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그 정도 사과와 ‘셀프 개혁’으로 국가개조 될 것 같은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에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 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는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13일 만에 국무회의 모두(冒頭) 발언처럼 밝힌 사과에 국민이 감동과 위로를 받았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사과가 경솔해서도 안 되지만 이번 경우 대통령은 사과의 시기를 놓쳤고 형식도 기대에 못 미쳤다. 참사의 1차적 책임은 세월호에 있다 해도 어린 생명을 구할 시간이 분명 있었음에도 국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못했다. 온 국민이 동영상으로, TV로, 카카오톡 메시지로 똑똑히 목격했기에 충격은 더 크다.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대통령은 희생자와 유족,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을 마주 보며 진심어린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고 다음 날인 17일 진도 현장과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들을 질타만 했지 공무원의 고용주인 국민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행정부의 수반도, 국정의 책임자도 아닌 듯한 모습이어서 일각에선 ‘유체 이탈’ 화법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어제 경기 안산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박 대통령을 만난 유족들은 “이제 어느 나라 경찰에, 군대에 우리 아기들을 살려 달라고 해야 하나” “선장 집어넣고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해양수산부부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달라”고 호소했다. “내 자식이 이렇게 됐으면 내가 어떻게 할 건지 그 마음으로 해 달라”는 당부를 들으며 박 대통령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에 대통령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통합으로 승화시키는 리더십을 보여야 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과거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積弊)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나도 한스럽다”며 공직사회 개혁을 예고했다. 그러나 ‘관(官)피아’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관료사회의 적폐를 확실히 드러내고 해결해야 한다면서도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가 소속 기관의 병폐를 찾아서 고쳐야 할 것” “공무원 임용방식, 보직관리 등 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해 개혁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지시하는 데 그쳤다. 대통령의 주문 몇 마디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면 아직도 대한민국이 이 모양이겠는가. 국가정보원 개혁에서 보듯, 공직자들의 손에 스스로의 개혁을 맡기는 ‘셀프 개혁’으로 공직사회 변화가 올 것으로 믿는 국민은 없다.

지금도 일부 관료는 세월호 침몰이 “운이 나빠 생긴 일”이라며 “이번 고비만 넘기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다. 정권은 5년이고 공무원은 30년을 한다며 여론이 잠잠해지기만 기다리는 공무원 천지다. 장관들이 개혁방안을 내놓아도 공무원들의 이런 마음가짐을 퇴출시키지 않는 한 ‘국가 개조’는커녕 공무원 개조도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부터, 장관들부터, 말을 뛰어넘는 일대 결단과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세월호#박근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