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마초란 이런 것 ‘익스펜더블’

  • Array
  • 입력 2010년 8월 23일 16시 56분


코멘트
\'노장은 죽지 않는다\' 13일 미국에서 개봉한 ‘익스펜더블’은 개봉 2주차인 20일과 22일에만 1650만 불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총 6500만 불의 흥행성적을 기록,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13일 미국에서 개봉한 ‘익스펜더블’은 개봉 2주차인 20일과 22일에만 1650만 불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총 6500만 불의 흥행성적을 기록,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6년 전쯤 '할'자로 시작되는 바이크에 빠진 적이 있었다. 온통 크롬으로 번쩍거리는 몸체, 털털대며 쿵쾅거리는 특유의 터프한 소리에 반한 나머지 순전히 빚을 내어 무려 2000만 원이 넘는 바이크를, 그것도 중고로 덜컥 사 버렸다. 1500cc에 육박하는 대형 바이크였지만, 솔직히 그때 필자는 오토바이 면허도 없었다.

밤에 무면허로 몇 번 타고 나갔을 때 지나가는 택시운전사들이 모두 쳐다볼 만큼 멋진 보라색 바이크였다.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지하 2층 주차장에서 시동을 켜면 고층 아파트 꼭대기까지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토바이 면허시험에 떨어진 데다 아내가 임신도 하는 등 여러 사정으로 3개월 만에 눈물을 머금고 되팔 수밖에 없었다. 그 이래 '언젠가는 다시 그런 바이크를 타보리라' 다짐했건만, 아직 기회는 오지 않고 있다.

이런 필자에게 당시의 꿈을 다시 일깨우는 영화가 실베스터 스탤론 감독과 주연의 '익스펜더블'이다. 영화 속 귓전을 때릴 듯한 기관총 소리가 묘하게 아메리칸 바이크를 떠올리게 한다. 왕년의 액션스타들이 총출동한 이 영화에서 '마초의 세계'를 마음껏 즐겨보자.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과 각본 및 연출을 맡고 제이슨 스태덤, 이연걸, 돌프 룬드그렌, 에릭 로버츠, 스티브 오스틴 등이 출연한 할리우드 액션 대작  ‘익스펜더블’. 사진 제공 영화공간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과 각본 및 연출을 맡고 제이슨 스태덤, 이연걸, 돌프 룬드그렌, 에릭 로버츠, 스티브 오스틴 등이 출연한 할리우드 액션 대작 ‘익스펜더블’. 사진 제공 영화공간


▶ 섬나라 독재정권을 붕괴시켜라!

한밤중에 쿵쾅거리는 거대한 아메리칸 바이크들을 타고 한 무리의 사내들이 타투(문신) 클럽으로 모인다. 이들은 용병 일로 먹고 사는 터프가이들. 얼마 전에도 해적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고 멋진 솜씨로 인질들을 구출한 용사들이다. 제이슨 스태덤, 이연걸, 랜디 커투어, 돌프 룬드그렌 등 쟁쟁한 멤버들을 이끌고 새로운 일을 찾던 리더 실베스터 스탤론은 미스터리의 인물인 브루스 윌리스로부터 '불가능한 미션'을 받는다.

장소는 남미의 작은 섬나라 '빌레나'. 평화롭던 작은 섬에 '장군'이라는 군부독재자가 나타나 주민들을 괴롭힌다. 이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이번 미션의 요지다. 사실 이 임무는 껄끄러운 정치적 사안을 용병을 통해 해결하려는 CIA의 비밀작전이었지만, 스탤론과 스태덤은 일단 섬에 가서 접선책을 만난다.

'남자 영화'에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은 필수. 접선책으로 나온 사람은 강인하고 아름다운 라틴계 미인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장군의 딸로, 독재자인 아버지를 돈으로 유혹해 섬에서 마약을 재배하려는 악당에 대항하여 싸우는 용감한 여성이었다. 섬에서 뜻하지 않게 군대와 정면 승부를 펼치게 된 두 남자는 가까스로 살아 도망치고, 미션 수행을 하지 않기로 결론 내린다.

하지만 스탤론은 두고 온 여성이 마음에 걸린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팀에 배신자가 생긴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구할 생각에 다시 섬으로 되돌아간다.

왕년의 액션스타가 총출동하기에 美버라이어티지는 ‘익스펜더블에’에 대해 액션판 ‘오션스 일레븐’이라고 평했다.
왕년의 액션스타가 총출동하기에 美버라이어티지는 ‘익스펜더블에’에 대해 액션판 ‘오션스 일레븐’이라고 평했다.


▶ 생각을 비우고 떠나는 마초의 세계

사실 이 영화에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는 않다. 관객은 그저 머리를 비우고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수컷들의 익스트림 액션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익스펜더블'은 터프한 것들을 모두 모아 놓은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왕년의 액션스타들을 다시 보는 반가움에 더해 영화를 가득 채운 빈티지 풍의 멋진 바이크와 자동차, 비행기, 각종 무기들은 남자 관객의 눈과 귀를 매혹한다.

비록 카메오 출연이긴 하지만 반가운 얼굴도 볼 수 있다. 액션 영웅 브루스 윌리스와 아널드 슈와제네거가 등장한다. 스탤론이 교회에서 '경쟁자'인 슈와제네거를 만나는 장면은 왕년의 액션 스타와 현역 스타들이 한데 모여 동창회라도 여는 듯 하다. 스탤론 감독의 섭외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여기에 문신전문가로 등장하는 왕년의 섹시 가이 미키 루크는 많이 늙고 망가지기는 했지만 레게풍의 머리와 복장으로 여전히 남은 매력을 보여준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전쟁터에서 자살하려는 한 여성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한이 맺힌다"는 그의 슬픈 고백은 실베스터의 가슴에 휘발유를 끼얹는다.

제이슨 스태덤은 몰래 바람을 피운 애인의 얼굴에 멍 자국이 생긴 걸 보고는 상대남을 찾아 호쾌한 주먹맛을 보인다. 결국 이 모두가 연약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괴롭히는 나쁜 놈들에게 멋지게 주먹 한 방을 날리고 싶은 평범한 남자들의 기사도 정신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셈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비행기를 몰고 제이슨 스태덤이 기수 부분 뚜껑을 열고 나와서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장면은 호쾌하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비행기를 몰고 제이슨 스태덤이 기수 부분 뚜껑을 열고 나와서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장면은 호쾌하다.


▶ CG를 자제한 왕년의 정통 액션

한 주먹한다는 스타들이 만났는데 땀내 나는 액션은 필수다. 스탤론 감독은 최대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액션 장면을 지양했다. 자고로 CG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대개는 티가 나는 법. '다이하드4'에서 F22 전투기가 고가도로를 폭격하는 장면이나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의 자동차가 기차 위를 날아다니는 액션 신이 그렇다.

'익스펜더블'의 액션 장면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이 비행기를 몰고 제이슨 스태덤이 기수 부분 뚜껑을 열고 나와서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장면, 적군에 기름을 퍼붓고는 네이팜탄처럼 화염을 일으켜 죽이는 장면은 호쾌하다. UFC 전 헤비급 챔피언인 랜디 커투어의 등장도 반갑다.

CG티가 많이 나는 장면도 아주 없진 않았지만 화끈한 액션들을 받쳐주는 정교한 스토리 구성으로 오랜만에 머리를 비우고 감상하기엔 비교적 즐거운 액션 영화였다.

왕년의 섹시 가이 미키 루크(왼쪽)는 많이 늙고 망가지기는 했지만 레게풍의 머리와 복장으로 여전히 남은 매력을 보여준다.
왕년의 섹시 가이 미키 루크(왼쪽)는 많이 늙고 망가지기는 했지만 레게풍의 머리와 복장으로 여전히 남은 매력을 보여준다.


▶ 아메리칸 차퍼와 핫라드

'익스펜더블'은 소리가 멋진 영화다. 바이크와 자동차, 비행기, 기관총과 각종 무기에 이르기까지 '쿵쾅~타타타'거리는 소리는 심장을 울릴 정도로 강렬해서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에 나오는 바이크들은 소위 '차퍼'라고 하는 튜닝 바이크다. 포크를 길게 늘인 앞바퀴, 거대하게 큰 뒷바퀴, 해골 등 그로테스크한 다양한 장식으로 꾸민 독특한 외양은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라고까지 불린다. 미국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이런 바이크를 만드는 리얼리티 쇼 '아메리칸 차퍼스'가 대히트를 하기도 했다. '아메리칸 차퍼스'의 우승팀이 인기인이 되면서 이런 바이크에 대한 관심에 기름을 부었다.

영화 속 자동차 또한 남자의 로망에 불을 지른다. 스탤론이 몰고 다니는 차는 평범해 보이는 옛날 반 트럭인데, 사실 이런 차들은 자동차 튜닝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핫라드'라고 불리는 대단한 인기품목이다. 주로 1920~70년대 고물 자동차들을 주워 자동차 뼈대만 놔두고 엔진과 각종 부품, 실내를 모두 바꾸는데, 엔진과 부품들이 어마어마한 성능과 가격이기 때문에 '부자들의 비싼 취미'라고 볼 수 있다. 겉모양은 골동품이지만 엔진, 휠, 실내등이 상당히 고성능에 고급이어서 얕봤다간 큰코다칠 수 있는 차들이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이연걸이 타고 가던 차가 악당들의 차에 둘러싸인 채 기관총 세례를 받을 때 이 차의 거대한 휠이 스핀하면서 추격을 따돌리고 곡예운전을 하는 모습과 그 커다란 엔진 소리는 이 차의 성능을 잘 말해준다. 이 차는 스탤론이 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 젊은 시절 주연한 '코브라'에서 나왔던 자동차와도 유사한데 거기서도 많은 추격자를 따돌리면서 엄청난 속도를 과시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영화에 나오는 바이크들은 소위 ‘챠퍼’라고 하는 튜닝 바이크로, 미국 문화를 상징한다.
영화에 나오는 바이크들은 소위 ‘챠퍼’라고 하는 튜닝 바이크로, 미국 문화를 상징한다.


▶ 다시 불붙은 '사나이의 꿈'

사적인 이야기를 잠시 풀자면, 필자가 아메리칸 바이크를 사기 전에 타본 것은 작은 스쿠터가 전부였다. 중년에 접어들어 아메리칸 바이크에 '훅'가서 덜컥 사는 일을 저질렀지만, 면허도 없고 너무 무거워서 몇 번 타보지도 못하고 손에서 놓아야 했다.

한 번은 밤에 아내 몰래 타고 나갔다가 아파트로 올라오는 경사로에서 기어를 잘못 넣는 바람에 바이크를 쓰러뜨렸다. 300kg이 넘는 바이크를 혼자는 도저히 세울 수가 없어서 언제 차가 올지 모르는 도로에서 무려 2시간을 쩔쩔매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던 기억이 있다. 구식 카뷰레터 방식이라 시동조차도 잘 안 걸려 속을 썩였다.

결국 멋진 가죽 재킷을 입고 아내를 바이크 뒤에 태우고 세계 여행을 떠나겠다던 필자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익스펜더블'은 다시금 이런 중년 사나이의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여보, 나 바이크 다시 사도 될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