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원 “외교경로 말고 협조자 통해 문건 받자” 사전모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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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외교전문 등 통해 기획회의 확인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공식 외교 경로로 입수됐다는 중국 허룽(和龍) 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발급확인서’가 국가정보원의 내부 회의를 통해 ‘기획입수’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검찰 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국정원의 내부 보고서 및 국정원 본부와 직원들 간 비밀 의사소통이 담긴 외교 전문에서 출입경기록 발급확인서를 입수하기 위한 국정원의 기획회의가 있었던 것을 포착했다. 그동안 이 문서는 대검이 우리 외교부를 거쳐 중국 당국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받은 문서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이 중국 쪽 협조자에게 이 문서를 받을 방법과 날짜, 시간 등을 협의한 뒤 몰래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방식을 거친 것은 가짜 문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기획회의’ 국정원 윗선까지 보고받아

국정원 기획회의에서는 “지린(吉林) 성 공안청으로부터 확인서를 바로 받지 말고 지린 성 공안청→허룽 시 공안국→주(駐)선양 총영사관, 3각으로 경로를 거치자”며 문서 입수 과정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발급확인서를 받는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 놓고 팩스를 주고받아야 한다고 논의했고, 실제 누군가를 통해 정해진 시간에 은밀하게 받은 것도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해당 문서에 찍힌 발신기록에 스팸번호가 찍혔다가 허룽 시 공안국 대표번호로 바뀌어 다시 보내졌다.

검찰은 국정원의 기획회의가 가짜 문서임을 숨기려 한 조직적 범행의 근거라고 보고 있다. 협조자와 협의해 몰래 넘겨받는 과정이 치밀한 ‘각본’에 따라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들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식 경로로는 발급받을 수 없는 문서여서 중국 측 내부 협조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중국 측 협조자가 노출되지 않게 하려면 입수 방식과 경로 등을 기획하고 협조자와 협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 이 처장, 문서 입수 과정 총괄 기획

검찰은 22일 소환 조사한 국정원 이모 처장(대공수사국 팀장·3급)이 전문 등을 통해 이 기획회의뿐 아니라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유우성(류자강·34) 씨 관련 문서들의 입수 과정을 대부분 보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처장이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보고받았거나, 최소한 포괄적으로 지시 또는 묵인한 핵심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처장이 총괄 기획을 했다면 김모 과장(대공수사국 파트장·4급·구속)은 협조자를 통해 입수한 유 씨의 출입경기록과 출입경기록에 대한 발급확인서, 협조자 김모 씨(61·구속)가 위조했다고 자백한 싼허(三合)변방검사참 문건 등 문서 3건의 입수 과정 모두에 관여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자살을 기도한 권모 과장(대공수사국 파트장·4급)은 문서 입수에 직접 관여하기보다 문서 입수방법을 설계하고 이인철 주선양총영사관 영사가 ‘가짜 영사확인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15시간에 걸쳐 이 처장을 조사하면서 보고 및 지시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그러나 이 처장은 “애초에 직원들이 문서 위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위조 여부를 알 수 있는 보고는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최예나 기자
#간첩사건 증거조작#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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