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백만기의 컨버세이션’]“시한부 천재들을 활용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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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써먹는 크리에이티브 기술 ⑦용병법

박지성이 뛰고 있어 우리에겐 국가대표팀처럼 친근한 세계 풋볼클럽 자산가치 1위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 위대한 팀을 25년 째 이끌고 있는 더 위대한 감독은 퍼거슨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용병술이다. 천하의 인기 남 데이비드 베컴도 퍼거슨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였고 심지어 전반전 후 선수들에 대한 불만으로 퍼거슨이 걷어찬 축구화가 베컴의 이마를 찢어지게 했을 정도로 스타선수들을 데리고 놀았던 그의 카리스마는 절대적이다.

우리는 박지성이 선발로 안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이 놈의 영감쟁이를 그냥···. 어휴 우리 지성이 그냥 주전으로 쭉 나올 수 있는 다른 팀으로 옮겼으면 좋겠네.'

하지만 그는 70세도 넘은 여우 중에 여우다. 누가 그날 베스트 컨디션인지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그리고 너무나 냉정하게 그날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선발로 내보낸다. 선수 하나 하나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깜짝 선발로 나온 신인이 골을 넣고 그날 최고의 평점을 받는 등의 대박 사고를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무리 스타 선수라고 해도 늘 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천하의 리오넬 메시도 크리스티안 호날두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비인간적인 외계인급 스타들은 잘 못하는 날이 1년에 단 몇 일 밖에 안되지만.

동서식품 ‘핫초코 미떼’ 광고에 깜짝 출연한 김성근 야구감독.
동서식품 ‘핫초코 미떼’ 광고에 깜짝 출연한 김성근 야구감독.
야구도 마찬가지다. 특히 선발투수 선정과 대타 선정은 온전히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의 예리한 용병술에 달렸다. 얼마 전 동서식품의 '핫초코 미떼' 광고에 깜짝 출연한 전 SK 사령탑 김성근 감독이 대표적이다. 그가 감독을 맡았던 동안에는 특히 그날의 '미친' 선수가 나오는 경기가 많았다. 미쳤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 맞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 기용에 있어서 거의 무당 수준이었다. 물론 철저히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의적절하게 대처한 것이지만 경험이 쌓이자 데이터를 넘어서는 소위 귀신같은 감이 생긴 것 같았다. 한 토크쇼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는데 언제 누구를 대타로 써야할지 투수를 언제 누구로 바꿔야할지 딱 감이 나온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야신이라 불리며 평생을 야구밖에 모르고 살아온 김성근 감독이기에 그 정도의 능력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광고회사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어떤 프로젝트가 떨어졌을 때 그 브랜드에 가장 잘 맞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 시점에 유난히 컨디션이 좋은, 말하자면 두뇌회전과 감성흐름이 특출한 친구가 생긴다. 이럴 땐 흔히 연차가 크게 중요치 않다. 1년차가 3년차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를 내곤 한다.

필자는 이들을 '시한부 천재'라 부른다. 한 이틀 후에 혹은 심지어 1시간 후에도 이 천재들은 평소의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결국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어떤 인간이 오늘 컨디션이 제일 좋은지 계속 말을 던져봐야 한다. 뭔가 돌아오는 대답이 느낌이 좋을 때 그 녀석만 잡고 늘어져도 좋은 아이디어들이 술술 나온다.

팀원들이 다들 컨디션이 안 좋아 영 감이 없어 보일 때는 외부에서 시한부 천재를 찾기도 한다. PC 속 메신저에서도 찾고 스마트폰 채팅으로도 찾는다. 때로는 광고를 전혀 모르는 지인들도 그 역할을 해줄 때가 있다. 주로 소비자 조사용으로 물어보았는데 대화를 나누다보면 갑자기 뭔가 천재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아쉽게도 자주는 아니다.)

한때 광고쟁이였던 와이프는 꾸준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필자가 하도 쫓아다니면서 많이 물어봐서 설설 피해 다니기도 하지만 밤낮으로 의견을 물어볼 수가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선수다.

비단 광고회사 뿐만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든 미친 선수를 잘 활용하는 것이 팀장이 할 일이다. 축구도 야구도 감독이 직접 뛸 수 없는 것처럼 일도 디렉터가 다 할 수는 없다. 팀원들을 가장 잘 활용하는 디렉터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가끔씩 필자는 스스로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렇지' 하고 피식 웃는다. 그저 누구나 천재가 되는 순간이 있듯 그런 순간일 뿐이다. 그러니 자신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잘 살피자. 누구라도 천재 끼가 나오는 순간을 잘 포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승진도 성공도 모두 내 것이 될 것이다.

백만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arc@oysterp.com / 블로그 blog.naver.com/bma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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