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북스] 새 책-‘속 깊은 마트료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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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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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멀고 먼 나라 '러시아'

● 한국인들이 가장 오해하는 러시아에 대한 알기 쉬운 해설서
●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파악하는 한-러 수교 20년사

러시아의 상징 붉은 광장. 러시아는 우리의 이웃이면서도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존재다(연합뉴스)
러시아의 상징 붉은 광장. 러시아는 우리의 이웃이면서도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존재다(연합뉴스)

천연가스 최대 보유국, 세계 2번째 석유 수출국, 군사 과학기술 예술분야 세계 최강국, 세계 최대의 영토를 지닌 나라….

이것이 '러시아'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간단하게 유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 '소련(蘇聯)'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는 1990년대 전환점에서 한국에서는 인식의 간극이 발생했다. 한국인에게 '소비에트 연방'이란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세계 최강의 공산국가라는 강인한 위압감을 전달해준 데 반해, '러시아'란 국가 브랜드는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긴 것이다.

물론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 교육이나, 나로호로 대표되는 '한-러 과학교류협력사업' 그리고 푸틴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강인한 이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러시아'란 한국 주변 4강 가운데 가장 모호하고 애매한 존재로 남았다. 한국인들은 러시아가 "여전히 충분히 강하고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언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과의 미시적 관계로 접어들고 나면 더욱 막막해진다. 아직도 러시아 하면 인터걸이나 보따리 무역상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상당수일 정도다. 실제로 1990년대 러시아에 진출한 일부 한국 사업가들은 마치 제3세계에 당도한 것처럼 '졸부' 행세를 했고, 그런 뜨내기들은 이후 '스킨헤드'의 테러 위협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러시아 특파원 출신이 소개하는 러시아

공산권 붕괴 이후 한국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러시아에 특파원을 파견해 소련 해체 이후의 변화상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왔다. 한 동안 러시아에 관련된 교양서적은 이 특파원들이 담당해 출판해왔지만 2000년대 들어 러시아의 인기 하락과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해 그 빈도가 점차 줄어가는 실정이다.

'속 깊은 마트료슈카'의 저자인 김병호는 대학에서 러시아어학을 전공한 뒤 연합뉴스 러시아 특파원(2004~07)을 지냈다. 각종 논문을 포함해 가장 많은 러시아 관련 교양서적을 펴낸 러시아 전문가이다.

'푸틴을 위한 변명'(2007)과 '신 러시아, 러시아인 이야기'(2009)이란 책에 이어 세 번째 러시아 관련 대중서를 발간해 한국인들이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러시아란 거대한 땅덩어리를 손쉽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은 법. 신간 제목에서부터 저자의 고민이 배어 나온다.

'마트료슈카'.

러시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러시아의 토속 상품이다. 목각인형인 이 마트료슈카는 열어도 열어도 더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오는 신기한 구조다. 책의 제목에서 러시아의 대표 관광상품을 내세운 이유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이며 한편으로는 러시아라는 나라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속깊은 마트료슈카'(공감IN 펴냄)는 지난 20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ㆍ러 양국 간에 벌어진 일을 되짚어 보여준다.

9월30일로 우리나라가 옛 소련과 수교를 맺은 지 20주년이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진 양국은 소련이 해체되기 1년여 전인 1990년,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수교에 합의했다. 한국은 소련을 이용해 북한을 견제하고자 했고, 소련은 한국과의 수교를 통해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는 '외교'나 '관계사'란 굴레에서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 심지어 초등학생에게까지도 러시아 수교 20년사를 전달할지 고민하다가 에피소드 방식을 택했다.

러시아어 전공자가 없어 통역을 구하는데 애를 먹은 한-소 수교 비사, 게다가 양국 정상 만찬장에서 뛰쳐나간 통역사의 이야기부터, KAL기 블랙박스를 들고 찾아온 옐친, 고르바초프를 만난 김영삼 전 대통령, 서울과 평양 때문에 고민하는 푸틴, 우주인 배출의 꿈을 키워온 한국과 우주 관광객을 생각한 러시아, 그리고 슬픈 카레예츠(고려인)의 이야기까지 러시아와 관계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촘촘히 펼쳐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재구성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책 중간마다 각 분야 러시아 최고 전문가 인터뷰를 싣고 있다. 박종소 서울대 러시아연구소장과 홍완석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장, 모스크바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송세진 피아니스트,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나윤수 전 코트라 모스크바 KBC센터장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구소련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던 러시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읽기 쉬운 에피소드 뒤에는 한국의 일방적인 설움이

그러나 책 내용이 아무리 에피소드 방식이라고 해도 읽는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불쾌한 대목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바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100전 100패 해온 한국 외교계의 치부가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니 한국 외교가 무능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약점을 적절하게 활용해온 '러시아'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겠고, 혹은 러시아란 존재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손해 봐야 하는 포지셔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의 한계는 '한-러 관계사'에 대한 내용에 한정됐다는 점이다. 양국 관계에 한정돼 집필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러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다른 여타 관련 서적까지도 한번 훑어 봐야 한다. 자원 외교시대가 본격화된 지금 러시아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미래의 땅'으로 돌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책 정보

서명 : 속 깊은 마트료슈카
저자 : 김병호
키워드 : 마트료슈카, 한국-러시아, 한러 수교 20년사
*304쪽. 1만2000원
한줄평 : 1990년대 이후 한-러 관계와 그 이면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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