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갇힌 광화문 유커, 관광버스까지 2시간 걸려 탈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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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집회에 속타는 사람들

1일 오후 5시경 친구와 함께 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찾은 대학생 박모 씨(28·여). 평소 자주 찾던 아늑한 카페에서 수다를 떨 생각이었지만 그의 계획은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시위대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시위대는 신고된 경로를 벗어나 도로를 점거했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최루액이 뿌려질 정도로 시위대와 경찰이 격하게 대치하자 겁을 먹은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했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식 이후 1일까지 2주일 새 세 차례나 대규모 집회로 인해 서울 도심이 마비됐다. 특히 시위대가 도로를 불법 점거하고, 경찰이 차벽으로 통행을 차단하면서 관광객뿐 아니라 시민도 서울 도심을 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근 상점은 손님이 줄고 외국인 관광객은 여행 경로를 바꿔야 하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 “겁에 질린 손님 발길 끊어”

1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세계노동절대회’ 참석자 약 2만 명(경찰 추산) 가운데 일부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와 인사동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인근 상권은 초토화됐다. 금요일 밤은 손님으로 북적이는 ‘대목’이지만 일부 가게는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인사동의 한 카페 주인 이모 씨(59)는 “평소 오후 11시까지 영업하지만 시위대가 가게 앞에 진을 치는 바람에 손님이 끊겨 한 시간 일찍 문을 닫았다. 매출이 30% 이상 감소했다”고 말했다.

집회 현장 인근 상인들은 △시위대의 폭력과 불법 도로 점거 △차벽으로 인한 시민 통행 차단이 영업 손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6일과 18일 세월호 집회가 열린 광화문광장 인근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당시 손님은 모두 자리를 떴고 나도 무서워서 가게 문을 닫고 대치 상황이 끝나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무질서한 시위 문화도 피해를 키우고 있다. 인사동의 한 보석가게 점원 박모 씨(59·여)는 “시위대가 버리고 간 온갖 쓰레기로 가게 앞은 늘 ‘쓰레기장’이 되고 있다. 민주노총 시위가 끝난 다음 날(2일) 아침 가게마다 직원들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쓰레기를 치웠다”고 말했다.

각종 문화공연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도 고충을 겪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대규모 집회 시 예약 고객에게 ‘서둘러 공연장에 와 달라’는 문자를 발송하지만 교통체증 때문에 지각하는 관객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 도심 관광 꺼리는 ‘유커’

광화문광장, 경복궁 등 서울의 관광 명소를 찾는 관광객도 집회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 A 여행사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을 꼭 보고 싶어 하지만 집회와 시위로 인해 일정에 포함시키지 못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1일은 ‘봄 관광주간’(5월 1∼14일)이 시작된 날이었지만 가이드들은 과거에 겪은 집회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불만이 가득했다. 가이드 황모 씨(47·여)는 “청와대를 시작으로 광화문을 거쳐 동화면세점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집회로 인해 일정이 틀어진 적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차벽과 시위대 때문에 관광객의 도보 이동이 불가능한 데다 관광버스도 들어올 수 없다. 황 씨는 “4월 18일 세월호 집회 때는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 2시간을 걸었다. 욕설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을 피하느라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 가이드들은 “면세점 쇼핑을 원하는 관광객이 많은데 일정이 늦어지면서 ‘쇼핑 시간이 줄었다’는 불평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일부 여행사는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지나는 코스를 주말 관광 일정에서 뺐다. B여행사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평일에 도심을 방문하도록 유도하고 주말에는 외곽 지역으로 인솔한다”고 말했다. 가이드 홍모 씨(52·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은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곳인가’라고 문의한다. 불법 집회가 반복되면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박은서·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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