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이병기 실장은 비밀 병기가 돼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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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이 내부논리에 매몰돼 대통령의 이익만을 강화하는
청와대속 비밀병기가 돼선 안돼
국민과의 괴리 방지가 급선무… 당정, 야당과의 관계 정상화하고
빠른 의사결정과 정책조정 필요
이번 비서실장도 실패하면 다음 실장엔 관심조차 없을 것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의 대통령비서실장 발탁을 놓고 말들이 많다. 종합해 보면 형식과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는 특징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회전문 인사’ ‘수첩 인사’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8개월 만에 국정원장을 갈아 치운 것도 비난거리다. 타이밍도 늦었다. 이런 비판은 모두 타당하다. 그에 비해 인물과 능력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후한 편이다.

이번 인사는 이병기라는 개인도 개인이지만 대통령의 변화라는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그동안의 인사에서 참담할 정도로 실패를 거듭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는 이유로 정책의 실패보다 불통과 인사 실패가 많은 것은 자업자득이다. 국민 정서와 한참 괴리된 판단의 결정판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을 공개적으로 감싸고, 장관과 수석들에게 “대면 보고가 필요하냐”고 물은 연두기자회견이다. 그 결과가 지지율 30% 붕괴다.

정보 수장을 비서실장으로 데려다 쓰면 비판받으리라는 걸 대통령이 예견 못 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를 강행한 것은 이 실장의 특장이자 본인에게는 부족한 ‘소통’을 사려 한 것이고, 이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인사 원칙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니냐는 추정을 하게 한다.

이 비서실장은 1981년 노태우 정무장관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몸을 담은 이후 주로 비서와 참모, 기획자로 일해 왔다. 그가 자신이 한 일을 내세우지 않는다거나 입이 무겁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런 경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주일대사는 어찌 보면 최초의 지휘관 역할이었다.

지난해 7월경, 일본의 한 기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 대사가 국정원장으로 내정돼 귀국한 직후였다. 그 기자는 대사관 직원 대부분이 이 대사의 취임사를 기억하며 그가 1년 만에 이임하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이 대사는 취임사에서 “대외적으로는 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지만, 사실상 외교관 개개인이 대한민국이다. 소신껏 외교 활동을 해 주길 바라며 문제가 생긴다면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대사로 취임할 때도 한일 관계는 매우 안 좋았다. 몸을 사리는 것이 상책일 때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가 조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제3자의 입을 통해 엿본 기회였다.

그는 비서와 참모 역할을 오래 했지만, 다른 비서나 참모와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가끔 가다 꼭 필요한 말이나 적절한 제안을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정치적 멘토’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 그렇다고 그에게 흠결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험난한 무대에 올라섰다.

이 실장은 내부 논리에 매몰돼 대통령의 체면이나 이익만을 옹호하는 청와대만의 막강한 비밀 병기가 돼서는 안 된다. 비서실장의 파워가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지 않고, 수석들을 장악하는 데만 쓰인다면 오히려 해악이다. 지난 2년간 대통령비서실의 실패는 거기서 기인한다. 이 실장이 가장 고심해야 할 일은 대통령이 국민과 괴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소신이라는 것이 종종 ‘오기’로 비쳤음은 이미 증명됐다.

여당과 정부, 야당과 언론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요즘 대통령이 그런 의지를 보여 주곤 있지만, 결과에 대한 확신은 없다. 집권 3년 차에 뭔가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원래 그래야 하는데 그러하질 못했고, 이를 보는 국민은 불편했다. 이 실장의 발탁은 청와대의 힘을 줄이고 당정의 힘은 늘리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한다. 관측일 뿐이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의사 결정의 속도를 높이고, 할 일과 하지 못할 일을 빨리 정리하는 정책 구조조정과 완급조절에 나서야 한다. 국민은 너무 더딘 결정을 의아해하고, 안 될 일을 대통령만 된다고 하는 데에 의문을 품고 있다. 이는 대통령비서실이 바로잡지 않으면 다른 데서는 손도 못 댈 고질이다. 흔히들 직을 걸고 직언하라고 한다.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 그러라고 하는 것은 공허하다. 직언이 어렵다면 ‘진언’이라도 자주 했으면 한다. 진언 속에 진실과 해결책이 들어 있다면 그나마 대통령을 바꿀 수 있다.

만약 비서실장으로서 한계를 느낀다면? 진퇴야 본인이 결정하겠지만 국민은 다음 비서실장이 누가 되는지에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미 그런 시점에 접어들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이병기#비밀 병기#인사#실패#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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