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 딜레마… 배당 챙길 개인주주 지분 20%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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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부총리 “기업이익 임금-투자-배당으로 가면 세금 안늘게 할 것”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겨 기업의 이익을 가계로 흐르게 하려는 정책에 대해 “관련 세수가 ‘제로(0)’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에 당근을 줘서 투자, 임금, 배당이 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 정책이지 기업을 쥐어짜 세수를 늘리려는 취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5단체장들과 만나 “결코 세금을 더 걷으려는 의도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런 설명에도 기업들은 여전히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주 후반에 발표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유보금 과세의 구체적인 방법이 확정되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실익을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 인센티브로 투자 유도

최 부총리는 경제5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 이익이 임금, 투자, 배당으로 가면 세 부담이 늘지 않도록 세제를 설계하겠다”라며 기업들을 다독였다. 현금을 과도하게 쌓아두지 않고 내수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사내에 현금을 많이 쌓아둔 기업에 과세하면 법인세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 세수가 0원이 되도록 하겠다’는 최 부총리의 발언은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을 인센티브 제공 방식으로 기업에 돌려줘 ‘세금 부과 및 인센티브 제공’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실제 최 부총리도 취임 직후 “유보금 과세나 인센티브를 통해 가계로 흘러가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인센티브가 포함된 세제를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인위적으로 투자를 유도하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기업이 투자를 못하는 건 자신 있게 투자할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혜택이나 불이익을 준다고 해서 확신도 없이 투자를 결단할 순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임원은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뛰다 보니 투자 자체가 대부분 해외에서 이뤄진다”며 “사내유보금을 투자하더라도 이를 국내에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 “배당 늘리면 외국인이 더 유리”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기업의 투자를 늘리려는 정책 방향에는 찬성하는 편이다. 하지만 투자 유도뿐만 아니라 배당을 확대하거나 임금을 높이라고 기업을 압박하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국내 증시에 외국인투자가의 비율이 높다 보니 설령 배당을 늘리더라도 외국인투자가나 기관투자가에게 돌아가는 배당 수익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분이 낮은 개미투자자에게 돌아갈 이익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배당을 늘린다고 가계로 돈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배당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주로 큰 기업들인데 대기업일수록 외국인 지분이 높다”며 “개인주주의 지분이 평균적으로 2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배당해도 내수 진작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 활성화는 기업에 가장 부담스러운 카드다. 임금을 무리해서 올릴 경우 기업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꼭 임금으로 사내유보금을 소진해야 한다면 월급을 올리기보다 휴가비, 성과급 등을 올리는 쪽을 선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돈에 꼬리표를 붙일 수 없는 상황에서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기업이 보유한 현금 중에는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이 섞여 있는데 전체 현금이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과세하면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LG경제연구원은 국내 상장사의 경우 최상위 20%에 속하는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 비율이 8.9%인 데 비해 자산규모가 60∼80% 구간에 속하는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 비율은 11.6%라고 분석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 중 차입금 여부를 가려내는 방법을 내놓지 않는다면 과세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세종=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사내유보금#최경환#개인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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