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 ‘미스 리플리’ 이다해를 사랑한 진짜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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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6일 1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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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플리\'에서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장미리 역을 연기한 이다해.
\'미스 리플리\'에서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장미리 역을 연기한 이다해.
거짓된 세상에서 최고를 꿈꿨던 여자. 최근 종영된 MBC 월화 드라마, '미스 리플리'의 주인공 장미리(이다해)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드라마의 결말을 앞두고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시청자들을 자극한다.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그녀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모습을 연민의 시선으로 봐야하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기극의 주인공이 되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그녀의 행동을 처벌해야하는 건지. 신경증을 넘어서 정신증의 환자로 봐야하는 건지, 아주 기막힌 사기범으로 봐야하는 건지….

재밌는 건, 행복한 결말을 두고 많은 시청자들이 허탈해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이없던 그녀가 갑작스레 변화해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 불편했던 걸까.

필자는 상담자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만든 제작진의 시선과 같이 진단을 넘어선 한 인간을 대하는 공감적 시선으로 그녀를, 그녀의 관계들을 이해해보려고 한다.

▶ 첫 번째 남자, 히라야마와 장미리의 동지애

불안한 감정을 억압한 채 더욱 더 큰 공포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행동, 권력자에게 다가갈 때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이용한다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이 발각되었을 때 마치 눈을 가리고 떼를 쓰는 아이처럼 유아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 등을 통해 장미리의 성격을 진단하자면 히스테리적(연극성) 성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그녀가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히라야마(김정태)는 흔히 경계선 범위의 연극성 여성들이 사회병질적인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특히 신분상승의 꿈을 꾼 어머니에게 등 돌려진 그녀는 양부모에게도, 술집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녀 자체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히라야마는 바닥을 치는 그녀가 동일시하고 자연스럽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자 같은 이유로 죽도록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궁지에 몰린 장미리를 위해 몬도 그룹 부회장을 찾아가 당당하게 요구하고, 쫓기는 그녀를 피신시키려는 히라야마의 행동에서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고 그대로 감싸 안으려는 그의 동지애가 느껴진다.

장명훈(왼쪽)은 장미리를 사랑해 그녀에게 권력을 쥐어 준다.
장명훈(왼쪽)은 장미리를 사랑해 그녀에게 권력을 쥐어 준다.

▶ 두 번째 남자, 장명훈이 장미리를 변화시킬 수 없었던 이유

그러나 바닥을 치고 갈 데까지 간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된다. 우연히 발견한 친구의 졸업장으로 학위를 위조하고 경력을 빼돌리는 등 순식간에 사기행각을 일삼는다.

이때 나타난 권력자 장명훈(김승우)은 거짓된 세계에 빠진 장미리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가난한 집에서 자수성가한 그는 아픈 홀어머니를 보살필 수 있는 여자가 절실했고 장미리는 그런 그의 약점을 이용해 접근한다.

의식적으로는 장미리의 순수한-순수하게 포장된- 모습에 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 일자리를 주고 그녀의 학력 위조 등의 사실을 보지 못한 채 넘어가는 등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자기의 여자를 만드는 장명훈의 무의식 또한 불신이 가득한 세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장명훈은 장미리의 예상, 즉 예쁘고 똑똑하면 힘과 권력이 생긴다는 가설을 착실하게 증명해주는 사람이었다. 장미리의 과거가 드러났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떠안고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편 그녀를 원래대로 되돌려놓겠다는 그의 다짐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냉정하게 보이기도 한다.

장미리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보여준 송유현 역의 박유천
장미리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보여준 송유현 역의 박유천

▶ 세 번째 남자, 송유현의 사랑과 장미리의 눈물

표면적으로 영리한 그녀는 좀 더 괜찮은 상대를 찾아 떠난다. 그것이 바로 재벌가의 아들, 송유현(박유천). 그러나 그와의 관계에서 장미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 유현은 동화 속 사랑처럼 순수하게 그녀를 따라다닌다. "처음엔 돌아가신 친어머니와 닮아 그녀에게 끌린 줄 알았지만 사랑하는 데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는 그의 대사처럼, 미리를 사랑하는 유현의 마음에는 어떤 이유도 어떤 조건도 없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장명훈과는 조금 다르다. 약혼 선물로 값비싼 물건이나 어마어마한 권력을 손에 쥐어준 것이 아니라 엄마를 찾아주려 한다는 설정만 봐도 그렇다.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도 다소 냉정하게 한발 물러나 그녀를 바라보게 되지만, 그녀를 믿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다시 만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유현은 장미리를 한 인간으로, 조건 없이 사랑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자주 우는 장미리의 가식적인 눈물은 뒤로 갈수록, 유현의 사랑이 확인될수록 진심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모든 치유의 시작은 믿음이고 그 끝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어이없는 사기행각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과정 속에서 그녀의 약한 모습을 한 번 더 진지하게 봐주고, 그녀가 예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기에 한 번 더 믿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회에서 결국 변화하는 장미리의 모습을 통해 순수한 사랑으로 새로 태어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계정 상담심리 전문가 lisayi@naver.com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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