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이혼하라는데 나마저 떠나면 안될 것 같아…”

동아일보 입력 2013-11-25 03:00수정 2013-11-2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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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上> “피해자는 더 할텐데…” 말 못하는 고통의 나날
아내의 ‘고통’
강도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복역 중인 남편이 류은희(가명) 씨에게 보낸 편지.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류은희 씨(가명·52·여)는 붉은 정장 바지를 입고 빨간 양말을 신고 있었다. "빨간색을 좋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혼자 집안 꾸리는 여자는 어디서 무시 안 당하게 강해 보여야 한다"고 답했다. 빨랫감이 어지럽게 널린 임대 아파트의 한 쪽엔 손바닥만한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1999년 찍은 사진 속에서 은희 씨는 남편 강준규 씨(가명·52)와 승용차를 세워두고 강변에서 웃고 있었다. 2003년 10월 20일 남편은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돈을 뺏기 위해 차 뒷좌석 안전벨트를 끊어 50대 남성을 묶고 때려죽인 뒤 야산에 유기했다. 은희 씨의 남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도살인범이다.

범행일이 다가오던 2003년 10월 초부터 남편은 3, 4일씩 외박이 잦았다. 은희 씨의 전화를 받으면 "친구 소개로 업소에서 색소폰을 분다. 먼 데 있는 곳이라 나오면 여기서 며칠씩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한 기술도, 직업도 없던 남편은 색소폰을 잘 불고 노래를 곧잘 했다. 교회 행사를 다니며 연주를 해주고 '기름값'으로 5~10만 원씩을 받아오던 남편이었다. 걱정이 됐지만 가사도우미 일에 바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은희 씨는 남편이 검거된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돌을 막 지난 늦둥이 딸을 안고 남대문시장에서 장을 봤다. 남편의 전화가 와 짐을 든 채 엉거주춤 받았다. 행사에 다닌다던 남편은 한참 말을 못하더니 "경찰에 잡혔다"며 울먹였다. 손에 든 짐은 놓쳤고 품속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허겁지겁 집에 도착하니 형사들이 들이닥쳐 장롱 서랍을 열고 뒤지고 있었다. "왜 이러시느냐"는 말에 "남편 분을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는 답이 돌아오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형사들이 주저앉은 은희 씨를 일으켜 경찰차에 태웠다. 며칠 만에 고양경찰서에서 본 남편은 수갑을 차고 있었다. 끌어안고 통곡을 하는 남편의 품 안에서 정신이 혼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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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를 받으며 남편이 결혼 전 상습 절도 전과로 수차례 복역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형사는 "아는 척은 하지 말라"며 "(남편이) 아내에게는 숨겨달라고 했다"고 했다. 배신감과 공포감에 휩싸였다. 은희 씨에게는 두 번째 결혼이었다. 일하던 교회 옆 식당에서 만난 남편은 은희 씨와 은희 씨가 전 남편과 낳은 아들을 모두 아꼈다. 결혼 후 함께 트럭을 사서 군밤, 군고구마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림을 이었다. 2000년 남편이 사기 사건에 휘말려 2년 간 모은 전 재산 8000만 원이 날아갔을 때도 무릎 꿇고 우는 남편을 은희 씨는 버리지 못했다. 그 남편이 하루아침에 살인범이 돼 있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매일 TV로 7시 아침 뉴스와 9시 저녁 뉴스를 챙겨봤다. 망연자실해 집에 있던 어느 날 저녁 켜져 있던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는 남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설명했다. 화면에서는 남편이 경찰에 둘러싸여 현장 검증을 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 올케가 "지금 방송 봤어요? 고모부(남편) 같은데?"라고 물었다. 겨우 "글쎄, 모르겠어"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날부터 어린 딸을 안고 사흘간 피해자의 집을 찾아갔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피해자의 노모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찾아가 '식모로 10년이고 20년이고 부모처럼 모시겠다'는 심정으로 울며 빌었다. 굳게 닫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이웃 주민들이 흘낏거렸다. 피해자의 아들이 "살인자 만나면 밟아 죽여버리겠다"고 하며 돌아다닌다는 말이 있었지만 무서움도 느낄 수 없었다.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지만 아무에게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중학생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과 싸우다가 실수로 크게 다치게 해서 조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다니던 교회에도 나갈 수 없었고 십수 년 연락해온 동창들도 만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말이 헛나가 소문이 퍼질까 두려웠다. 전셋집을 처분하고 다른 동네에 월세 임대아파트를 얻었다.

3남 1녀 중 막내로 귀하게 자란 은희 씨였다. 친정 오빠들은 하나같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이혼하라고 종용했다. 형편이 급속히 어려워지며 시댁 쪽과의 연락도 끊겼다. '늦둥이가 없었으면 정말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났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도, 자신만 바라보는 두 자식도 버릴 수 없었다. 식당 서빙일, 배달, 영업 등 할 수 있는 일은 밤낮 없이 했다. 다만 스스로가 나쁜 마음을 먹을 게 두려워 매일 새벽 교회를 찾았다.

10년이 흘렀다. 초등학생이 된 딸은 아직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 실수로 사람을 크게 다치게 했다고 알고 있다. 아들은 힘든 형편에 결국 대학을 그만두고 대형마트 경비 일을 하며 어머니를 돕는다. 하지만 커 가며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더 이상 면회를 함께 가지 않는다. "나마저 이 사람을 떠나버리면 감옥에서 혼자 자살할 것 같았다"는 은희 씨만 아직도 매달 한 장씩 남편에게 편지를 부치고 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흉악범 가족#가해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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