데도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는 일은 과거 북의 도발과 협박을 가볍게 보며 대화와 협력에 몰두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다를 게 없다. 어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북의 지뢰 도발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화해와 협력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도 의문이다.
북한이 광복절 전날 DMZ 지뢰 도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도 박 대통령은 추상같은 책임 추궁이나 응징 아닌 ‘대응’을 말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은 김정은이 남북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중지를 요구하는 단골 메뉴다. 그런데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도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면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차라리 경축사에 아무 성과를 못 내고 있는 대북정책에 대한 획기적 재검토를 담았다면 향후 남북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주 임기 반환점을 지나는 박근혜 정부로서는 대북정책의 근간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진전이 없어 남북 대화 재개가 절실할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임기 후반기에 무리하게 남북 대화를 추진한다면 북한의 변화는 고사하고 평화의 기회가 더 멀어질 우려가 있다.
북한은 위기를 맞았을 때, 또는 남한의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 남북 대화에 나왔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는 위기에 빠졌지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기사회생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도 어린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방안을 고민하던 김정일이 주도했다. 제대로 된 남북 대화를 하기 위해서도 정교한 대북 전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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