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1980년대 빅뱅? ‘희나리’의 구창모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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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1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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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고/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영혼을 울리는 담백한 미성, 온화한 미소…. '희나리'의 구창모(57)가 돌아왔다.

가수 구창모가 자신의 성공과 실패담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사진제공=SBS
가수 구창모가 자신의 성공과 실패담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사진제공=SBS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청춘스타였던 그가 라디오DJ로 변신한 것. 구창모는 지난 4일 오후 6시에 첫 방송한 러브FM의 신설 프로그램 '브라보 라디오 구창모입니다'(103.5MHz)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1978년 '구름과 나'로 데뷔한 구창모는 1981년 당시 최고의 록 밴드 송골매에 메인 보컬로 활약했다. 송골매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모두 사랑하리'를 부르며 전성기를 보냈다. 1985년 송골매 탈퇴하고 솔로로 나선 후 '희나리'를 발표, 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다.

인기를 지금과 비교하자면 빅뱅이나 동방신기는 저리 가라 할 정도. 그의 '희나리'는 중국어로도 번역돼 홍콩영화 '영웅본색'에 삽입되는 등 국경을 넘는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2000년대에서 다수의 컴플레이션 앨범에 수록되는 등 중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1991년 그가 돌연 '가수 은퇴'를 선언했다. 1990년 일부PD가 신인 연기자나 가수의 매니저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고 출연시킨 사실이 적발된 'PD사건' 때문이다. 사건이 터지자 매니저들은 행방을 감췄고 구창모와 가수 김광석이 대신 경찰 조사를 받았다.

가요계를 은퇴하고 개인 사업으로 성공을 했지만 여전히 음악을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그가 21년 만에 라디오 DJ로 방송 복귀를 선언했다.

▶"자꾸 방송 중 말을 씹어요. 언젠간 고쳐지겠죠?"

기자 간담회를 위해 마주한 그에게선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전영록과 '오빠 부대'를 양분하며 청춘스타로 가요계를 호령하던 그는 이제는 인심 좋아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돼 있었다.

"지금은 정신이 없어요. 혼자서 하니까 마음도 조급해지고 그리고 말을 자꾸 '씹어요'. 첫 방송 때 문자메시지 소개를 하다가 '삼이칠칠(3277)'을 '삼이칭칭' 이라고 말해버렸지 뭐예요. (웃음) 대본 보랴, 음악 큐시트 보랴 게다가 컴퓨터 모니터까지 봐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청취자들이 처음이라 애교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실수를 하나씩 고쳐나가야죠."

처음 일주일 동안 '보이는 라디오'로도 인터넷을 통해 방송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한 팬이 '오빠도 늙으셨네요. 뱃살이 보여요'라고 소감을 전했는데, 그날부터 PD가 카메라로 가슴 위만 잡는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털털한 아저씨가 돼 돌아온 구창모는 자신의 과거 히트곡 '히나리'에 대해 “의처증이 있는 남자 이야기 같다”고 말하며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사진제공=SBS
털털한 아저씨가 돼 돌아온 구창모는 자신의 과거 히트곡 '히나리'에 대해 “의처증이 있는 남자 이야기 같다”고 말하며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사진제공=SBS
그가 DJ로 나선다는 소식에 송골매 시절 함께 활동했던 배철수도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KBS1 '콘서트 7080' 진행자로 더 유명하지만 배철수는 그와 송골매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친구였다.

"배철수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줬는데요. 제가 맘에 새겨들을 말은 '실수를 꼭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실수를 넘어가지 말고 꼭 수정해라. 그래야 청취자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라는 말과 '진솔한 마음으로 방송을 해라'라는 말이었어요. 물론 라디오 방송도 대본이 있긴 하지만 청취자들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저한텐 행운입니다."

-지금 방송 준비는 어떻게 하시고 계신가요?

"방송국에 일찍 나옵니다. 일찍 나와서 미리 대본도 보면서 외우기도 하고요. 외우면서 대본의 말투를 제 말투로 바꾸는 작업을 합니다. 다른 DJ들의 방송을 많이 듣지요. 이성미부터 변진섭, 윤도현 방송 들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모방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좋은 점을 파악해서 배우려는 것이지요."

그에게 초청하고 싶은 게스트를 묻자 "당분간은 혼자 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여유롭게 2시간을 다 할 수 있을 때쯤 초청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잘 해야 게스트들도 편하시지 않겠어요? 첫 번째 게스트는 가능하다면 배철수를 초청하고 싶네요. 근데 같은 시간대 방송이라 모르겠네요. (웃음)"

- 우리 라디오만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경쟁력은 이제부터 만들어야겠죠. 하지만 '경쟁'을 한다고 생각을 가지면 프로그램이 망가질 것 같습니다. 라디오도 하나의 '문화'인데 경쟁의 틀에 넣는다면 엉망이 될 것 같습니다. 대중들에게 좋은 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매스미디어'가 그런 의미 아닐까요?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레 청취율도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송. 골. 매'

"인생에서 어느 순간이 가장 좋았나?"라는 질문에 그는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송골매 때"라고 답했다.

비록 가수 생활을 한 지 오래되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음악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추억을 회상이라도 하는 듯 웃으며 답했다. 또한 요즘 음악이라고 편견을 갖고 있으면 안 되고 옛 음악과 현재 음악은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서 노래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음악인'으로서 열정을 표하기도 했다.

- 송골매로 다시 활동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10년 전부터 배철수에게 "우리 죽기 전에 '라스트 앨범' 만들고 '전국 투어'를 하자고 했어요. 지금 배철수와 제가 생방송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겠지만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문뜩 그가 송골매를 탈퇴한 이후 그와 배철수와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화해한 걸까.

"탈퇴하고 사실 약간 그러긴 했지만 배철수가 이해를 했죠. 제가 솔로활동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하기도 했고 그런 고민들을 배철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배철수는 저의 고민을 알고 있었기에 금방 화해가 되었어요."

▶이젠 제가 질문 할 차례입니다. 하하하

기자 간담회가 마친 후, 몇몇 기자들은 라디오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구창모씨의 방송 전 안선영의 방송이 끝난 후 방송 관계자가 부스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말에 냉큼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그냥 둘러보다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방송에 첫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라디오 부스는 '라디오'의 특성처럼 인간미가 넘치고 편안했다. 정작 구창모는 대본 보랴 컴퓨터 모니터 보랴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고 나서는 생각보다 여유롭게 방송을 진행했다. 구창모는 "제가 질문을 계속 받았으니, 이젠 제가 질문할 차례입니다."라며 물었다.

그는 자신의 라디오 진행을 본 소감을 기자들에게 물었다. 기자들은 "생각보다 잘하시는 것 같다. 조금 실수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완될 것", "편안하게 진행하면 될 듯"이라고 말했다.

방송 후에 청취자들은 이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기자님들 춤이라도 추시지" "세상에서 제일 조용했던 게스트들…."

▶"배철수 감전사고 때, 구급차 아닌 용달차에 실려가"

라디오 방송 관객 체험이 끝나자, 그는 기자들을 데리고 근처 중식당으로 향했다. 털털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주도한 구창모 덕분에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자리가 됐다.

탕수육, 고추잡채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지자, 그는 1983년 배철수 감전사고 당시를 전하기도 했다. 식사 자리를 함께한 관계자들은 자신도 'KBS2 젊음의 행진 방송을 보다가 감전사고를 TV로 보았다며 그 때 상황을 가장 궁금해 했다.

당시 배철수는 삐뚤어져 있던 마이크를 바로잡기 위해 한쪽 손에는 기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을 당해 무대에서 쓰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 때, 마이크랑 모니터랑 연결이 잘못돼서 배철수가 감전사고를 당했어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구급차 부를 시간도 없었어요. 그래서 국장님, 저 그리고 배철수 세 사람이 밴드 악기를 실었던 용달차로 병원에 갔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정말 쇼킹했었죠."

또한 홍콩교민인 현재 부인을 처음 보고 한 눈에 반해 결혼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부인 분은 첫 눈에 반하신 건가요?

"그렇죠. 부인이 홍콩교민이었어요. 부인도 저를 알고 있더라고요. 문제는 부인이 연예인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연예인은 선수'라는 편견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절 좋아하게 만들려고 엄청 노력했습니다. 부인과는 10살 차이인데 지금은 세대차이가 좀 나는 걸 느낍니다. (웃음)"

그는 가수 은퇴 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건설업과 녹용 관련 사업을 했지만, 국내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직 가수 복귀에 대해선 정해진 것은 없어요. 일단은 주어진 DJ일에 완벽을 기하고 싶어요. 그런 다음 콘서트를 생각해볼 예정입니다. 팬 여러분, 제 방송 많이 들어주세요. 3050세대를 위해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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