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6> 볼리비아서 방과후학교 운영 김신성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6> 볼리비아서 방과후학교 운영 김신성 씨
“20년 중독 마약을 끊었다… 남은 생을 나같은 아이들에 바치려”

“돈데스타 그레고리오?(그레고리오는 어딨나요?)”

지난달 19일 오전 11시 반, 볼리비아 산타크루스 주 코토카 시 테헤리아 마을의 벽돌공장 지역. 기온이 36도까지 올랐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솜브라(그늘)!”와 “비엔토(바람)!”를 외쳤다. 여섯 가족이 사는 허름한 벽돌집에 그레고리오(13)는 이날도 없었다. 벌써 이틀째였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온몸이 흠뻑 젖은 그레고리오가 나타났다.

오전 7시부터 4시간 동안 어른 인부들 틈에 섞여 벽돌 3000장을 트럭에 실었다고 했다. 그렇게 일하고 받아온 10볼리비아노(약 16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그레고리오는 작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운전사”라고 답했다. 기아대책 기아봉사단 김신성 씨(50)는 “땀 흘려가며 벽돌을 직접 싣지 않아도 되는 트럭운전사가 부러운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레고리오가 벌어온 10볼리비아노는 엄마 마티아사 씨(37) 손으로 건네졌다. 엄마는 “2월에 개학하면 그레고리오 옷 사는 데 보탤 것”이라고 했다. 그레고리오는 폐타이어로 만든 15볼리비아노짜리 신발을 아까운 듯 가지런히 벗어놓고 맨발이 됐다.

마티아사 씨 가족은 원래 볼리비아 중남부의 고산도시 수크레에서 살았다. 살기 좋은 저지대를 찾아 이곳까지 내려온 그레고리오의 아버지는 벽돌공장에서 일한다. 말이 공장이지 노지에서 흙을 퍼 틀에 넣고 말리고 구워 벽돌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테헤리아는 이런 고산지대 출신 벽돌공장 노동자들이 밀집한 빈민촌이다. 어머니는 2주간 꼬박 짜야 한 개가 완성되는 인디오 전통 허리띠를 만들어 개당 100볼리비아노에 내다 판다. 그레고리오까지 생활 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동생 클라우디아(10)는 학교도 안 다니고 가사를 돕는다.

그레고리오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문제아’였다. 김신성 씨가 어머니를 설득해 학교에 보냈지만 스페인어를 몰라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그레고리오는 고산 인디오 언어인 케추아어로 욕설을 퍼부으며 아이들을 때리기 일쑤였다. 김 씨가 운영하는 방과 후 교육센터에 다니고 김 씨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그는 학교 갈 때 담임선생님 손을 잡고 가는 쾌활한 학생으로 변했다. 여전히 학업 이외의 시간을 노동과 가사에 쓰고 있지만, 한 아이당 매달 3만 원씩 지급되는 기아대책 후원금으로 그레고리오는 실낱같은 배움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코타카 인근 빈민촌 500여 명의 아이들에게 방과 후 교육을 하며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그가 그레고리오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신성 씨(왼쪽)와 부인 김옥란 씨(오른쪽)가 테헤리아 마을 주민들과 학교 청소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남편 김 씨는 “처음 볼리비아에 와 시장에서 옷을 팔며 구슬픈 ‘이민가’를 지어 불렀다. 아이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김옥란 씨는 한국에서 남편을 소개받아 볼리비아로 ‘결혼이주’한 뒤 지금껏 남편을 돕고 있다. 한효준 채널A 카메라기자 ybshan@donga.com
김신성 씨(왼쪽)와 부인 김옥란 씨(오른쪽)가 테헤리아 마을 주민들과 학교 청소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남편 김 씨는 “처음 볼리비아에 와 시장에서 옷을 팔며 구슬픈 ‘이민가’를 지어 불렀다. 아이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김옥란 씨는 한국에서 남편을 소개받아 볼리비아로 ‘결혼이주’한 뒤 지금껏 남편을 돕고 있다. 한효준 채널A 카메라기자 ybshan@donga.com
37년 전 김 씨는 지금의 그레고리오와 같은 나이에 가족과 함께 볼리비아로 왔다. 파산한 채 볼리비아에 있는 친척만 믿고 무작정 떠나온 이민이었다. 동양인을 처음 본 아이들은 “눈이 찢어졌으니 태양도 길게 보이겠다”고 김 씨를 놀려댔다. 김 씨는 주먹을 날렸고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로 불려왔다.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하자 남미에서는 너무도 구하기 쉬운 마약의 유혹이 따라왔다. 20년간을 코카인을 비롯한 각종 마약에 빠져 지냈다. 대인기피증이 생겨 하수도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고 자살하려고 신호를 무시한 채 오토바이를 타고 대로를 질주하기도 했다. 막내딸이 태어나고서야 독하게 마음잡고 마약을 끊었고, 자신 같은 아이들을 구제하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김 씨는 그레고리오와 인사를 나눈 뒤 5분쯤 걸어 베네르디(10) 집에 도착했다. 테헤리아의 ‘축구 짱’ 베네르디는 할머니, 이모 가족과 함께 산다. 어머니는 몇 년 전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일하러 다니느라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돌아왔다. 이모가 있지만 베네르디는 누나 나르디(12)와 함께 사실상 소년소녀가장이다. 할머니와 이모가 이들 생활을 거의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나르디가 인근 부잣집에서 삯빨래를 해 생계를 꾸린다. 지저분한 시멘트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잔다. 생계와 가사에 바쁜 두 남매는 지난해 학교 유급 대상자였다. 둘은 “유급되면 일이나 하면서 지낼 거다. 그게 속 편하다”고 했지만, 김 씨가 둘을 설득해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 덕에 겨우 유급을 면하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베네르디를 내년쯤 인근 산타크루스 시의 명문 유소년 축구 학교에 보내는 게 목표인데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들어 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김 씨는 개학을 며칠 앞둔 테헤리아 마을의 유일한 학교 ‘피델 사우세도 세비야’로 향했다. 낡아 부서진 책상과 칠판, 파괴된 벌집이 나뒹구는 교실에서 당장 수업을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대청소를 하기로 한 것이다. 아침부터 마을 주민 30여 명과 아이들이 모였다. 김 씨의 지휘 아래 벌집을 치우며 책상을 새것으로 바꾸고 바닥을 청소했다. 청소가 끝난 교실에는 하얀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형광등 전구를 갈아 끼웠다. 김 씨는 “만연한 부정부패가 교육 분야에도 예외는 아니다. 교장과 교사들이 예산을 쌓아두기만 하고 학교 환경 개선에 손을 놓고 있어 문제다”고 전했다.

깨끗해진 학교 앞에서 김 씨는 마을 주민들과 활짝 웃으며 기념 촬영을 했지만 마음속엔 걱정이 많다고 했다. “마약과 알코올, 범죄, 불법 아동노동에 노출되는 청소년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든 상황이죠….”

코토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고통받는 지구촌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세요 ::

동아일보-기아대책 공동모금

동아일보가 기아대책과 함께 지구촌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한 공동모금을 벌입니다. 한 달에 3만 원이면 아이들에게 식량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세계 82개국에서 구호 및 개발사업을 통해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입니다. 후원 계좌 하나은행 353-933047-53337(예금주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ARS 후원 060-700-0770(통화당 2000원), 후원 신청 1899-0545, www.kfhi.or.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