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컬처 IN 메트로]올 43세… 음울해 보여서 사랑받는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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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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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회현 제2시범아파트… 1970년 모습 간직 폐가 방불, 스릴러-공포영화 촬영지 각광

1970년 준공된 남산 회현 제2시범아파트. 당시엔 첨단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우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됐다. 이 때문에 스릴러영화나 공포영화에서 범죄 현장 등의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동아일보DB
1970년 준공된 남산 회현 제2시범아파트. 당시엔 첨단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우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됐다. 이 때문에 스릴러영화나 공포영화에서 범죄 현장 등의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동아일보DB
이금자(이영애)의 복수 과정을 담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년)의 분위기는 어둡고 음울하다. 이런 분위기를 한층 더 어둡게 만드는 장소가 있다. 어린이를 유괴,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3년간 복역한 이금자가 복수의 칼날을 갈며 생활하는 아파트다. 고요한 밤, 이금자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내려가는 긴 계단 옆에는 낡은 아파트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이 아파트는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깨지고 녹슬었다.

살인사건이 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소름’의 한 장면. ‘소름’ 스틸컷
살인사건이 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소름’의 한 장면. ‘소름’ 스틸컷
이 아파트는 ‘주먹이 운다’(2005년)의 소년원 복서 상환(류승범)이 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곳으로 나온다. ‘추격자’(2008년)에서는 성매매 보도방 사무실이 있는 어두컴컴한 건물로,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소름’(2001년)에서는 곧 철거될 ‘미금아파트’로 등장한다.

이 아파트는 남산 자락에 있는 회현 제2시범아파트다. 보통 회현 시민아파트로 불린다. 회현 시민아파트는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 1968년부터 3년간 서울 시내에 건설한 총 434개동의 ‘시민아파트’ 중 하나였다. 1970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중앙난방을 채택하고 당시로서는 고층인 10층이어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 가수 윤수일, 은방울자매 등 당대 유명인들이 거주한 아파트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세월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준공 36년 만인 2006년 서울시로부터 위험등급인 D등급을 받고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됐다. 현재까지 352가구 중 147가구가 떠났다. 이후 ‘철거’와 ‘위험’이라는 단어가 늘 따라붙는다.

옛 명성을 잃었지만 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덕에 음울한 분위기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담아야 하는 스릴러 및 공포 영화 촬영의 메카라는 새로운 명성을 얻었다. 영화 제작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아파트에 협소하나마 주차 공간이 있고 서울 중심에 있다는 탁월한 촬영 조건 덕분에 더욱 인기다. 한 영화 제작 관계자는 “말만 잘하면 30만 원가량 내고 한 집을 하루 종일 빌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범죄 현장으로 자주 등장하는 탓에 주민들을 설득하는 난관을 거쳐야 한다.

1969년 준공된 성북구의 정릉 스카이아파트도 스릴러 영화 촬영의 메카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세븐데이즈’(2007년), ‘백야행’(2009년), ‘빈집’(2004년) 등 많은 영화가 촬영됐다. 이 아파트 역시 2006년 가장 위험한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이후 100여 가구에 달했던 입주민들이 떠나고 25가구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요즘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매력이 돼 영화 관계자와 사진작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회현 제2시범아파트#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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