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1부]<4>정책정치 발목잡는 지역이기주의

동아일보 입력 2010-07-24 03:00수정 2010-07-2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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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치, 민심과 通하고 있나
“농촌 지역구 신경쓰다보니 FTA 결사반대 외칠 수밖에요”
■ 민주 재선 A의원
《‘민생정치’ ‘생활정치’ ‘정책정치’. 요즈음 우리 정치권의 화두가 되다시피 한 말이다. 실제로 상당수 국회의원은 휴일, 명절 구분 없이 1년 365일 지역구 곳곳을 샅샅이 훑는다. ‘생활정치’의 기치하에 지역 유권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많은 의원은 지역구와 유권자를 의식하다 보니 “생활정치가 민원정치로 전락하는 듯한 회의가 든다”고 토로한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차이점을 모르겠다”는 한숨도 나온다. 지역 이해관계가 우선시되는 현실에서 ‘정책정치’도 구호에 그치기 쉽다는 게 의원들의 고민이다. 예를 들어 세종시 문제만 해도 충청지역 의원들은 반사적으로 ‘원안’을 고수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정책정치가 지역현안 해결쯤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많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 유권자의 민원 해결에 매달리거나 지역만의 이익을 대변하려 하는 지역이기주의를 버려야 생활정치, 정책정치가 구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도 “국회의원은 지역과 정파, 소속 정당보다는 국익을 고려하는 것이 본래 직분”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올바른 이해가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민주당 재선 A 의원은 22일 낮 12시 서울 시내에서 공무원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지역구 현안인 혁신도시 건설에 대한 정부의 추진 상황을 듣기 위해서였다. 혁신도시 유치가 지지부진하자 지역에선 “유치를 앞당겨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오후 2시경 출발해 90분가량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한 종교단체의 행사. “꼭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15분 참석하기 위해 90분을 달려간 셈. 이어 다시 90분을 달려 중앙당이 지원 유세를 벌이는 7·28 재·보궐선거 지역을 찾았다. 유세는 30분 전 시작된 상태. 잠깐 동행한 뒤 다시 90분을 달려 지역구로 향했다. 벌써 오후 6시 반.

농협, 상인연합회 관계자 등과 4차례 회동을 하면서 막걸리 한 병, 삼겹살에 소주 한 병, 폭탄주 5잔을 마셨다. 주민들이 막걸리를 건네면 넙죽넙죽 잘 받아 마셔야 “이웃같이 소탈한 의원”이란 평을 듣는다. 이곳 숙소인 23평형 아파트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11시. 정신없이 잠에 빠져든 그는 23일 오전 5시 반 일어났다. 아침 당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2시간 걸려 여의도에 도착해 아침 일정을 마친 그는 정오경 다시 지역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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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군, 30개가량의 읍면동으로 이뤄진 그의 지역구에서 많게는 하루 8개의 일정을 소화한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주민들은 그가 나타나면 “쌀값 폭락을 대체 어떻게 막을 거냐”며 쌀값 문제 해결을 당부하고, 곳곳에서 “우리 동네 도로를 이번엔 넓혀줘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밤마다 상가를 찾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지역 주민들의 민원은 정말 다양하다. 이날 한 주민은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아들이 2차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비결을 듣고 싶다. 법조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아들의 취업 알선을 부탁한 주민도 있었다. 사실 해결 불가능하지만 애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국회가 열릴 때는 서울에 머물지만 이때도 신경은 온통 지역구를 향해 있다. 농림수산식품위 소속인 그는 농수축산물 개방 문제에 ‘결사반대’를 외친다. 국제화, 세계화, 개방은 막을 수 없는 조류란 걸 알지만 지역구를 생각할 때 한미 및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강경한 반대 의견을 낸다.

6·2지방선거의 이슈였던 세종시에 대해서는 ‘원안 고수’를, 4대강 사업에 대해 ‘즉각 중단’을 각각 외쳤다. 그게 당론이었다. ‘당론을 따르는 것이 당인의 자세’라는 생각만 했을 뿐 ‘어느 쪽이 옳은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편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공부했다. 박사다. 그러나 정계 입문 후엔 솔직히 신문 하나 제대로 읽는 것도 벅차다고 한다. 전문가들과의 정책 토론회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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