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정주현] ‘아저씨’…폭발하는 원빈의 남성적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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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5일 13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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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에서 처음으로 원톱 액션 연기에 도전한 원빈은 차가우면서 재빠르지만, 난폭하고 거침없는 액션을 훌륭히 소화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아저씨'에서 처음으로 원톱 액션 연기에 도전한 원빈은 차가우면서 재빠르지만, 난폭하고 거침없는 액션을 훌륭히 소화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아저씨'라니. 이런 촌스러운 제목이 다 있나. 그리고 그 아저씨가 원빈이라니. 내가 잘 못 들은 거겠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이 영화는 옳지 않다고 느꼈다. 최강의 꽃미남이라거나 살아있는 조각 등등 온갖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도 부족해 보이는 이 잘 생긴 젊은 남자 배우에게, 옆집 아저씨란 역할이 도대체 어울릴 것인가. 또 데뷔 이후 단 한번도 '얼마면 돼?'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에게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 수 있는 때가 과연 온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옹과 마틸다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가 '맨온파이어'나 '테이큰'의 아류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나의 생각은 대부분 틀렸다. 먼저 원빈의 배우로서의 역량과 역할의 적절성을 의심했던 예상이 어긋났다. 전작 '마더'에서 정신지체를 앓던 시골소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소년이거나 또는 청년이거나, 늘 보호의 대상이었던 그는 이제 누군가를 보호하는 냉혹한 살인병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남성적 카리스마는 충분히 멋지고 묵직해졌다. 또한 한없이 상투적으로 보이는 이 영화에는 지금껏 비슷한 다른 작품이 보여 준 적이 없는 것 역시 있었다. 바로 강렬한 말 그대로의 '날 액션'이다.

▶ 차가우면서 재빠르지만, 난폭하고 거침이 없는 액션


태식(원빈)은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다. 말이 없고 늘 혼자 다니는 그를 동네에서는 깡패라 부른다. 하지만 태식에게는 단 한 명의 유일한 친구가 있다. 이웃에 사는 소미(김새론)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미는 손버릇이 좋지 않고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지만, 유일한 친구인 태식에게만큼은 마음을 열고 온기를 나눈다.
전당포를 운영하며 혼자 사는 태식(원빈·오른쪽)에게는 이웃에 사는 소녀 소미(김새론)이 유일한 친구다.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전당포를 운영하며 혼자 사는 태식(원빈·오른쪽)에게는 이웃에 사는 소녀 소미(김새론)이 유일한 친구다.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그러나 소미에게는 곧 불행이 닥친다. 클럽에서 마약을 훔친 엄마와 함께 잔인한 마약조직에 의해 납치된 것이다. 소미가 납치된 것을 알게 된 태식은 소미를 찾기 위해 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오히려 소미의 엄마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소미를 찾기 위한 태식의 맹렬한 추격이 시작되고, 태식의 비밀에 싸인 과거도 함께 드러난다.

줄거리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태식의 연기,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바로 태식의 '퍼포먼스'다. 이는 '아이를 찾기 위해 갱단을 뒤쫓는 한 남자'라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상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의 성공여부는 이 남자와 아이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짜일지, 남자와 갱들 사이의 싸움이 얼마나 제대로 표현될지, 그리고 이 남자의 매력이 얼마나 흡입력을 가질 것인 지로 요약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태식은 이 모든 것을 액션 하나로 표현한다. 액션은 곧 그의 표정이자 언어이고, 또한 감정의 표현이다. 평상시 그의 액션은 차가우면서 재빠르지만, 화가 날 때는 난폭하고 거침이 없다. 상대방의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정도는 그의 분노 수치를 말해주는 것이고, 그가 전속력으로 달릴 때면 소미를 찾겠다는 집념이 드러난다.

▶ 연기력이 외모를 앞지르는 원빈의 연기 제2막

'그 동안 봤던 것은 가능한 피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 이정범 감독의 말처럼, 영화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이 액션 시퀀스들은 제법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극중 살상 전문 특수요원 출신인 태식의 무술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브루나이 실라트, 필리피노 칼리, 아르니스 등 아시아 지역 전통무술 등이 혼합되었다고 알려졌으며, 맨손부터 손도끼와 칼, 총 등 사용되는 도구도 다양하다. 싸움의 무대 역시 좁은 화장실에서부터 지하 주차장, 그리고 탁 트인 갱들의 아지트까지 그 범위가 넓다.
'꽃미남'의 대명사 원빈은 새 영화 '아저씨'에서 강한 눈빛과 절도 있는 액션으로 강한 숫컷의 향기를 풍겼다.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꽃미남'의 대명사 원빈은 새 영화 '아저씨'에서 강한 눈빛과 절도 있는 액션으로 강한 숫컷의 향기를 풍겼다.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그리고 이 액션의 진수를 구현해내는 원빈의 '퍼포먼스'는 무척이나 강렬하다. 첫 액션연기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하기엔 그 완성도가 매우 높다. 수개월 동안 만들어졌다는 단단한 근육과 절도 있는 동작들은 가히 이 영화를 '원빈의, 원빈에 의한, 원빈을 위한' 영화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그의 남성적 매력을 폭발시킨다. 여성관객들이라면 사슴 같은 눈으로 거침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원빈의 남성미에, 남성관객들이라면 합이 딱딱 맞으며 박력 있게 펼쳐지는 그의 액션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늘 외모가 먼저 화제가 되었던 그의 배우 인생은, 이제 연기력이 외모를 앞지르는 제 2막으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소미역을 맡은 김새론은 영화의 든든한 조력자다.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첫 출연작인 '여행자'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바 있다. 실제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 감독 우니 르콩트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영화에서, 김새론은 부모로부터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 역을 맡았다.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유의 무심함과 차분함으로 세상에 홀로 버려진 아이의 절망을 훌륭하게 표현해내었고, 최연소의 나이에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 땅을 파 자신을 묻는 것으로 절규를 대신했던 아이답지 않은 서늘함과 슬픔은, 이번 영화 '아저씨'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가 적절한 완급조절을 하며 관객들의 긴장을 끝까지 늦추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무명에 가까운 조연들의 열연도 한 몫을 한다. 단 한 명의 영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굴러감에도, 만석(김희원), 오사장(송영창), 치곤(김태훈) 등 주변 인물들의 실감나는 연기는 사건의 개연성에 힘을 싣고 지속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촉매제가 된다.

허나,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과장과 신파를 눈감아 주긴 어렵다.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액션에 기대어 아무리 관대하게 넘어가려 해도,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식상한 대사는 시쳇말로 손발이 오그라들고 헛웃음이 나온다. 표정과 몸짓이 충분히 농익어있음에도 여전히 거슬리는 원빈의 힘들어간 대사는, 그것이 의도된 연출이라 하더라도,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며 이질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 '레옹' 보다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액션은 곧 태식(원빈)의 표정이자 언어이고, 또한 감정의 표현이다.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액션은 곧 태식(원빈)의 표정이자 언어이고, 또한 감정의 표현이다.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태식의 집착을 충분히 이해하기엔 소미와 태식 사이의 관계가 허술하게 그려진 것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의 초반 의아할 정도로 성큼 건너뛰어 버린 둘 사이의 이야기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태식의 추격신을 최대한 부각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덕분에 매우 감성적일 듯했던 영화의 호흡은 오히려 후반 누아르적 냄새를 물씬 풍기게 되는데, 영화를 본 후 '레옹' 보다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떠올렸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만일 소미와 태식 사이에 더 많은 감정의 화학작용이 허락되었다면,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예상했던 것과 오차범위가 크지 않았던)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기보다 진심을 다해 목 놓아 울었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계에서는 예상외의 히트작을 슬리퍼(sleeper)라 부른다. 처음으로 원톱 액션 연기에 도전한 원빈, '열혈남아'가 필모그래피의 전부인 이정범 감독, 역시 '여행자'가 단 하나의 출연작인 김새론 모두, 어떤 의미에선 아직 큰 기대를 걸기에 부족한 감이 있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은 '아저씨'에서 성큼 앞으로 전진했고, 이 영화는 올 여름 극장가의 슬리퍼가 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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