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폭탄’ 출격기지가 평화수호 성지로 둔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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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우경화의 뿌리, 현장을 가다]<2> 침략전쟁을 미화한 특공대 기념관

일본 미나미큐슈 시 지란특공평화회관에 전시된 가미카제 특공대 출격기(왼쪽). 일본 지도부는 당시 출격 기지를 기념관으로 바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다. ‘인간어뢰’ 출격 기지였던 슈난 시 가이텐 기념관(오른쪽)에서 지난달 26일 한 일본인이 노트에 방문 소감을 적다 벽에 전시된 특공대원들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미나미큐슈·슈난=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일본 미나미큐슈 시 지란특공평화회관에 전시된 가미카제 특공대 출격기(왼쪽). 일본 지도부는 당시 출격 기지를 기념관으로 바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다. ‘인간어뢰’ 출격 기지였던 슈난 시 가이텐 기념관(오른쪽)에서 지난달 26일 한 일본인이 노트에 방문 소감을 적다 벽에 전시된 특공대원들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미나미큐슈·슈난=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패전 1년 전부터 인간어뢰와 인간미사일로 불린 자살 특공대를 꾸렸다. 특공대원은 대부분 강제 징용된 20세 전후의 학도병이었다. 17세 소년도 포함됐다. 특공대원들은 ‘칠생보국(七生報國), 천황폐하 만세’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르고 전장으로 내몰렸다. 칠생보국은 ‘죽으면 일곱 번 환생해 더욱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다.

하늘의 자살 특공대는 ‘가미카제(神風)’로 불렸다. 13세기 몽골의 일본 원정을 무산시킨 태풍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바다의 자살 특공대는 ‘가이텐(回天) 특공대’로 명명됐다. 하늘을 움직여 전황을 돌려보겠다는 의미였다.

가미카제의 출격 기지는 가고시마(鹿兒島) 현 미나미큐슈(南九州) 시 지란(知覽), 가이텐 출격 기지는 야마구치 현 슈난(周南) 시 앞바다의 오쓰(大津) 섬이었다.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라는 옛 지명으로 종종 불리는 이들 지역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등 메이지유신(1868년) 주역들의 출신지다. 야마구치 현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역구이자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전후 파괴됐던 이들 출격 기지는 지금은 기념관으로 바뀌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일본의 우경화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찾아간 지란특공평화회관. 방학 중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 학생부터 중년 여성, 노인에 이르기까지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유품 등 전시실 입구에서 맨 먼저 이들을 맞은 것은 일본이 전쟁에 나선 배경 설명이었다.

‘당시 아시아 대부분 지역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이 전쟁의 목적은 식민지가 된 아시아 각국의 해방과 상호번영이었다. 그래서 대동아 전쟁이라고 했다.’

서구의 압제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해 일본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는 자가당착적 주장이다. 하지만 많은 관람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공대원 1036명이 남긴 상당수 유서는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은 내용이었다. ‘몸을 던져 영원히 황국(일본)을 지키겠다’는 조선 학도병의 유서도 눈에 띄었다. 관람객들은 곳곳에서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특공회관은 이들이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진해서 목숨을 바쳤다고 선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나서기 전인 2001년 2월 이곳에 들러 눈물을 흘리며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다짐했다.

특공회관은 특공대 출격 전의 마지막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출격 시각이 다가오면 전투지휘소 앞에서 군사령관과 작전참모의 격려를 듣고 황궁이 있는 동쪽을 향해 참배한 후 이별의 잔을 나눴다.’ 죽음 앞에 의연한 듯한 용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태평양전쟁에 이등병으로 출전했던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요미우리신문 회장은 2006년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가미카제 특공대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기쁨으로 돌진했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특공대는 도살장에 끌려온 가축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병사는 일어설 수도 없어서 다른 병사들에게 들려서 (돌아올 연료가 없는) 비행기 안에 밀어넣어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6일 오쓰 섬의 인간어뢰를 기리는 ‘가이텐 기념관’도 똑같은 분위기였다. ‘가이텐’은 대량의 폭약을 탑재한 어뢰 모양의 잠수정에 특공대가 탑승해 적함에 돌진하도록 개조된 인간어뢰였다. 이들이 탄 특공 병기 가이텐은 길이 14.75m, 중량 8.3t, 최고속력 30노트로 후진은 불가능하게 설계됐다.

전시실 벽에는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그들의 후세에 대한 생각을 영원히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가이텐 특공대 창설을 제안한 2명의 장교에 대해서는 ‘(이들의) 조국을 지키고 싶다는 일념에서 특공병기 가이텐이 탄생했다’고 영웅시했다. 이들 중 한 명이 가이텐 시험 도중 사망했던 사실은 ‘시련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들의 광기에 145명의 청춘 특공대원이 가이텐과 함께 수장됐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21.2세에 불과했다.

두 기념관의 전쟁 미화와 국가주의 선동은 관람객들에게 그대로 침투되고 있었다. 많은 관람객은 “슬프고 안타깝다”면서 이들이 평화를 지키려다 전사한 데 대해 감사와 고마움을 표시하는 글을 방문 소감을 적는 노트에 남겼다. 관람객들은 기념관을 돌아보는 동안 아시아 침략전쟁을 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특공대를 순국열사로 떠받드는 가운데 지도부의 전쟁 책임에 대한 비판이나 아시아 피해 국민들에 대한 반성의 마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지란특공평화회관 전시실 입구에 비치된 방문 소감 노트에서 발견한 한 구절은 일본에도 양심의 불꽃이 살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2013년 8월 5월 M’이라는 방문객은 이렇게 적었다.

‘전쟁의 진실(조선 중국 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을 모르고 전장에 내몰린 병사의 비극은 정말 슬프다. 상층부 사람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전후에도 살아남은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전쟁의 최고책임자인 천황(일왕)도 아무런 처벌을 안 받고 전후 태평하게 살고 태평하게 죽은 것을 용서할 수 없다. 특공대원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나미큐슈·슈난=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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