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칼럼 : ‘피에타’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낮은 문턱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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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0일 15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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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기덕필름
사진제공|김기덕필름
지난 8일(현지시간) 이태리 베니스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최고상 수상은 한국영화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워낙 큰 성과인 만큼 각 미디어는 곧바로 오만가지 의미와 전망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피에타’의 황금사자상 수상 배경, 즉 ‘원인’에 대한 분석도 잇따랐다.

한국 미디어는 역시 임기응변에 강하다. 벌써 나올 수 있는 원인분석은 거의 다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10년 만에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돌아온 알베르토 바르베라와 김기덕 감독과의 오랜 관계는 스타연예인 열애설만큼이나 자주 다뤄졌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미국영화감독 마이클 맨이 주도한 심사과정 잡음도 마찬가지다. 미국영화 ‘더 마스터’에 황금사자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한꺼번에 몰아주려다 영화제 규정에 걸려 결국 황금사자상을 ‘피에타’에 넘겨주게 된 경위가 외신인용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 뜨거운 분석 기사 러시에도 제대로 언급되지 못한 원인점 하나가 아직 존재한다. 어찌 보면 가장 근본적 배경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바로 베니스영화제 그 자체의 성격과 속성, 방향성에 대한 지적이다.

▶‘아시아영화 밀어주기’로 정평 난 베니스영화제

베니스영화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배경지식은 지극히 제한돼있다. 그나마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이 ‘가장 오래된 국제영화제’란 점이다. 제1회 베니스영화제는 1932년 열렸다. 칸국제영화제가 1946년, 베를린국제영화제는 1951년에야 시작됐으니, 확실히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맏형 격인 건 맞다.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가장 예술본위적인 영화제란 평가도 존재한다. 칸영화제가 점차 마켓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상업적 요소가 강조되고, 베를린영화제는 독일통일 이전 강한 정치성을 모토로 삼아온 이미지가 아직 희석되지 않은 반면, 베니스영화제는 꾸준히 ‘예술로서의 영화’에만 방점을 찍어가며 제 위치를 고수해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구미·유럽영화계와 평단에선 초점 자체가 다르다. 한 가지 뚜렷한 특성에 주목해 베니스영화제 전체를 해석하곤 한다. 이상스러울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지만, 사실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가장 아시아영화에 후한 영화제로 정평이 나있다. ‘아시아영화 밀어주기’ 영화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

지난 20년 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시상결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공동수상 포함 22편의 수상작들 중 무려 10편이 아시아영화였다(중동아시아 포함). 차례로 ‘귀주이야기’ ‘애정만세’ ‘씨클로’ ‘하나비’ ‘책상서랍 속의 동화’ ‘써클’ ‘몬순 웨딩’ ‘스틸 라이프’ ‘색, 계’ ‘레바논’ 등이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 대만, 베트남, 일본, 이란, 인도, 레바논 등이 황금사자상을 자국으로 가져갔다.

여기에 2005년 대만감독 이안의 미국영화 ‘브로크백 마운틴’도 수상한 바 있으니, 감독 기준으로 보면 전체의 절반인 11번에 걸쳐 아시아인이 황금사자상을 가져간 셈이다. 아시아권 국제영화제도 이 정도로 아시아 편중이 심하진 않다.

반면 칸영화제는 같은 기간 22편의 황금종려상 수상작들 중 ‘패왕별희’(중국), ‘우나기’(일본), ‘체리향기’(이란), ‘엉클분미’(태국) 등 4편만 아시아영화였고, 올해는 프랑스영화 ‘아무르’가 황금종려상을 타갔다. 베를린영화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기간 22편의 황금곰상 수상작들 중 ‘결혼피로연’(대만), ‘향혼녀’(중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일본), ‘투야의 결혼’(중국),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이란) 등 5편만 아시아영화였다. 올해는 이태리 노장 타비아니 형제의 다큐멘터리 ‘시저 머스트 다이’에 황금곰상을 수여했다. 최고상 기준으로 보면 모두 베니스영화제의 절반 내지 그 이하다.

▶‘라쇼몽’ 하나로 구미·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은 역사

베니스영화제가 이처럼 과도하게 아시아영화를 밀어주게 된 데에는 물론 뚜렷한 이유가 있다.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최초로 아시아영화에 최고상을 안겨준 영화제다. 1951년 일본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이 그 수혜작이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황금사자상 후광 덕에 유럽 각국으로 배급된 ‘라쇼몽’은 가는 곳마다 탄성을 일으키며 일본영화 나아가 아시아영화 전체에 대한 유럽인들 인식을 뒤바꾸는데 크게 일조했다. 탁월한 유럽시장 성과로 결국 미국에까지 입성, 1952년 제24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피에타’ 수상 모습. 스포츠동아DB
‘피에타’ 수상 모습. 스포츠동아DB

베니스영화제는 곧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시아영화를 발굴해 세계무대(정확히는 구미·유럽무대)에 올려놓는 영화제로 정평이 나게 됐다. 곧 다른 국제영화제들도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이미 아시아영화 발굴 첨병 이미지를 베니스영화제에 선점당해 별다른 효과가 나오질 않았고, 아시아영화계와 별다른 신뢰관계도 쌓이지 않아 될성부른 영화를 섭외해오지도 못했다.

그런 탓에 칸영화제는 분위기 타고 1954년 일본의 ‘지옥문’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뒤 다음 번 아시아영화(‘카게무샤’)까지 무려 26년 동안 ‘아시아 황금종려상 프리’로 나아갔다. 1963년에야 처음 아시아영화에 최고상을 수여한 베를린영화제는 하필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듣보잡’ 사무라이영화 ‘무사도 잔혹물어’를 선택해 오히려 웃음거리가 됐다. 그동안 오직 베니스영화제만 쉬지 않고 아시아영화를 지원하며 인도의 ‘아파라지토’(1957년), 일본의 ‘무로마치의 일생’(1958년) 등에 황금사자상을 안겨 자기 방향성을 더 확고히 구축해나갔다.

궁극적으로 베니스영화제는 아시아영화 발굴 그 자체를 영화제 개성이자 캐치프레이즈처럼 삼게 됐다. 1982년 베니스영화제 50주년 기념으로 역대 황금사자상 수상작들 중 최고작을 꼽는 ‘사자 중의 사자’ 선정에서도 그 영광을 모든 방향성의 시작인 ‘라쇼몽’에 돌렸다.

생각해보면 한국입장에서도 이 같은 호의는 이전부터 충분히 받아온 바 있다. ‘라쇼몽’으로 촉발된 1950~60년대 아시아영화 붐 당시 ‘시집가는 날’ ‘마부’ ‘이 생명 다하도록’ 등 한국영화를 줄지어 경쟁부문에 받아준 건 분명 베를린영화제였다. 그러나 붐이 꺼진지 한참 된 1981년 이두용 감독의 ‘피막’을 경쟁부문에 선정하며 한국영화를 다시 세계무대에 올려준 건 역시 베니스영화제였다. 그리고 특별상이 아닌 본상을 처음 한국영화에 수여한 것도 베니스영화제였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강수연 사례다.

▶‘수상작’ 딱지 붙이고 해외예술영화시장 진출하기에 베니스가 적합

현재 각종 대중문화상의 대중적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진 상태다. 영화상만 해도 세계 3대 국제영화제는커녕 그보다 대중적인 아카데미상, 심지어 국내 대종상, 청룡상까지 올해 수여된 최고상 수상작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피에타’ 성과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모습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전형적 수출의존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영화산업의 궁극적 목표를 콘텐츠 해외수출로 상정해보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국내 날고 기는 1000만 영화들 중 해외에서 제대로 팔려본 콘텐츠는 전무한 상황이다. 그 외 400~500만짜리 알찬 상업영화, 흥행은 미진했지만 완성도는 탁월했던 저주받은 상업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한 상업영화들은 해외시장 진입 가능성이 거의 없다. 거의 내수용에 가깝다. 해외입장에선 어차피 같은 외국영화, 더 규모도 크고 노하우도 풍부한 ‘진품’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그만이다. 굳이 ‘짝퉁’을 볼 이유가 없다. 프랑스, 이태리, 일본 등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50%를 넘긴 영화선진국들 상황은 더 그렇다. 철저히 자국현실을 반영한 자국 상업영화와 무국적 판타지적 세계를 조망한 할리우드영화로 시장이 양분돼있는 상황이다. 그 외 국가 상업영화가 낄 구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최소한도의 수출발판이라도 마련해줄 수 있는 게 바로 예술영화시장이다. 예술영화시장만큼은 여전히 해외 각국영화에 열린 분위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업영화시장에서 비해 규모는 턱없이 작지만, 그래도 진입 자체에 의미 있는 수준 규모는 된다. 그리고 그 턱없이 작은 규모더라도, 현 시점 한국영화가 해외시장에서 ‘비빌 언덕’ 역시 예술영화시장 외엔 존재하질 않는다.

예는 많다. 여전히 미국시장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보인 한국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괴물’ ‘태극기 휘날리며’ ‘올드보이’ 등 수많은 수작 상업영화들이 진출했지만, 모두 이 무겁고 진지한 예술영화 한 편의 수익을 넘어서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여전히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다. 2위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3위가 이창동 감독의 ‘시’다.

그런데 바로 이 시장으로 진입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패스가 바로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란 품질보증 마크다. 그리고 이 같은 전제에서 가장 크게 역할 할 수 있는 게 한국영화는 물론 아시아영화 전체에 있어 ‘가장 낮은 문턱’으로 평가되는 베니스영화제란 얘기다. 칸, 베를린보다 2배 이상 확률로 아시아영화에 최고상 수상 찬스가 열려있는 영화제, 그 성과를 바탕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에스컬레이터까지 제공해줄 수 있는 발판이다.

결국 모든 종류의 대중문화상은 결국 비즈니스로 직결될 운명이며, 사실상 그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모든 대중문화상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산업입장에서 가장 비즈니스에 유리한 상을 찾아다닐 필요도 있다. ‘피에타’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그 존재와 의미에 새롭게 눈 뜨게 된 베니스영화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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