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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칼럼]<손택균의 카덴차>한석규 “연기는 퇴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입력 2010-11-18 18:52업데이트 2010-12-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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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의 악당' 주연 한석규 1990년대의 한국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에게 '한석규'란 이름은 각별하다.

내게는 1998년 2월 어느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씨네플러스(지금의 압구정CGV)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뒤, 먹먹하고 뻐근하고 뿌듯해진 가슴을 안고 상영관 계단을 오르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1년 뒤 '쉬리'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PC통신 학교동아리 게시판에 "한국영화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흥분 젖은 감상문을 올렸다.

지금 '쉬리'는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가 함께 출연했던 영화'로 기억되지만, 한국영화 최초로 5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 포스터 한복판에는 다른 두 사람과 확연히 다른 사이즈로 주인공 유중원(한석규)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무렵의 한석규는 다른 어떤 배우의 뒤에도 놓을 수 없는 배우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의 행보는 1990년대 톱스타답지 못했다. 최근 10년간 뚜렷한 흥행작은 2006년 '음란서생'(236만 명) 뿐이었다. 2002년 '이중간첩' 이후 '주홍글씨' '미스터 주부퀴즈왕'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 등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 흐릿하고 멀게 느껴진다.

25일 개봉하는 '이층의 악당'(15세 관람가)은 한석규의 긴 침체기에 마침표가 될 만한 영화다. 스크린 데뷔작 '닥터 봉' 이후 15년 만에 재회한 김혜수와의 연기 호흡이 경쾌한 탁구 랠리처럼 흥미롭다. 기본 설정은 윗집 살인범 여자와 아랫집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손재곤 감독의 장편데뷔작 '달콤 살벌한 로맨스'의 변주(變奏)로 보인다. 감춰진 보물을 찾아내 훔치려고 2층에 세 들어온 사기꾼 창인(한석규)과 집주인 연주(김혜수)의 기이한 로맨스. 베테랑 배우들의 맛깔스런 호연이 눈에 착착 감긴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석규를 만났다. '이층의 악당' 중반 김혜수의 대사처럼 "목욕탕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굵고 낮은 목소리가 벙거지모자 아래 온몸에서 딩딩 울려나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연배가 한참 아래인 영화계 후배 감독과의 작업이었는데, 어땠나.

"남부럽지 않게 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부해 왔는데, 자문을 구해야 할 정도로 수많은 필름을 챙겨본 영화광이더라. 특히 스크루볼 코미디를 잘 하는 분 같다. 팍팍 후벼 파면서 치고 들어가는 대사를 뽑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아파트먼트'라는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한국의 빌리 와일더 같은 감독이 돼 주면 좋겠다. 그냥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저변에 깔고 그것을 웃음의 코드로 풀어낼 줄 아는 능력 또한 장점이다. 이번 영화도 마냥 경박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물 각각의 쓸쓸한 속사정을 어루만지는 애틋한 시선이 있다."

-후반부에 모든 인물의 가슴속 애환을 잠깐씩 하나하나 훑는 장면이 보이더라.

"바로 그거다. 눈여겨봐주길 바라는 부분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결국 연주의 딸이 정리한 것 아닌가.

"하하. 맞다. 집주인 딸아이 성아(지우)의 한마디. '그냥 사는 거죠, 뭐.' 두 남녀 주연이 풀어내는 중심 이야기만큼 청소년의 만만찮은 비애를 관심 있게 비추는 시선이 있어서 좋았다."

-감독 칭찬만 하는 것 같은데 큰 웃음을 주는 부분에는 배우의 애드리브 느낌이 많았다. 전체 대사 중 애드리브로 해결한 비중이 얼마나 되는 것 같나.

"애드리브는 잔재주일 뿐이다. 배우가 알아서 마음껏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믿고 기회를 준, 무대를 만들어준 감독에게 고맙다. 애드리브 잘 안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데, 코미디를 하다 보면 누구나 저절로 하게 된다. 집주인과 다투다가 주민등록번호 읊는 장면, 지하실에 갇혀 배가 고파서 과자봉지 냄새 맡으며 허기를 달래는 장면…. 그런 작은 요소들이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창인이라는 인물이 지하실에 갇히는 이야기의 시퀀스를 (감독이) 만들어준 것이다."

영화 ‘이층의 악당’의 한 장면.

-15년 만에 김혜수 씨와 재회한 감흥은.

"5, 6년 전부터 한번 같은 작품에서 다시 연기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얼굴 없는 미녀' '좋지 아니한가' '타짜' 등을 봐 오면서 팬이 됐다. 연기에 대한 얘기를 서로 많이 나누는 사이는 아니다. 두 사람 다 자기 자신의 연기를 굉장히 차가운 시선으로 혹평하는 타입이다. 그런 것이 서로에게 자극이 된 것 같다. 배우로서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저 배우가 저런 실험과 시도를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서. 열여덟 번째 영화에서 비로소 '액션'보다 '리액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까지는 내가 하는 액션 생각만 너무 많이 했다. 이번에는 혜수가 던져주는 액션에 대한 정말 좋은 리액션을 만들어보려 애썼다."

-2000년 이후의 출연작에 대한 평가는 대개 '연기는 좋지만 영화는 만족스럽지 않다' 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다. 한석규라는 배우에 대한 관객의 믿음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영화들은 1990년대 작품들만큼 관객을 흥분시키지 못한 것 아닌지. 이런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음…. (약 1분간 침묵. 기자의 등에는 진땀이 흘렀다.) 나 하나의 힘으로 영화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내가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 출연을 결정하는 과정은 늘 똑같았다. 이제는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건가…. 그런 생각이 지금 문득 든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관객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만 골라서 해야 하는 걸까…. 음. 잘 모르겠다. 하하."

‘쉬리’의 메인포스터. 거의 동등한 역할비중을 소화했던 공동주연 최민식, 현재 한국영화의 간판인 송강호를 확실하게 뒷전으로 밀어내고 한가운데 큼직하게 한석규의 얼굴을 박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배우는 변하지 않았는데 관객이 변한 걸까.

"영화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한 번의 소비로 끝나는 매체가 아니라는 거다. 개봉하고 한 주 만에 내렸다, 오래 잘 돼서 몇 개월 걸렸다…. 그게 다가 아니다. 영화는 다음 세대에도 소비될 수 있는 매체다. 그 점이 영화를 하고 연기를 하는 큰 매력이고 보람이다. 내가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 당시 모두 크게 각광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한 영화가 너무 많다. 어떤 영화를 관심 있게 보는 관객이 꼭 많아야 하는가.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배우의 층이 다양한 것 마냥 관객의 층도 다양하지 않나. 시나리오가 담은 이야기에 배우가 진심으로 동의해 몸으로 전하고 싶어 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배우로서 복 받은 인생이다. 좋은 작품을 많이 했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준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 그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정하고, 열심히 행한 덕분이었을 거다. 관객과의 어긋남은 속상하긴 하지만…. 하하. 계속 그냥 해보는 거다. 나의 영화관, 연기관, 이야기관이 그리 썩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층의 악당'에서 최근 다른 어떤 작품에서보다 편안해 보였다. 혹시 다른 작품에서는 이번 영화에서만큼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못 했던 건 아니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제작진과 맞지 않아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번 작품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를 꼽는다면.

"이야기의 시선에 일단 동의했고, 손 감독의 리듬감과 진지함이 좋았다. 코미디 장르를 안일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갔다. 그리고 혜수와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연기적으로는 최근에 진폭 적은 인물을 많이 해 왔다. 이야기의 주제에 치여서 연기의 스펙트럼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창인은 연기의 진폭을 얼마든지 넉넉히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인물이구나, 내면의 표정과 애환이 다양한 인물. 시나리오를 보면서 판단이 됐다. 그런 역할에 목말라 있었다."

영화 ‘이층의 악당’의 한 장면.

-'달콤 살벌한 연인'은 어땠나.

"4년 전쯤 극장에서 봤다. 시선이 삐딱한 영화. 하하. 한방 탁 치는 게 있어서 독특하고 좋았다.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굉장히 힘든 환경에서 아주 적은 제작비로 찍었을 텐데. 순제작비가 10억 원도 안됐을 것 같았다. 촬영기간도 무척 짧았을 테고. 길어봐야 두 달이 안됐을 거다. 이번 영화도 60일 동안 40회를 찍었다. 굉장히 압축적인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게 늘 힘들게 밤을 새는 경험이었냐면…. 그렇지가 않았다. 손 감독이 체력적으로 그럴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 아니더라. 그래서 좋았다. 하하. 나도 힘드니까. 웬만하면 낮에 다 찍고 밤에는 푹 잘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자신의 영화 작업이 머리 속에 딱 들어가 있는 사람 같았다. 스마트하게 일사천리로 끝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렇게 경제적으로 찍은 건 1990년대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넉넉하지 않을 때 잘 하는 건지도. 하하. 부족해야 잘 하는 건가. '쉬리'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정말 힘든 와중에 찍은 거다. 결과가 엄청나게 좋으니까 현장에서 요즘처럼 풍족하게 아무 어려움 없이 찍은 대작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이고 천만의 말씀이다. 정말 말도 못할 고생이었다. 뭔가 약간 부족하고 힘이 드는 상태가 돼야 현장의 모든 사람이 더 긴장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영화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여유롭고 풍족하면 긴장이 풀어지고 오히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뿐 아니라 사람 일이 늘 그런 것 같기도 한데.

"하하. 그러네. 얘기하고 보니까."

-'한석규의 긴 침체기'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침체기겠지. 밖에서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아니다'라고 얘기해봐야 뭐하겠나. 연기로서도 침체기라고 하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이겠지만. '흥행의 침체기'하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많은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는 바람은 늘 같지만, 매번 심기일전하는 수밖에 없다. 연기의 침체기라고 내가 스스로 느낀다면 그건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연기에 대한 욕심,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뭔가 더 해보고 싶은 열망 같은 게 분명히 살아 있다.

영화는 그게 참 좋다. 완성시켜 놓고 뚝 떨어져서 관객으로서 한석규라는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 것. 관객을 위해서 잘 하고 싶다 하는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 관객이 돼 내 모습을 보는 순간의 평가도 중요하다. 연기를 처음 해야겠다고 결심한 게 고등학교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었으니까. 그 때 얻은 정서적 충격. 나도 내 모습을 보면서 관객으로서 그런 걸 느끼고 싶다.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다."

-'영화판'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런 데서 대외활동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영화제에서도 거의 안 보이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별로 즐기지 않는 성격인가.

"그런 성격이다. 사람들 많은 자리, 불편해서 즐기지 못한다. 그런 장소에서의 대화는 공허하고, 나를 힘들게 한다. 성격이다. 따로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건 괜찮다. 연기하다가 만난 사람들끼리 낚시 가고 하는 거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커서 그런 것 같다. 일할 때도 현장 분위기를 막 휘잡아서 좋게 이끌고 하는 편이 못 된다. 나는 일에서는 늘 '재미있게 진지하고' 싶다. 물론 후배들에게 부담스런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모범을 보인다' 그런 건 또 절대 아니다. 연기할 때는 모두 동료일 뿐이다. 연기자로서 늘 자극을 주고받는 좋은 동료이고 싶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대중에 각인된 '한석규라는 배우'는 아무래도 '8월의 크리스마스'로 대표되는 데뷔 시절의 순수함, 맥심커피와 SK텔레콤 등의 CF에서 본 편안함, 그리고 '서울의 달' 홍식 이후의 깡다구 양아치, 세 가지 이미지일 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편안하고 따뜻해 보였던 데뷔 초의 이미지가 희미해지고, 까칠하고 무서워 보이는 '서울의 달'부터의 인상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영화에서의 배역이 악당 쪽에 가깝다보니 그럴 지도. 스스로가 보는 '인간 한석규'는 어떤 쪽에 가까운가.

"글쎄 잘 모르겠다. 기자분이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고 있을 거다. 나도 그러니까. 사람은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는 거다. 나는 내 모습이 지겨울 때가 있었다. 사람들과의 모임을 즐기지 못하는 모습 같은 것…. 물론 이젠 다 받아들이고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

연기를 통해서 내게 없었던 모습, 내 성격의 테두리 밖으로 확 뛰쳐나갈 수 있는 쾌감과 카타르시스가 있으니까. 내가 했던 모든 인물의 종합체가 인간 한석규다. '이층의 악당' 속 창인의 모습도 분명히 내가 갖고 있는 거다. 그걸 좀더 부풀리고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내는 게 영화다.

사람들이 다 그런 것 아닐까. 직장에서의 모습, 조금 또는 많이 다른 가정에서의 모습.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의 종합체가 한 사람인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원래 가진 성향이 조금씩 퇴화되는 것 같다. 아,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어떤 새로운 걸 잘 배우는 사람보다 원래 갖고 있던 본능을 퇴화시키지 않고 잘 유지하는 사람이 오히려 괜찮은 배우인 것 같다. 배움과 훈련보다는 원래 갖고 태어났던 감정 감흥 본능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그런 걸 얘기해주고 싶다."

영화 ‘이층의 악당’의 한 장면.

-영화 중반 창인이 연주와 다투다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직 쉰은 아니다!' 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읊는 장면이 적잖은 웃음을 준다. 요즘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 없는지.

"배우는 40대가 제일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하나의 악기라고 치면 40대 때가 가장 쓰기가 좋다. 너무 많이 쓰지도 너무 덜 쓰지도 않아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상태더라. 해보니까 그렇다. 그런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있는 건 아쉽다. 이런 좋은 시기에 더 좋은 무대를 통해 더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시간이 지나가는 데 대한 아쉬움은 그 때문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아직 4년 남으셨다.

"하하. 맞다."

-다음에 준비하고 있는 건.

"아직 전혀 결정된 게 없다."

-드라마를 다시 해볼 생각은.

"글쎄. 드라마를 통해 이름이 알려졌는데…. 하아. 욕심인 것 같다. 영화나 잘 해야지."

-그냥 좀 드라마 쪽 분위기가 불편한 건 아닌가.

"그런 것도 있겠다. 영화만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영화 시나리오 공모 사업을 벌인 게 벌써 11년이 지났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결국 이야기니까."

-그런데 한 관객으로서 90년대에 비해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얻는 즐거움은 적어진 것 아닌가 싶다.

"나 또한 그게 아쉽다. 그런데, 영화는 언제나 관객과 함께 발맞춰 가야 하는 매체다. 90년대부터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달라지지 않았다.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해서 열심히 전달하는 것. 그게 이제 통하지 않게 된 건가 싶어서 한때는 실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뭐 글쎄. 그냥 계속 해 나가는 거다.

혼란스러워 하지 않으려면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을 믿어야' 한다. 골프 플레이어가 자기 스윙에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끝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거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새로운 선수가 나오면 옛 선수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만 해야 할까. 부단히 훈련하면서 좋은 홀을 만날 때까지 계속 치는 거다. 자기에게 맞는, 정말 좋은 홀을 만날 때까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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