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민찬이 웃을 수 있게… “기적을 부탁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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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청력, 뇌성마비… 중증장애 11세 소년, 어린이재활병원서 통합치료 시급한데…
매일 여러 복지관 전전… 일일아빠 체험 나선 가수 션이 호소합니다
동아일보와 푸르메재단이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모금에 나섭니다

17일 가수 션이 김민찬 군의 일일 아빠체험을 자처했다. 션과 김 군이 함께 청계천에서 걷기 운동을 하다가 서로 쳐다보면서 환히 웃고 있다. 이날 체험은 동아일보와 푸르메재단이 함께 추진하는 어린이재활병원 모금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7일 가수 션이 김민찬 군의 일일 아빠체험을 자처했다. 션과 김 군이 함께 청계천에서 걷기 운동을 하다가 서로 쳐다보면서 환히 웃고 있다. 이날 체험은 동아일보와 푸르메재단이 함께 추진하는 어린이재활병원 모금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민찬 군(11)은 뇌성마비와 청각장애를 가진 중증 장애아다. 태어나자마자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수종까지 생겼다. 총 16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후유증은 컸다. 청력과 한쪽 시력을 잃었고 얼굴 근육도 마비됐다.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 그러나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모든 게 엄마 문경애 씨(46)의 몫이다. 4남매의 아빠인 가수 션이 17일 문 씨를 도와 민찬이의 ‘1일 아빠’를 자처했다. 동아일보-푸르메재단의 어린이재활병원 모금 캠페인 ‘기적을 부탁해’를 알리기 위해서다.

17일 오후 2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 까리타스 어린이집 앞. 마땅히 다닐 곳이 없어 민찬이가 머무는 곳이다. 민찬이는 여기서 가장 큰 형이다. 션이 민찬이를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민찬이가 계단을 내려왔다. 션이 다가섰다.

“민찬이, 안녕. 오늘은 아저씨가 아빠야.”

션은 민찬이를 번쩍 안아 차에 태웠다. 차에 부딪히지 않도록 머리를 감싼 뒤 엉덩이부터 차에 태우는 손길이 능숙했다. 이어 서울 성동구 성동장애인복지관으로 이동했다.

“엄마가 안아 옮기기에는 벅찰 것 같아요.”(션)

“아기일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34kg이나 돼요.”(문 씨)

“동생이 있다면서요.”(션)

“아침 9시에 동생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요.”(문 씨)

“하나둘… 그래 잘하고 있어, 민찬아” 김민찬 군은 마땅한 재활시설이 없어 여러 장애인복지관을 ‘뺑뺑이’ 돌며 치료를 받는다. 24일 김 군이 서울 중랑구 신내동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하나둘… 그래 잘하고 있어, 민찬아” 김민찬 군은 마땅한 재활시설이 없어 여러 장애인복지관을 ‘뺑뺑이’ 돌며 치료를 받는다. 24일 김 군이 서울 중랑구 신내동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동생 성환 군(6)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성환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다. 성환이는 세 살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더 자라면 형을 낯설어 할까 봐 네 살 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성환이는 민찬이를 꼭 ‘형님’이라고 부른다. 장애아를 형제로 둔 아이는 일찍 철이 든다.

“어느 날 성환이가 너무 가여워서 민찬이를 할머니 집에 맡기고 놀이공원에 놀러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안 된대요. 형님하고 같이 가야 된대요. 지금도 성환이가 다섯 살이나 많은 형의 기저귀나 붕대 심부름을 도맡아 해요.”(문 씨)

문 씨의 하루는 오롯이 민찬이의 치료 일정으로 꽉 차 있다. 매일 장애인복지관 2, 3곳을 돌며 1시간 반씩 치료를 받는다. 한곳에서 한꺼번에 치료를 받으려면 재활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1, 2년씩 대기해야 하는 데다 입원하면 온 가족이 생이별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몇 년째 대기시간이 짧고 6만∼9만 원으로 저렴한 프로그램을 찾아 매일 장애인복지관 뺑뺑이를 돌고 있다.

성동장애인복지관으로 가는 내내 민찬이는 차에 머리를 박거나 몸을 비틀었다. 그렇게 40분 걸려 오후 3시 복지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주사에 들어있던 빨간 약을 입 안으로 흘려 넣어줬다. 간질 발작을 막아주는 약이다. 뇌수종을 앓은 민찬이는 뇌압이 올라가면 발작이 온다.

손으로 뜯어내 버린 인공 와우도 반창고로 귀에 붙였다. 그래야 ‘웅웅’거리는 소리나마 희미하게 들을 수 있다. 한쪽 눈에 항생제를 바르고 붕대로 덮어줬다. 눈을 감을 수 없다 보니 먼지에 그대로 노출돼 감염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는 데만 챙겨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민찬이를 차에서 내리던 션이 “엄마가 직접 운전까지 하시면서 데리고 다니신대요. 여럿이 도와도 힘이 드는데…”라며 나직하게 말했다.  
▼ “아이 나아지는데 대기자 많다고 치료 중단” ▼

민찬이는 복지관 앞 청계천을 걸었다. 션이 민찬이의 허리를 잡아주자 한 걸음씩 내디뎠다. 휘청거렸다. 느릿느릿 5, 6걸음을 걷더니 그대로 주저앉으려 했다.

“민찬아, 안 돼. 기다려. 똑바로 서 있는 거야. 그래 그렇게.”(문 씨)

누군가가 잡아줘야 하지만, 자꾸만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지만, 그래도 걷는다. 아무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치료사 박현정 씨가 “한 손으로 턱을, 한 손으로 배를 잡고, 배를 살짝 쳐주면 허리가 곧게 펴진다”고 알려줬다.

“발을 디뎌야지. 하나, 둘. 잘하고 있어.”(션)

30분간 걸었으나 민찬이가 왕복한 거리는 50m 남짓이다. 결국 민찬이는 털썩 주저앉는다. 햇살을 보면서 자꾸만 ‘하하’ 웃는다. “앉으니까 편한가 보네”라며 션도 민찬이를 마주 보고 ‘허허’ 웃는다.

“그런데 이런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어요. 30세 된 장애아들을 둔 어머니가 어느 순간 갈 곳이 없어 집 안에 갇혀 지낸대요.”(문 씨)

수술비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도 크다. 수술비는 매번 수천만 원이 들었다. 간호사였던 엄마는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그만뒀다. 차상위계층 의료급여 대상자가 됐다. 매일 10차례 넘게 가는 붕대며 기저귀 값도 만만찮다.

오후 4시 10분, 걷기 운동을 끝내고 서울 강동구 서울종합장애인복지관으로 향했다. 또다시 40분이 넘게 걸렸다. 민찬이의 키에 맞춘 ‘후방지지 워커’가 완성됐다기에 찾으러 가는 길. 걷기를 돕는 지지대다.

“민찬아, 꽝 하면 뒤로 움직였다 앞으로 가는 거야.” “어머니, 보셨어요? 부딪힐 거 같으니 미리 피했어요.” 워커를 잡은 민찬이를 조마조마하며 따라가던 션이 외쳤다.

션이 장애인 재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와 만난 뒤부터다.

“저도 중학교 때 크게 화상을 입은 적이 있거든요. 학교 대청소를 하던 중 쓰레기를 태우다가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났어요. ‘누구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죠. 빨리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고요.”(션)

“재활 치료를 신청하려면 새벽부터 줄서기는 기본이에요. 차례가 되더라도 대기자가 많아 최대 2년까지만 다닐 수 있어요. 아이가 좋아지려는데 기간이 끝났다고 하면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요.”(문 씨)

민찬이가 힘이 들었는지 또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부모는 아이가 웃어 주고 말을 시작하는 모든 단계마다 새록새록 행복한 건데, 이런 기약이 없다면 정말 힘들지 않을까. 그냥 엄마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드네요.”(션)

연예인이라서 보여주는 나눔인 줄 알았는데, 이날 션은 진심으로 민찬이를 돌봤다. 나눔이 몸에 밴 사람이랄까. “받는 사람이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니 어려운 거예요. 근데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더라고요.”

민찬이를 차에 태우며 인사를 나눴다. “병원 세워지면 거기서 꼭 보자.” 션의 말에 민찬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 민찬이가 알아들었나 봐요.”

션과 헤어져 귀갓길. 집에서도 엄마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민찬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재운 다음부터 동생 성환이를 돌본다. 아이들을 재운 뒤에는 치료 받을 곳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한다. 11년간 하루 3,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그런 엄마의 바람은 하나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걷는 모습을 보니 자꾸 욕심이 생긴다면서. 어린이재활병원이 생겨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치료를 받아 한쪽 눈이라도 잘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 민찬이를 피해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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