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광목]한국 사법부에 묻습니다, 정의의 실현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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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목 미국 시애틀 거주 Lee & Associates, CPA 대표
이광목 미국 시애틀 거주 Lee & Associates, CPA 대표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의 목적은 인간의 안전 보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을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국가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구속하는 궁극적인 원인과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제한적 권리인 자기방어권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자기 보존의 기회를 높이고 그를 통해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이루는 데 있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 비로소 안전과 행복이라는 목표를 더 잘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적인 보복의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국가라는 공동의 합의체에 그 권한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국가의 필요성과 존립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요즘 한국의 사법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궁극적인 의문이 들 때가 많은 것은 아마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 피해자보다 가해자 권리 더 치중하는 한국

한국의 법 집행과 판결을 보고 있노라면 경찰이나 판사들의 주된 관심사가 정의의 실현, 곧 범법자에 대한 응분의 처벌과 피해자의 권리 보호 그리고 범죄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공동체의 안전을 확보하기보다는 범법자의 인권 보호에 더 중점을 둔 듯합니다. 가끔 한국 뉴스를 보면 피의자가 체포되는 순간부터 경찰이 피의자 얼굴에 모자를 깊이 눌러 씌우거나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 도무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를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또 음성도 변조 처리하고 사진도 흐릿하게 합니다.

하지만 인권 문제에 가장 민감한 나라인 미국조차 이렇지는 않습니다. 피의자를 연행하는 장면에서부터 신문이나 TV 화면에 얼굴을 공개해 일반 시민으로 하여금 동일한 범죄자로부터 반복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이들에게 내리는 형량도 대부분 판결에서 형량이 미국에 비해 너무 가벼워 과연 한국 사법부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범죄 발생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범죄에 대한 형량 선고 시 아주 대조적인 기사가 났습니다.

5월 28일자 시애틀타임스 지역 뉴스에는 원가 20만 달러(약 2억400만 원)어치에 해당하는 경전철 송전용 구리선을 절단한 뒤 훔쳐 판 절도범에게 미국 검찰이 징역 16년을 구형했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같은 날 한국 신문을 보니 인터넷 토론방에서 자기를 비난한 사람을 찾아가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범에게 내려진 원심 징역 15년이 항소심에서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동일한 비교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미국 절도범보다 낮은 형량입니다.

미국 일부에서는 아직도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소수의 주에서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도 했지만 대다수(50개 주 중 32개) 주에서는 이를 고수하고 있고 형 집행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형집행에 참관하도록 해 직접적인 보복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응어리진 한을 해소시킬 최소한의 배려를 해줍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국가가 개인을 대신하여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 비해 국가를 신뢰하고 준법정신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러 가지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범죄자 인권 보호가 국민 안전보다 중요한가

과연 사형제가 폐지되고 범죄 형량을 가볍게 하는 게 문명화의 척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백 보 양보해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높은 ‘선진화’ 정도를 과시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안전 보장’을 희생해도 좋은 것일까요. 범죄자 인권 보호라는 작은 것을 추구하려다 국민의 안전 보장이라는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묻고 싶습니다.

미국에서는 법무부를 정의부(Department of Justice)라고 합니다. ‘법에 관련된 일’을 하는 법무부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을 위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법과 국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국민들의 준법 의식이 약한 것을 두고 지도층부터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변명이요 핑계일 뿐이며, 왜 ‘내’가 또는 ‘당신’이 지키지 않았는가에 대한 진정한 대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법을 지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나의 ‘안전 보장’과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국가가 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개인들은 탈법을 통해서라도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법을 지키는 것보다 지키지 않는 데서 오는 이익이 더 크다면 법을 지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피해자보다 가해자 인권 보호를 우선시하며 범죄에 대한 처벌에 관대한 사법 관료야말로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준법정신을 훼손하도록 만듭니다. 미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지만 한편으로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는 강하게 지키려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공산주의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입국을 불허할 뿐만 아니라 미국시민이 될 자격을 주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전쟁의 참상을 겪었고 지금도 북한과 대립 중에 있는 한국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부정하는 세력에도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쉽게 망각하는 민족치고 패망하지 않은 전례가 별로 없는 인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그 장래가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한국의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에게 묻습니다. 사법부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당신들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낸 세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정당성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들은 과연 우리가 합의로 구성한 공동체를 보호하고 또 구성원들이 ‘국가가 나를 대신하여 정의를 세워 주었다’라고 공감할 판결을 하고 있었던가요.

한국은 ‘국가개조’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지금 온 나라의 분위기는 무능한 행정부의 질타에 맞추어져 있으나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포기한 데에는 사법부의 책임이 행정부보다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동체를 지켜내지 못하는 사법부는 존재할 정당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법부의 대오각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광목 미국 시애틀 거주 Lee & Associates, CPA 대표
#인권문제#인권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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