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윤회·3인방 의혹, 대통령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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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사태가 혼란스러운 진실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조금만 확인해보면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하면서 몰아가는 자체가 문제”라며 ‘사실 확인 없는 보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정 씨와 갈등설이 불거졌던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바로 다음 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문건이 엉터리라고 보기만 어렵다. 박 대통령은 과연 사실을 확인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 씨는 2007년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난 이래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청와대 내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비서관들과 연락도 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에 따르면 정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조 전 비서관이 올해 4월 10, 11일 청와대 공용 휴대전화로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오고 ‘정윤회입니다’라는 문자가 와도 받지 않았더니 이재만 비서관이 자신에게 “(정 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 씨와 이 비서관 사이에 서로 연락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조 전 비서관은 내부 감찰과 인사 검증,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를 해오며 3명의 ‘문고리 권력’ 비서관들과 적잖은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올해 1월 ‘정윤회 동향 문건’을 작성한 박모 행정관(경정)과 조 비서관은 각각 2월과 4월 청와대를 떠났다. 당시 청와대는 조 전 비서관의 경질에 대해 “조 비서관이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했다”고 설명했지만 정 씨의 전화를 외면한 바로 다음 주여서 보복 인사였을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이 파문의 확산을 덮는 데 급급한 비서진의 말만 듣고 사실 관계를 예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조 전 비서관이 증언하는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은 한숨이 절로 나올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말경 청와대에 들어올 경찰관 1명을 검증해 부적격에 해당하는 ‘부담’ 판정을 내렸으나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전화로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묻고 나서 청와대 파견 경찰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행정관을 선임행정관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도 검증 대상이었지만 이재만 비서관을 통해 그냥 발표가 나갔다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도 않고, 대체 누가 추천했느냐는 소리가 나오는 고위직 후보자가 줄을 이었던 배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청와대의 인사기강 해이를 감독할 김기춘 비서실장은 여태 아무런 감(感)도 잡지 못했던 것인가, 알고도 자리 보전만 꾀했던 것인가. 박 대통령은 언론의 문건 유출 보도를 계기로 불거져 나온 국정시스템의 왜곡 징후를 바로 봐야 한다. 박 대통령 발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정 문란을 똑바로 파악하고 일벌백계해야 국정이 바로 선다.
#정윤회#대통령#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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