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인터뷰]케이팝(Kpop)산업ⓛ ‘SM아카데미’ 이솔림 대표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1월 18일 16시 29분


"아이돌 되고 싶은 청소년? 환상을 합리적으로 깨주는 역할도 있어야…"

● 현재는 아이돌 캐스팅 전쟁…꿈을 키워주되 그 대안도 마련해야
● 일찍 데뷔해야 좋다는 환상을 깨야…조급함을 버려라

"정말 예쁜 여대생이 있었어요. 그런데 밤마다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 간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중학교 이후로 줄곧 모 대형 연예기획사 오디션만 쫓아다닌 거죠. 거기에 맞춰 연습도 하고 심지어 성형수술도 하고 말이죠. 그런데 뜻대로 안되자 화병이 난거에요. 어머님께서 찾아와 '돈을 주고라도 그 기획사에 넣고 싶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연예인이 되고 싶은 청소년들이 많다. 문제는 연예인이 되는 방법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요제 입상이나 기획사의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스타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주먹구구식으로 스타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가수의 경우 중고교 시절 발탁돼 기획사에 들어가 수년간 연습생으로 특수교육을 받고 20세 이전에 데뷔하는 아이돌 시스템이 정착됐다.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2AM의 조권도 7년과 10년간 기획사 연습생 시절을 보냈다.

국내에서 활약하는 아이돌 그룹만 100개가 넘는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케이팝(Kpop)이 아시아를 호령하면서 이제 SM JYP YG등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의 오디션은 아시아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꿈의 무대로 변모했다. 그럼에도 기획사들은 인재가 없다고 불평이다.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헤매는 기획사들의 노력은 이제는 전쟁 수준이다.

SM아카데미의 이솔림 대표(40·여)는 아이돌 캐스팅 전장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다. SM아카데미는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가수 육성시스템을 도입한, 일종의 사설 가수학원이자 연예인 프리(pre) 사관학교다. 태연(소녀시대) 온유(샤이니) 허가윤(포미닛) 지오(엠블랙)도 여기 출신이다.

가수를 꿈꾸는 중고교생들은 일정 기간 훈련을 받고 기획사나 방송사들의 오디션 전쟁에 뛰어든다. 이 대표를 만나 케이팝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 이솔림 대표 "자신들의 능력을 스스로 검증할 기회 필요"

연예인을 꿈꾸는 학생들로 북적일 것이라 기대했던 SM아카데미는 예상외로 낮 시간에는 적막했다. 수업이 방과 후인 저녁 7시에 시작되기 때문이다(요즘 기획사들은 학생들이 학업과 병행할 수 있도록 오디션을 주말이나 방학 때 잡는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대중음악 학원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몇몇 기획사 계열의 학원과 유명 작곡가가 개인적으로 소수정예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이 거의 전부다.
예고 진학을 위해 오디션 중인 학생들. 가수와 연예인이 되기 위한 청소년들의 치열한 노력은 케이팝을 지탱하는 거대한 원동력이다.(사진=한림예고)
예고 진학을 위해 오디션 중인 학생들. 가수와 연예인이 되기 위한 청소년들의 치열한 노력은 케이팝을 지탱하는 거대한 원동력이다.(사진=한림예고)

- 매년 거쳐 가는 학생 숫자가 얼마인가요?

"오디션을 통해 한 기수에 100명씩만 뽑습니다. 1학기(4개월)만 하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포기하는 친구도 있으니 1년에 약 400여명을 훈련시키는 셈이에요. 보컬 과정의 경우 발성ㆍ발음ㆍ호흡법에서 방송 댄스ㆍ효과적인무대 연출법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보컬뿐만 아니라 연기와 매니저 과정도 있어요. 종합적으로 대중문화 산업에서 활동하고 싶은 여러 인재를 키우는 동시에 지망생들이 힘들다는 점을 느끼고 그만두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웃음)."

- 이제는 가수에 대한 부모들의 편견이 사라졌나요?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두렵게 느끼시죠. 연예인들의 자살도 많고 하니 '힘들지 않냐'고 불안해하는 거죠. 사실 그보다는 연예인 데뷔 준비하다가 공부하는 시기 놓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부터 하세요. 사실 정답은 없는데, 너무 좋아하고 열망을 갖고 있다면 한 분기 정도는 해보게 하라고 권유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가늠하게 만들 기회를 못주면 아쉬움이 오래 남기 때문이에요. 또한 직접 아티스트가 안 된다고 해도 예능분야에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충분히 연관 분야(실용음악, 작곡, 기획, 매니저)로 진출할 수도 있거든요. 합리적으로 환상을 깨주거나 전문가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지요."

연예 기획사 시스템의 입문단계로 시작한 일이 대중문화 시장이 커짐에 따라 업무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태국이나 중국 등지에서 원정교육을 오기도 한다. 이 대표는 이른바 대중가요 교육을 통해 케이팝 시장의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자신이 교육한 아이들을 여러 기획사나 방송사에 추천하기도 하고 예고나 기획사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한다.

■ "너무 빨리 데뷔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스타는 천운 따라야"

- 어떤 아이들이 주로 찾아오나요?

"SM계열사이다보니 소녀시대가 뜨면 남학생 지원자가 늘고, 슈퍼주니어와 샤이니가 뜨면 여학생들이 늘지요. 하지만 우리는 단지 연예인을 좋아해 지원하는 친구들은 구분하려고 노력합니다. 실제 쉽게 포기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떤 아이들이 어떻게 재능을 발휘할 지는 정답이 없습니다. 태연 같은 경우만 해도 처음에는 아주 착하고 평범한 또래 아이었어요. 그런 친구들이 1년간 배우면서 노래가 늘고 댄스를 배우고 스스로 욕심까지 늘면서 그 같은 스타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 거지요."

-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많이 늘어 오디션 시장도 커졌습니다.

"맞아요. 기획사들은 '캐스팅 전쟁'이라는 표현을 써요. 국내 오디션도 모자라 중국과 미국으로 글로벌 오디션을 진행하기도 하고, 때론 지방 가요대회나 심지어 학교 축제까지 쫓아가 아이들을 캐스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술고나 대학의 실용음악과와 홍대앞 인디 시장까지 포함하면 시장은 더 커지죠. 최근에는 슈퍼스타K나 공중파들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니…."

- 최근 히트한 Mnet의 슈퍼스타K는 재밌게 보셨나요?

"여기 학생들도 MBC 위대한 탄생이나 Mnet의 슈퍼스타K에 응시해서 경험을 쌓기도 해요. 적극 지원하기도 하고요. 다양한 무대를 경험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고 실제 우연치 않게 캐스팅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업계 관계자 입장에서는 그리 썩 반가운 프로그램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재미를 위해서 연습생들을 학대하는 측면이 조금 있잖아요. 어린 친구들에게 악평도 서슴지 않고 대놓고 경쟁을 시키고…. 방송시스템에 아이들이 희생되는 측면이 불편했어요. 물론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만."

- 어느 정도의 시기에 데뷔하는 게 이상적인가요?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빠른 것은 반대에요. 충분히 학창시절을 즐겨야 하는데 그런 기회까지 빼앗는 것은 안 됩니다. 현재 기획사 시스템에서는 16~18살에 캐스팅하는 것을 원하고 있어요. 중3에서 고1정도의 나이에 선발해 2~3년을 자체 훈련 시켜 20살 이전에 데뷔시키겠다는 계획입니다. 남학생들은 군대와 변성기 문제도 있어서 더 빨라지는 추세이기도 해요."

- 하지만 일찍 기획사와 계약하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확산됐어요.

"맞아요. 실제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도 굉장히 조급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조급함의 정도가 도를 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심지어 고등학생도 늦는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에요. 실제 기획사 연습생이라는 것이 굉장히 힘든 과정이에요. 오래 준비할수록 아이들도 당연히 지치고 가수 이외의 일에 대해 무지해지거든요. 때문에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20살에 데뷔해도 늦지 않다고 가르칩니다만…."

- 스타는 타고난다고 보나요?

"꼭 그런 것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가르치는 입장이니까 길러지고 채워지는 부분도 당연히 있겠죠. 실제 케이팝 시스템에서 기획사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좋은 기획사가 좋은 가수를 만들어 낸다는 점은 확실해요."

- 아이돌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가요?

"역시 보컬이겠죠. 일본 시스템에서는 아이돌은 무엇보다 '얼굴' 먼저 본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더군요. 사실 우리도 1990년대에는 얼굴로 뽑기도 했죠. 지금 소녀시대는 기본적으로 보컬이 안 되는 친구는 없어요. 게다가 개인적 특기까지 갖고 있고요. 우리나라 가수들이 아무래도 보컬에서 경쟁력이 있으니 이렇게 아시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아이돌 가수들의 안정적인 미래도 신경을 써줘야 공존가능"
케이팝의 중심 한국 걸그룹 그리고 SM의 소녀시대. 아시아에서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스타제조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케이팝의 중심 한국 걸그룹 그리고 SM의 소녀시대. 아시아에서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스타제조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 데뷔를 안 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요?

"물론이에요. 우리가 8년간 24기 약 2000명 가까이 교육시켰는데 실제 가수로 활동하는 친구들은 기수당 1명 정도에요. 노래 얼굴 개성 끼…. 다양한 조건이 모두 필요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천운(天運)이라는 것도 필요해요. 온유(진기) 같은 경우만 해도 너무 잘해서 우리도 여러 번 추천했는데 번번이 떨어졌을 정도에요. 마지막 기회를 잘 살려 극적으로 합격해 결국은 '샤이니'로까지 성공했어요. 태연은 불과 3년 만에 소녀시대 메인보컬이 됐죠. 이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자기만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기획사마다 지향점과 컨셉트가 다르기 때문에 실력만 있다면 데뷔기회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에요. 허가윤이란 친구는 SM 노래짱 2위를 하는 등 성적이 좋았지만 계약까지는 못간 사례에요. 하지만 큐브엔터테인먼트에서 포미닛으로 데뷔해 크게 성공했잖아요."

- 아이돌의 수명은 언제까지라고 보세요?

"기획사들이 충분히 좋아졌지만 조금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실제 영원한 아이돌일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후배에 밀려 인기가 쇠퇴하거든요. 일본의 경우는 연예인도 기획사에서 부장이 되고 이사도 되는 등의 일반적 회사제도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요. 한마디로 월급과 성과급을 받는 직원이라는 개념이죠. 아이돌 가수들의 미래를 최소한이라도 보장해 주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거나 프로듀서나 작곡 쪽으로 끌어주는 방법이 준비되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대중문화 시장이 커졌어요. 9시 뉴스가 국위를 선양한 위대한 인물처럼 아이돌을 다룰 정도인데요.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포장되는 측면이 없지 않죠. 9시 뉴스에 '4초 가수'라고 비판하더니 갑자기 나라를 빛낸 인물처럼 묘사하기도 하고요.(웃음) 대중문화의 팬덤 현상은 실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더군요. 제가 10년 전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는 한국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멋지다고 생각하잖아요. 모두가 대중문화의 힘이지요."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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