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대통령 탄핵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헌법 65조에 국회가 대통령 등에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도 있다고 명시돼 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라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면 탄핵소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2004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나섰다.
여기서 대통령 탄핵의 법리적 공방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당시 사건은 국회가 과연 선출된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자격을 갖췄느냐는 근본적 문제를 던졌다.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시비는 깨알같이 들춰내면서도 정작 국회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국회의 권능’ 운운한 것이 민심을 거스른 것이다. 국회는 자신에 대해선 눈을 감았고,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해 총선에서 국민들은 탄핵 주도 세력을 심판했다.
치열한 정치 현장에서 말은 화려하다. 상대방을 무릎 꿇리기 위해 온갖 수사가 동원된다. 하지만 국민은 ‘겉말’보다는 말의 이면을 보고 싶어 한다. 그 말을 하는 ‘누구’를 주목한다.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그 정도로 떳떳한 삶을 살아왔는지 비교해 보는 것이다.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국민으로부터 거부당하면 말은 말일 뿐이다. 울림이 없고, 오히려 역풍이 분다. 2004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은 이런 메신저 거부 현상을 간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연루된 대리기사 폭행 사건을 놓고 야당 일각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김 의원이 비례대표 초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너무 사건을 부각시킨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갑을(甲乙)’ 논란을 주도하며 ‘을(乙) 지키기’에 나섰던 과거에 대해선 눈을 감았다.
야당은 지난해 7월 ‘을(乙)지로 위원회’ 차원에서 전국 대리기사들이 겪고 있는 불공정 피해 실태를 낱낱이 공개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대리기사는 “들어온 콜을 5초 안에 승인하지 않으면 벌금이 500원이고, 5초 동안 콜을 보지 못해도 500원, 너무 먼 곳이라 가지 못해도 500원, 이렇게 빠져나가는 돈이 월 10만∼15만 원”이라고 증언했다.
1년 뒤에 일어난 이번 사건은 대리기사가 콜을 받은 지 30분 넘게 기다리다 촉발됐다. ‘갑질’을 막겠다며 대리기사 증언을 부각하다가 정작 자신들의 ‘갑질’ 논란에 대해서는 침묵하면 발언의 진정성을 누가 믿을까. 당시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피해 사례를 들어보면 정말 불공정의 막장이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한 번쯤은 대리기사 편에 서서 당 내부에 칼날을 들이대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뒤늦게 사과에 나섰지만 진솔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이유다. 야당의 메시지는 숱하게 쏟아졌지만 메신저인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도 마찬가지다. 지금 개헌 논의의 핵심은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나누자는 분권형 개헌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는 ‘충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여야 정치권에 묻고 있다. “정작 당신들이 이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개헌 논의를 놓고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선주자의 미묘한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정치적 함의까지 거론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 대해 ‘경제의 블랙홀’ 운운하며 비난한 것도 신경 쓸 필요 없다. 메신저인 여야 정치권의 신뢰가 핵심적 문제다. 자칫하면 여야 정치권이 ‘권력 나눠 먹기까지 하려고 하나’라는 한마디만으로 개헌 동력은 사그라질 수 있다. 국회의 추락이 끝 모를 사이, 여야가 벌이는 혁신 경쟁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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