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대물’ 뜻이 원작에서는 다르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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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8일 11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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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물'은 스포츠신문 연재만화 '대물'이 원작
●'팜 파탈' 서혜림이 착한 아줌마 정치인이 돼
●비중 약했던 강태산은 주인공의 정적으로 생명 연장

"내 남편은 아프가니스탄에 취재 갔다가 죽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도 아닌데 비참하게 살해됐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는 겁니까. 여자의 몸으로 성추행범 증인으로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나라에서 개인정보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제가 납치를 당해야 하는 겁니까. 이런 나라에서 우리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애를 키울 수 있겠습니까!"

장대비가 쏟아지던 늦은 저녁, 한 여자가 우산도 없이 연단에 섰다. 납치범에게 맞아 부어터진 얼굴은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됐다. 국회의원 보궐선거 마지막 유세장이다. 여자의 애끓는 외침은 지나치던 청중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결국 선거에서 11표 차이로 극적으로 승리한다. 그 여자는 바로 SBS 수목드라마 '대물'의 주인공 서혜림(고현정·39)이다.

요즘 국회의원들도 주목한다는 드라마 '대물'은 인기 만화 '대물'이 원작이다. '쩐의 전쟁'을 그린 박인권 화백(56)의 작품으로 스포츠신문에 연재됐었다.

드라마 '대물'은 여자 대통령 이야기지만 만화 '대물'은 제비의 무용담이 주를 이룬다. 4부까지 출간된 만화에서 2부가 여자 대통령을 유혹한 대단한 제비의 이야기인데, 이를 '15세 이상가'로 점잖게 각색한 것이 드라마 '대물'이다. 2008년부터 드라마 제작이 논의되다가 원작에서 색(色)을 제거하고 줄거리도 '평범한 여성이 주위 선량의 도움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는 내용으로 바꿨다.

'대물(大物·큰 물건)'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도 다르다. 드라마 제작진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大) 만들기(物)' 프로젝트의 줄임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원작에서 대물은 주인공 제비의 '신체적' 무기를 뜻한다.

만화 \'대물\'의 주인공 서혜림과 드라마에서 서혜림을 연기한 고현정. 제공 박인권화백·SBS
만화 \'대물\'의 주인공 서혜림과 드라마에서 서혜림을 연기한 고현정. 제공 박인권화백·SBS

▶섹시한 로비스트 → 착한 아나운서

만화에서 서혜림은 '팜 파탈'형 로비스트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 재학 시절엔 극성 운동권으로 이름을 날린 미혼 여성이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백악관 로비스트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다가 귀국해 통일 한국의 첫 대통령이 된다. 겉으로 보기엔 착하고 아름다운 숙녀지만, 대통령이 되려고 살인도 마다 않는 냉혈한의 면모도 지내고 있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간도 땅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정도로 대담하다.

반면 고현정이 연기하는 서혜림은 착한 외모에 착한 마음씨를 가진, 돈도 배경도 없는 서민 출신이다. 시골 방앗간 집 딸로 태어난 혜림은 똑똑한 머리, 예쁜 얼굴로 촉망받는 아나운서가 되지만, 뉴스 생방송 도중 딸꾹질이 멎지 않아 '물'을 먹고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과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에 머문다. 카메라 기자인 남편이 아프가니스탄 취재 현장에서 피랍돼 죽은 뒤 방송국에서도 해고되고, 우여곡절 끝에 서민들을 위한 '착한 정치'를 내세워 정치판에 뛰어든다.

보궐선거로 임기 1년의 국회의원이 된 후 도지사를 거쳐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된다. 8살 된 아들을 하나 키우고 있다. 제작사 관계자는 "서혜림의 언변이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 요소여서 아나운서 출신으로 설정했다. 실제 아나운서 출신 국회의원들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아나운서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으로는 한나라당 박찬숙, 민주당 박영선, 자유선진당 박선영이 있다.

만화 '대물'의 주인공 하도야(하류)와 드라마에서 하도야를 연기한 권상우. 제공 박인권화백·SBS
만화 '대물'의 주인공 하도야(하류)와 드라마에서 하도야를 연기한 권상우. 제공 박인권화백·SBS

▶낭만 제비 → 열혈 검사

만화 속 주인공 하류의 직업은 '제비'다. 부여에서 3대째 내려오는 유명한 곰탕집 아들 하류는 '제비 짓'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아버지와 검사인 형 도야가 권력자에게 억울하게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서혜림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든다. 하류는 자신의 '대물'을 이용해 정계와 재계 유력인사의 여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혜림을 돕는다. 일종의 '옴 파탈'인 셈이다. 대통령이 된 서혜림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내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드라마 속 주인공 하도야(권상우·34)는 제비 하류와 검사인 도야를 합쳐놓은 인물로 제비 출신 검사다. 동네 카바레에서 아줌마를 상대하던 '양아치' 하도야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에게 굴욕당하는 모습을 보고 철이 들어 검사가 된다. 비범한 곰탕 기술 하나로 청와대 조리사로 입성한 아버지가 청와대 파티에서 우연히 '못 볼 것'을 보고 죽임을 당한 것을 계기로 법복을 벗고 정치인 서혜림을 위해 뛴다. 권상우는 제작보고회에서 "원작의 제비 하류가 연기하기는 더 쉬웠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곰탕집 아들 하도야(권상우)는 가업을 잇길 원하는 아버지 하봉도(임현식)의 바람을 저버리고 동네 카바레에서 이모뻘 아줌마들과 춤바람에 빠져 산다. 제공 SBS
곰탕집 아들 하도야(권상우)는 가업을 잇길 원하는 아버지 하봉도(임현식)의 바람을 저버리고 동네 카바레에서 이모뻘 아줌마들과 춤바람에 빠져 산다. 제공 SBS

▶정치적 희생양 → 정치적 야심가

만화에서 국회의원 강태산은 비중이 작은 인물이다. 대통령의 양자로 미국 유학 시절엔 서혜림과 연인 사이였지만, 혜림이 하류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알고 이를 고발하려다 비명횡사한다.

드라마에서 차인표(43)가 연기하는 강태산은 정치적 야망에 따라 선과 악의 경계선을 오가는 인물로 서혜림의 정적이다. 처음에는 혜림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후보자로 추천하고 당선을 위해 돕지만, 혜림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쑥쑥 커 나가자 불안감을 느낀다. 혜림이 대통령이 되자 탄핵을 주도한다. 원작과는 반대로 하도야의 아버지 죽음에 연결돼 있다. 제작사는 "서혜림을 정치로 이끌고 성장하게 하는 인물이어서 비중이 커졌다"며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바뀐 '대물'에 대해 박인권 화백은 "15세 이상이 볼 수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스포츠신문에 연재할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정치 드라마이지만 정치적이기보다는 사람 이야기 위주로 갔으면 한다"며 드라마를 둘러싼 정치적인 논란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또 "(원작에서 비중이 큰) 하도야 대신 고현정 씨가 연기한 서혜림 위주로 각색된 데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며 "다수의 여성 시청자들이 보고 있고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고현정 씨의 연기력이 대단히 뛰어나 보는 재미가 있다"고 칭찬했다.

만화 '대물'의 강태산과 드라마에서 강태산을 연기한 차인표. 제공 박인권화백·SBS
만화 '대물'의 강태산과 드라마에서 강태산을 연기한 차인표. 제공 박인권화백·SBS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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