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고구려 이야기]<8>고구려 700년 역사 가능케 한 힘은 ‘광대역 외교’

윤명철 교수 입력 2014-03-18 03:00수정 2014-07-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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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이후에 고구려 영향권으로 편입된 흥안령 일대(훌룬보이르 초원)에서 말을 방목하는 모습. 고구려는 이 지역의 말을 군수물자로 중국 남조 국가들에 수출했다. 윤석하 사진작가 제공

윤명철 교수
고구려는 700년 이상 강국으로 존재한 국가다. 동아시아에서 40개 가까운 국가들과 종족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중국 왕조의 평균 수명이 200년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존재감이었다.

고구려는 중국이 분열하면 공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수나라 당나라처럼 통일 국가가 출현하면 인근 말갈 돌궐 등 부족들과 연합전선을 펼쳐 국제전을 전개하는 역동적인 국가 전략을 구사했다. 고구려의 외교 전략은 역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양과 육지를 연결하는 무역망을 만들었고 일본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망라하는 광대역 외교정책을 펼쳤다.

다중-실리-평화-중재 외교 펼쳐


먼저 고구려의 지정학적 환경을 보자. 고구려는 만주 일대를 포함한 중국의 동북부, 연해주를 포함한 러시아의 동남부,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대륙국가이자 해양국가였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고구려를 ‘해륙국가’라고 부른다.

황해와 동해 남태평양 등 고구려를 둘러싼 바다는 마치 서양의 지중해처럼 교역과 교류의 내해(內海) 같은 특성을 지니는데 필자는 이를 ‘동아지중해(동아시아 지중해)’라 칭해 왔다. 그 동아지중해의 중핵 국가가 바로 고구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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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북방 초원은 물론이고 해양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까지 교류를 활발히 했는데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인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교역 중심지였다. 실제로 사마르칸트 벽화에는 고구려 사신이 확실시되는 그림이 나온다.

400년 동안 지속된 중국 지역의 분열은 외교 강국으로서의 고구려의 위상을 드넓게 확장한 배경이 되었다. 이때 고구려의 외교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등거리 다중 외교다.

둘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실리 외교다.

셋째, 해양과 대륙에 걸친 전방위 외교다.

넷째, 대화와 협상을 중시하는 평화 외교다.

다섯째, 주도권을 쥐고 조정하는 중재 외교다.

중국은 후한이 멸망하면서 삼국지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소위 ‘삼국 시대’가 열린다. 208년에 위나라와 오-촉 연합군 간에 벌어진 전투가 바로 그 유명한 ‘적벽대전’. 이 전쟁에서 조조의 위나라군은 대패한다.

조조가 죽은 후 오나라 손권은 위나라를 배후에서 압박하고 군마(軍馬)를 얻기 위해 요동 지방의 공손씨 정권에 사신을 파견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하고 사신들은 억류당한다. 그런데 이 사신들 중 일부가 고구려로 탈출하면서 고구려와 오나라의 외교가 시작된다.

233년 고구려는 오나라 사신들을 돌려보내면서 값비싼 담비 가죽 1000장, 할계피(꿩과의 새) 10구 등도 함께 보낸다. 이때 고구려 배는 황해를 1000km 정도 내려가 상하이 만을 통과한 후에 양쯔 강을 따라 지금의 난징인 건업까지 들어간다.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고구려와 동맹을 맺는다.

이후 중국에는 남쪽은 동진, 북은 ‘5호 16국 시대’라는 대분열 시대가 도래한다. 황해 북부를 둘러싸고 고구려, 백제, 연, 후조, 동진 등 5개 나라가 각축전을 벌인다. 고구려 미천왕과 고국원왕은 요서 지방에 있는 연나라를 포위하는 정책을 쓰는 한편 화북 평원에 있는 후조와도 군사동맹을 맺었다.

후조는 300척의 배에다 곡식 30만 곡(5400만 L)을 실어 황해를 건너 고구려에 보내고 수륙합동으로 연을 공격할 것을 제안한다. 고립된 연나라는 포위망을 풀기 위해 남쪽의 동진과 우호관계를 맺고, 그 즉시 고구려는 사신단을 동진에 파견한다. 분열된 중국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활용하는 이 절묘한 등거리 다중외교는 광개토태왕 장수왕을 거쳐 문자왕 시대까지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이런 상황이니 중국 대부분의 나라는 고구려와 외교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워낙 군사적으로 강국인 데다가 무역이 활발했으므로 고구려를 적대시했다가는 적국이 되기 때문이다.

400년간 200여회 中에 사신 파견

약 400년 동안의 중국의 분열 시기에 고구려는 200회 가까이 중국 지역에 사신을 파견했다. 북위는 물론이고 남조의 동진, 송나라, 제나라, 양나라에도 광범위하게 자주 파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해를 건너 왜국과도 교류하였고, 문자왕 때에는 제주도로 추정되는 섭라와도 무역을 했다. 그러면서도 백제, 신라, 가야가 국제 질서에 진입하지 못하게 바다에서 차단하여 외교적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다시 말해 북방 종족들과는 군사적인 대결을 자제하고 교역이나 연대를 하고 남북조와는 등거리 외교와 무역을, 그리고 백제, 신라, 왜와는 화친을 하면서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복합적인 고난도 외교정책을 구사했던 것이다. 고구려는 또 바다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중요한 항구들을 확보해 이 항로들을 장악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강대국들 사이에서 중심 역할과 조정 역할을 하면서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떠오른 고구려였지만 중국이 통일되면서 도전에 직면한다. 더이상 등거리 다중 외교는 불가능해지고, 조정 역할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마침내 국력을 확장하려는 중국 통일 국가와 국가의 운명을 건 일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수, 당과의 전쟁이었다. 오랜 전쟁을 치르며 고구려의 국력은 약화되었고 마침내 국제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통일한국, 국제사회 역할 제시해야

2014년 동아시아가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화대국을 내건 중국, 제국 부활을 외치고 있는 일본, 태평양 재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러시아, 동아시아로 향하는 미국 등이 ‘신대륙주의’와 ‘신해양주의’라는 이름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유라시아 벨트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새로운 중심이 된 것이다.

남북관계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으로 불을 지피며 통일 논의도 무성해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통일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역, 외교와 국제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 전략을 새로 세우고 국제 사회에 대해 비전을 고민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통일을 위한 현실적인 전략으로도 필요하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묵인과 동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국가전략과 탁월한 외교정책을 이 시점에서 재조명해볼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윤명철 교수
#고구려#외교#사신 파견#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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