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만 해선 구조개혁 못해… 멍투성이 될 각오로 나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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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노믹스 ‘마지막 골든타임’]<下> 성장 막는 癌, 규제 혁파하자
―역대 정부 경제정책사령탑 3인의 제언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명박 정부)의 말이다.

“금융감독위원장 할 때 앨런 그린스펀(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두 번 만났다. 한번은 매우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미스터 윤, 자본시장 경제는 단기적으로는 업다운(기복)이 있지만 10년 장기적으로 보면 수정 보완돼 왔다. 우리 감독자들이 항상 유의할 것은 기업이 잘못했을 때 그 기업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정도로, 문을 닫을 정도까지 벌을 줘선 안 된다는 점이다. 기업은 쓰러지기 쉽지만 일어서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게 지금까지 얻은 나의 경험이고 미스터 윤에 대한 답이다.’ 청와대, 국회의원이 돈을 버나? 돈 버는 주체는 기업이고 결국 기업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줘야 하고 기업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윤 장관을 포함해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노무현 정부)과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김대중 정부)은 최근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 ‘기 살리기’와 ‘손톱 밑 가시 뽑기’를 통한 투자 유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성장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산업구조 재편과 서비스업 육성이 해법이라고 내다봤다.

일관성 없는 정책, 시장 신뢰 잃어
“정상적인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국세청이 다음 해에 와서 ‘세무조사 대신 지난해 유보한 세금 좀 더 내라’고 압박하고, 지하경제 양성화한다고 1년 내내 세무조사 받는 기업들이 제대로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윤 전 장관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며 이렇게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내걸고는 세무조사로 기업을 압박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자 갑자기 경기부양 정책으로 돌아서더니 최근에는 ‘부패와의 전쟁’에 나서니 기업과 시장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정책 일관성 결여와 선택과 집중에서의 실패가 오늘날 정부의 경제 운용에 대한 국민과 시장의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의료-교육 등 서비스업 키워야

강 전 장관은 “임기 전반기에 재정정책 역할이 위축됐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정이 경기 조절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복지사회를 추구한다면서 그에 걸맞은 조세구조 개편을 못 했다. 금융도 제 역할을 못 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양적완화 하는데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뒷북을 쳤다”며 정책의 엇박자를 꼬집었다.

이들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필연적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이를 완충시킬 내수 확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제조업 없는 경제는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위험하지만 전 세계의 제조업을 빨아들이는 중국이라는 ‘블랙홀’ 때문에 현실적 대안으로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은 “한국이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는 의료산업 교육 관광 소프트웨어(SW) 등에 투자해서 관련 서비스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구조를 재편하려면 자본과 노동이 경쟁력 있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게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예를 들어 2010년 말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가 났을 때 고용 보장을 놓고 찬반으로 싸울 게 아니라 과연 이 회사가 계속 배를 만들 수 있는 국제 경쟁력을 가졌는지부터 따져야 했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한진중공업이 경쟁력이 없다면 한진의 자본과 근로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산업구조 재편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개혁 이끌 강력한 리더십 절실

“새로 장관 발령 받은 사람이 해당 부처의 정책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에게 설명하러 갔다가 1시간 기다려 3분 만나고 갔다.”

윤 전 장관은 최근 한 부처 장관이 겪은 이야기를 전하며 정치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급한 각종 경제법안이 여야가 모두 동의해야 통과되는 국회 선진화법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정부에서 기득권 세력이나 이념에 얽매인 세력들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도 토로했다. 김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영리병원 도입을 검토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나서면서 일부 진보좌파 세력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공격당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진보좌파 중에는 성장이론 없이 분배만을 이야기하는 ‘껍데기 진보’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국 경제의 회생을 위한 처방전이 약효를 발휘하려면 결국 이해관계자와 이념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했다. 강 전 장관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결은 대통령이 자꾸 지시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며 “여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개혁 대토론을 해서라도 지금의 노동시장이 국민들 눈에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임기가 절반 남은 상황에서 지금 시작해 끝낼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대통령에게 마지막까지 늦은 것은 없다”며 “만신창이에 멍투성이가 되더라도 대통령은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의미 있는 싸움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구조개혁#멍투성이#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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