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왜 또 갖다 붙여?" 유쾌 발랄 터프한 하늘 씨
●쉽지 않은 시각장애인 범죄 목격자 역할…불면증에 시달려
●'너는 펫' 장근석? "촬영장 등장부터 우당탕 시끌벅적"
김하늘은 10일 개봉한 영화 ‘블라인드’에서 시각장애인 민수아 역을 연기한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스릴러를 처음 해봐서 '재미있게 봤다'는 말뜻을 잘 모르겠어요."
김하늘(33) 주연 '블라인드'(안상훈 연출)가 개봉 8일 만인 18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영화 잘 봤다"는 인사에, 김하늘은 "로맨틱 코미디를 할 때 '재미있다'와 스릴러의 '재미있다'를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러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영화의 어떤 부분이 얼마나 재밌었나?'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마도 김하늘은 감상 하나라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개념적·추리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인 듯 했다. 이전 인터뷰이 중에선 차승원이 그랬다. 둘 다 오랜 시간 톱클래스에 머물고 있으며, 치열하게 일한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블라인드' 수아로서 외로웠다
"블라인드는…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화에서 김하늘은 연쇄살인범을 쫓는 시각장애인 민수아를 연기했다.
보육원에서 자라 경찰대 학생이 된 수아는 운전하던 차가 사고가 나 동생을 잃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고로 시력까지 잃은 수아는 경찰의 꿈을 접게 된다. 비 오는 날 택시를 타고 가던 수아는 자신이 탄 택시가 사람을 친 것을 직감한다. 운전사는 개를 쳤다고 화를 내더니, 그를 길에 내려놓고 도망친다. 뺑소니 목격자로 나서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수아와 엇갈린 진술을 하는 다른 목격자 김기섭(유승호)이 등장한다. 설상가상으로 운전사는 연쇄살인 용의자다.
김하늘은 촬영 내내 수아로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기도 했다.
"나만 짊어진 짐이랄까. 한 번도 영화나 드라마를 찍으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어요. 작품은 다 같이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답답했어요. 수아는 힘든 것을 내색하지도 않고,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사는 인물이에요. 돌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크랭크업 후 잊고 있던 수아의 기억을 마음 깊은 속에서 끄집어내듯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아, 또 '울컥'하네. 믿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서 범인과 일대일로 맞서고, 그걸 견뎌야 했어요. 내가 수아가 되고, 그 감정이 더해지니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 전에는 다른 인물을 연기하면 일상생활에서도 그 여운이 남았어요. 나름 즐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안 그랬어요. 현장에서만 몰입하고 현장 외의 공간에선 철저히 나였어요. 촬영장 바깥에선 웃고 떠들었지만, 그래도 캄캄한 밤이 되면 소용없었어요. 방에 혼자 누우면 수아가 생각나서 잘 수가 없었어요. 피곤해도 잘 못 잤죠."
하지만 수아는 밝은 면도 있는 인물이다. 안상훈 감독은 그에게 항상 한 톤 더 높은 연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으론 알겠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눈이 안 보이는 상황에 들어가서 대사를 하고 표현을 하면 그렇게 나오지를 않았어요. 목소리 톤을 높이면 '오버'가 돼서. 그래서 최대한 노력해서 만든 캐릭터가 영화에 담겼어요. 그 이상은 안 됐어요."
그래도 그는 결과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족하고 싶은 게 내 심정"이라며 "디테일 부분은 아쉬운 것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극중 수아는 뺑소니 목격자로 나서지만, 제2의 목격자 김기섭(유승호)이 등장해 수아의 진술을 뒤엎는다. 엇갈린 증언을 조합해 가며 이야기가 진행 된다. 사진제공=레몬트리. ▶시각장애인 연기, 흉내만 내고 싶지 않아
심리적인 어려움만 있던 것은 아니다. 영화에선 수아가 범인에게 머리채를 잡혀 벽에 던져지고, 목에 졸리는 전에 없던 '강한 액션'도 등장한다.
"저도 자신이 없고, 다치면 촬영에 영향을 주니까 대역을 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마음이 좋지 않아 그분의 촬영 장면도 볼 수 없었어요. 힘들어서 울었단 이야기를 전해 듣고 눈물도 났고요. 다음날 만나 고맙다고 안아줬어요. 시선도 못 마주치고 인사만 했죠. 더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 펑펑 울까봐."
1998년 '바이준'으로 데뷔해 연기 경력만 13년. 그런 그이지만 시각장애인을 연기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한 달간 맹인학교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점자를 배우고, 안내견과 걸으며 감각을 체득했다. 촬영하면서는 카메라 각도와 눈동자 위치, 눈빛을 매번 계산하고 확인했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요. 그분들이 말 할 때 한 곳만 응시하거나 눈을 깜빡거리지 않을 것 같죠? 아닙니다. 대화할 때도 상대와 눈을 맞추려고 해요. 그런 섬세함을 살리고 싶었어요. 다행히 관객들이 알아주시더군요."
고생한 덕분에 영화는 '최종병기 활'과 함께 여름방학 성수기 쌍끌이 흥행 중이다. '블라인드'는 그의 출연작 중 6번째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다. 2004년 '그녀를 믿지 마세요'가 120만, '령' 111만, 2006년 '청춘만화' 207만, 2007년 '6년째 연애 중' 112만, 2009년 '7급 공무원'이 405만을 기록했으니 '6편 연속 돌파'다. 초 히트작은 없지만, 배우로서 티켓 파워는 지닌 셈이다.
▶'하늘하늘' 그녀, 알고 보면 '야생녀'!
'블라인드' 촬영을 끝내고 쉴 무렵, 김하늘에게 KBS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여배우 특집 섭외가 들어왔다. 수아를 떨쳐낼 좋은 기회였다.
김하늘은 밥, 간식에 몸을 던지는 망가진 모습으로 '야생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를 따라붙던 '청순가련', '하늘하늘' 이미지도 옅어졌다.
"'야생녀'라는 별명, 인정합니다. 야영에 익숙해요. 매년 여름이면 친척들과 계곡에 놀러 가곤 하는데 요리가 제 담당이죠. 파김치 삼겹살은 소속사 식구들도 인정했어요."
들뜬 목소리로 신나게 떠들던 김하늘에게 '1박 2일' 촬영 당시 핑크빛 로맨스 상대였던 엄태웅에 대해 물어봤다. "툭 까놓고 말합시다. 엄태웅 씨 스타일은 어때요?"
김하늘은 한 박자 쉬더니,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이게 뭐야~! 왜 또 갖다 붙여? (웃음) 방송에서도 (사귀라고) 몰아가더니, 또 몰아가네. 그 짧은 시간 봤는데, 뭘 알겠어요. 사실 잘 모르는 분이에요. 2008년 청룡영화제에 같이 시상했던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방송에서는 편집됐는데, 엄태웅 씨가 시상식 이야기를 꺼냈는데, 내가 반응이 없자 '에이~ 몰랐구나!'라고 했어요. 그때 알았죠."
밝고 시원시원한 김하늘의 이상형은 "열정적이고 존경할 수 있는 남자"다. MBC '로드 넘버원'에서 소지섭과 윤계상 캐릭터를 섞어 놓은 남자이거나, SBS '피아노'에서 유머 감각 있는 고수 같은 남자라고. 그는 "솔직히 남자 외모도 본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바빠서 팬 사이트 게시물을 읽기만 하던 김하늘은 최근 댓글을 남겼다. "우연히 만났는데, 팬이라고 아는 척하지 못해 서운했다"는 10년 된 팬의 글을 보고 그가 "다음엔 꼭 인사해 달라"라고 따뜻하게 위로한 것.
"'블라인드' 반응이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가 그 친구 글이 마음에 확 와 닿았어요. 참지 못하고 저절로 손이 갔죠. 그 마음이 귀여워 뭐라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써 놓으면 앞으로는 날 만나도 반갑게 인사해 주겠지 하고. 그런데 예상보다 반응이 커서 나도 깜짝 놀랐죠."
결혼에 대해 묻자 김하늘은 “20대엔 빨리 하고 싶었고, 지금은 '언젠가 하겠지' 싶다”라며 웃었다. 그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다"며 “솔직히 외모도 본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 유승호에서 장근석까지…어느덧 상대 이끌어 주는 선배 돼
김하늘은 현재 영화 '너는 펫'을 촬영 중이다. 동명의 일본만화가 원작으로 올겨울 개봉 예정이다. '골드 미스' 지은(김하늘)과 발레 유망주 인호(장근석)가 사랑을 쌓아가는 내용이다.
"장근석 씨요? 등장부터 '우당탕' 이에요. 이상한 춤을 추면서 '요즘 유행하는 건데 어때요?'하고. '블라인드'에서 호흡을 맞춘 유승호 군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데, 근석 씨는 정말 '펫(애완동물)'이에요. '주인님'이라고 불러요. 칭찬을 바랄 때도 있어서 주인님처럼 '잘한다! 잘한다!' 해줘요. (웃음) 덕분에 촬영이 즐거워요."
김하늘은 장근석 때문에 오히려 펫에게 길들었다는 하소연(?)을 했다. 선배들에 둘러싸여 있던 신인 김하늘은 어느덧 상대방을 이끌어 주는 선배가 됐다.
지금과 20대 때와 지금 중 언제가 더 좋으냐고 물었다. 그는 "20대"라고 답했다. "어릴 때가 좋잖아요. 그땐 먹어도 살이 안 쪘는데…. (기자가 지금도 정말 말랐다고 이야기하자) 에이, 화면으로 보면 달라요. 그래도 지금 만족해요."
'바이준' 이후 1년에 1편 이상, 주연으로만 작품을 내놓고 있는 김하늘. 그런 그가 꼭 해보고 싶은 역이 있다.
"다음에는 범인을 하고 싶어요. 악랄한 게 아니라 지능적인 악역이요. 이미지 변화를 노린 게 아니라 재밌을 것 같아서. 상대 배우는… 또래나 연하와는 많이 해봤으니 40대 선배가 어떨까요?"
그는 끝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하늘이 나온 작품이라고 하면 '그래, 김하늘이 안목은 있어, 날 실망 시키지 않을 거야'라는 말이 나오도록 말이죠.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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