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게 된 미자(윤정희 분)가 가족의 죄를 통해 시와 현실의 괴리감을 절감하는 내용의 영화 \'시\'.사진제공 유니코리아.
글을 쓰기 전 망설였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먹먹함과 섬뜩함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영화 속 미자의 질문이 마치 나의 질문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선생님, 시상은 언제 찾아오나요?"
평범한 사람은 이렇게 짧은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은 너무나 완벽하고도 섬세하게 스크린 위에 옮겨낼 줄 안다. 그는 실로 대단한 표현력을 가졌다. 진정한 이야기꾼이다.
돌아보면 그는 항상 그랬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에 이르는 그의 여정을 보면, 그 속에는 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먹먹함과 고통과 슬픔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관객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과도한 과장을 하거나 얄팍한 조작을 하지 않아도, 그의 영화에는 늘 인생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통찰과 직관은 그의 다섯 번째 영화 '시'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했다.
▶ 시를 통해 세상을 발견한 할머니
미자(윤정희 분)는 일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다. 간병인으로 일하며 근근이 손자를 키우고 있다. 평생 한번도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을 것같은 삶의 고단함은, 인생의 황혼에 들어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단어를 자꾸 까먹는 그의 증상 - 의사가 '기분 나쁘다'고 표현했던 - 은 정신의 사형선고와 같다는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이제 명사를 잊을 것이고, 다음엔 동사를 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현실이 주는 절망에 전복되지 않는다. 대신 지역 문화센터에서 시 쓰는 법을 배우기로 한다.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와 하늘하늘한 스카프로 멋을 내는, 여전히 곱디고운 그녀에게 시는 참 잘 어울린다. 주위 사물을 보며 순간순간 떠오르는 시구를 적는 그의 모습은 진지하고, 노트에 적힌 시상은 낭만적이다. 옷차림이 좀 과한 거 아니냐며 비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고 실제로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면도 있지만, 그는 '제가 멋을 좀 부리죠'라며 해맑게 웃어 버리고 만다.
그에게 시는 현실과 대조되는 순수의 세계다.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삶의 감로수이자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소소한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위로다. 시는 또한 늘 우리 주위에 있으나 쉽게 자각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시적인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니 아름다움은 길가에 핀 맨드라미에도 있었고, 서민 아파트 앞에 서 있는 나무 그늘에도 있었다. 행복은 무지개 건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의 메시지가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아마도 문화센터에서 수강생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이야기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너무도 소박하다. 어떤 이는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노래를 가르쳐 준 순간을 이야기했고, 어떤 이는 반 지하방에서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갔던 순간을 꼽았다. 어떤 이는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았을 때를 이야기했고, 미자 할머니는 자신을 예뻐해 준 언니가 사랑을 가득 담아 이름을 불러주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전혀 거창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이 순간이 바로 그들의 인생에서는 가장 아름다웠던 때였다. 이처럼 소박한 진실로 이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가, 이전에 있었던가.
하지만 동시에 이 두 세계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진실 역시 감독은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두 세계는, 잔인하게도 가장 극적인 순간에 충돌한다.
미자에게 시는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삶의 안식처이자 위로다. 사진제공 유니코리아. ▶ 시와 충돌하는 잔인한 현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보여졌던 한 소녀의 죽음. 이 소녀의 죽음은 미자의 손자와 관련이 있다. 이 소녀는 죽기 전 일기를 썼고, 이 일기에는 미자의 손자가 어울리는 친구들의 집단 성폭행이 언급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의 앞날을 지키고 싶은 학부모들과 학교의 위신을 지키고 싶은 교사들의 이해관계는 교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법의 심판을 받기보다는 피해자 가족에게 합의금을 지급하여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려 한다.
그리고 소년의 아버지들은 합의금 5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미자를 탓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미자에게 같은 여자로서, 또 어른으로서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 인간적인 호소를 해 보라고 권한다. 미자는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다.
미자는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가던 논길에서 땅에 떨어진 살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살구 맛을 보고 떠오른 시상에 들떠 피해자의 어머니와 덧없는 수다를 떨고 만다. 백일홍과 살구와 삶의 소소한 행복에 대해 한참을 즐겁게 떠들다 돌아선 순간, 미자는 자신이 가해자의 보호자로서 이 곳에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바로 이 순간, 답답한 현실세계와 아름다운 시의 세계는 거세게 충돌하고 만다. 그리고 미자는 홀로 그 무게를 오롯이 감내하며 곤혹을 느낀다. 이 조용한 찰나가 주는 순수한 섬뜩함은, 어떠한 음악이나 효과음으로도 덧칠돼 있지 않지만 가슴을 울렁이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
아이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사건들은 감독이 전작 '밀양'에서 보여주었던 용서와 화해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도 한다.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인간들, 또는 뻔뻔하게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인간들의 부조리는 다시 한번 스크린 위에서 껍질을 벗는다. 그리고 그 부조리에 처한 한 여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대응방법은 지극히 현실적일 수밖에 없고,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절함은 신애에서 미자로 옮겨와 있다.
아들을 잃고 종교에 귀의했지만 그 종교로부터 오히려 상처를 받은 '밀양'의 신애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까발려 신에게 복수하려 했다. '시'의 미자 역시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인간의 은밀한 본능을 이용한다. 그는 간병인으로서 수발을 들어주고 있는 회장님의 집에 찾아가 '죽기 전에 딱 한번 남자구실'을 할 수 있게 해 준 대가로 (합의금으로 쓸) 돈을 요구한다.
소녀처럼 순수한 그에게 이는 어쩌면 너무도 잔인하게 강요된 현실이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울음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그에게 가혹한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회장님과의 노골적인 필담이 마치 시상을 적는 것처럼 그의 노트 위에 옮겨졌듯이, 순수의 세계는 미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현실의 세계와 지속적으로 교차한다.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시'에서는 늘 인생의 깊은 곳을 담담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감독 특유의 힘이 절정을 이룬다. 사진제공 연합. ▶ 시와 현실이 만날 때
처음 시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미자는 말했다. "선생님, 시 쓰는 것은 너무 어려워요." 그가 꿈꾸었던 시의 세계는 평생 한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미지의 무엇이었다. 시 낭송회에서 음담패설을 하는 경찰을 '시에 대한 모욕'이라고 힐난할 정도로, 그가 생각하던 시는 순결하고 예쁘기만 한 것이었다. 피해자 아버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책회의에 동참하지 않고 느닷없이 밖으로 나가 시상을 읊는 행동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에게 시는 현실과 분리된 도피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두 세계가 반복적으로 만나며 미자의 생활을 파고들자, 그는 점점 깨닫게 된다. 시란 현실의 추악함을 가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빠알간' 껍질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던 그는 어느 날 사과는 보는 것보다 먹어야 제 맛이라며 넉살 좋게 껍질을 깎아낸다. 시를 모욕한다고 비난했던 경찰에게서는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는다.
예쁜 꽃, 경쾌한 새소리, 넉넉히 익은 살구의 달콤함뿐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일상도 아름다울 수 있고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몸으로 받아들여 간다. 그리고 합의금을 건네고, 딸에게 연락하고 손자의 발톱을 깎아주고 조용히 경찰에 보낸 바로 그 날, 자신이 외면하려던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정리한 바로 그 저녁, 현실은 시상이 되고 그의 시도 완성된다.
그가 완성한 시 '아네스의 노래'는 소녀가 투신했던 바로 그 강물 위를 유유히 흐르며 영화의 마지막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긴 여운과 함께 2시간 19분의 영화도, 한편의 시가 된다.
'시'는 아날로그적인 영화다.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기술적 조작이나 마음을 교묘히 움직이기 위한 어떠한 기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바라보는 한 작가주의 감독의 순수하고 우직한 시와 같은 영화다. 자극적인 인스턴트식품 같은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도, 양념을 쓰지 않고 원 재료의 특성만으로 맛을 낸 듯한 이 영화의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임. 글을 마무리 짓고 있는 이 시점, 칸에서 '시'가 각본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만도 기쁜 일인데 거기에 본상까지 수상했다니 뿌듯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더구나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작가감독에게 각본상은 더욱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감독상이건 작품상이건 각본상이건, 어느 상 하나도 즐겁지 않은 것이 없고 자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도 황금종려상을 기대했던 언론 중 일부는, 이제 '각본상에 그쳤다'는 말로 헤드라인을 바꾸었다. 동일한 팩트를 다루고 있지만 '각본상 수상 쾌거'라는 말과 '각본상 수상에 그쳐'라는 말은 확연히 다른 가치평가를 내포할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함을, 스스로에 대한 교훈으로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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