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꽃과의 대화]오래도록 피는 백일홍, 천일홍… 꽃향기가 멀리 퍼지는 백리향, 천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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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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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홍
가을이 소리 없이 내려오고 있다.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웠고, 끝자락엔 무지막지한 태풍이 올라왔다. 그래선지 아침저녁나절 가을 공기의 청량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즈음이면 열대나 아열대지방이 원산지인 식물들은 생장을 멈춘다. 그 대신 고향이 온대지방인 장미(아열대 피가 조금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같은 식물들에선 새로운 생장을 위한 둥그런 눈의 기세가 대단하다. 2주 전만 하더라도 형편없이 가늘고 뾰족한 눈뿐이었는데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꽃은 선명한 자주색의 천일홍(千日紅)이다. 꽃대를 잘라 말렸을 때 오랫동안 붉은색이 유지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조금의 과장은 있지만, 어쨌든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꽃이 오래가는 것으로 말하면 국화과의 백일초(百日草)도 만만치 않다. 초여름부터 꽃을 피우는데, 두꺼운 가장자리 꽃잎(가운데의 노란 부분을 싸고 있는 것)이 오랫동안 유지된다. 원래 이름은 백일초가 맞지만, 천일홍과 연결지으려는 듯 ‘백일홍’이라고도 많이 부른다.

예로부터 길거나, 많거나, 강한 특징을 표현할 때 백(百)이나 천(千)을 붙이곤 했다. 식물 이름도 마찬가지 경우가 꽤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덤불나무 백리향(百里香·Thymus quinquecostatus)이 대표적이다. 초봄이면 진한 향기를 내뿜는 늘푸른덤불나무 서향(瑞香·Daphne odora)은 흔히 천리향(千里香)으로 불린다. 그만큼 향이 진하게 멀리 퍼진다는 말이다.

붉은 열매가 매력적인 늘푸른덤불나무 백량금(百兩金·Ardisia crenata)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과장을 보태 ‘만냥(萬兩)’이라고 하며, 정월에 복을 기원하는 장식물로 많이 활용한다. 일본명의 화끈한(?) 과장이 매력적이라 그런지 시중에선 만냥에다 기존의 ‘금’자를 추가해 ‘만냥금’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선 오랫동안 붉은 열매가 달리는 식물에 그 관상가치에 따라 이름을 붙인 사례가 많다. 만냥 외에도 천냥(죽절초), 백냥(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음), 십냥(자금우)이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운, 행복, 돈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바람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물에도 그 염원을 담곤 했다. 행운목(幸運木·Dracaena fragrans ‘Massangeana’), 개운죽(開運竹·Dracaena sanderiana ‘Virens’), 행복나무(Heteropanax fragrans) 등이 그러하다. 금전수(金錢樹·Zamioculcas zamiifolia)와 파키라(Pachira)는 ‘머니트리(money tree)’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이름들은 사실 출처가 모호하고 일부는 혼용되는 경우도 많아 혼란스럽지만 그 의미만큼은 새겨봄직하다. 행운목, 개운주, 금전수 등의 식물은 조금만 관리해 줘도 튼튼하게 잘 자란다. 이 식물들의 이름은 생활 속의 소박한 행동과 마음만으로도 행복이나 행운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정원에 가득한 천일홍이 유난히 탐스럽다. 천일홍처럼 오랫동안 빛을 잃지 않는 삶, 백리향처럼 향이 깊고 백량금의 열매처럼 풍성한 삶, 그리고 행운목처럼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운을 가꿔 나가는 그런 삶을 기대해 본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
#백일홍#천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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