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진심 없는 아베 담화
담화 발표 막전막후
“오해 없게” 한국어로도 배포 예정… 아베, 담화 직전 아버지 묘소 참배
14일 나온 아베 담화의 내용과 형식은 몇 번이나 뒤집히며 발표 직전까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연립여당 내부의 대립, 국내외의 압력과 요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당초 이번 담화를 각의(국무회의) 결정 없이 총리 개인 견해로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기존 담화들이 패전일 당일에 발표된 것과 달리 일정을 하루 당긴 것도 주목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보법제 강행의 여파로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데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에서 각의 결정을 요구하자 이달 초 과거 담화의 일부를 계승하면서 각의 결정을 하기로 선회했다. 각의 결정은 전체 각료가 서명하는 일본 정부 최고 의사 표명 방식으로 공명당 소속인 오타 아키히로(太田昭宏) 국토교통상도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라야마, 고이즈미 담화는 모두 각의 결정을 거쳤다.
담화의 초안이 일부 핵심 요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7일 밤. ‘사죄’가 빠지고 ‘식민 지배’와 ‘침략’도 명확하게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을 본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이대로는 안 된다”며 핵심 표현을 넣을 것을 주문했다. ‘원조 보수’로 꼽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를 비롯해 친(親)아베로 분류되는 보수 진영도 막판에 ‘사죄의 표현을 넣으라’며 경고 신호를 보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아베 총리는 4대 핵심 키워드(침략, 식민 지배, 반성, 사죄)를 모두 넣되 주체를 모호하게 흐리는 타협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아베 총리가 문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시기는 지역구인 야마구치(山口) 현에 있을 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총리는 12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에 내려가 2박 3일 동안 후원회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예전에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소비세 인상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후에 야마구치를 찾아 심경을 정리하거나 각오를 다지곤 했다. 14일 오전엔 부인인 아키에(昭惠) 여사와 함께 야마구치 현 나가토(長門) 시에 있는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일본 외상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후 도쿄로 상경했고 오후 5시에 임시각의에 참석해 담화 내용을 최종 확정했다. 담화는 각의 개최 직전까지 철통 보안이 유지됐으며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도 불과 몇 분 전 원고를 건네받았다. 이날 담화는 영어와 일본어로 발표됐으며 추후 한국어와 중국어로도 배포될 예정이다. 오해를 최소화하고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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