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안현진] 따뜻하거나(NCIS:로스앤젤레스) vs 무덥거나(사우스랜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0일 17시 14분


\'NCIS: 로스앤젤레스\'의 투톱. 크리스 오도넬과 L.L. Cool J.
\'NCIS: 로스앤젤레스\'의 투톱. 크리스 오도넬과 L.L. Cool J.

"365일 중에 360일이 화창한 LA에서 유학중"이라고 필자 소개에 써놓긴 했지만, 한 1년 살아보니 LA라고 매일 그렇게 맑은 건 아니다. 보통 건조하고 햇살이 가득한 날씨, 라고 말하면 거짓말은 아니지만 일년을 기준으로 보면 나름 우기도 있어서, 2월엔 연일 분무기 뿌리듯 비가 내리기도 한다. 또 5월 중순을 넘긴 요즘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거꾸로 받고 있는지 아침저녁으로 긴 소매 상의를 챙길 정도로 쌀쌀하다.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 드라마로 넘어가려니까 좀 어려운데, 왜 뜬금없이 LA 이야기를 꺼냈는가하면, 최근 시즌2를 마친 TNT의 '사우스랜드'와, 첫 시즌 종영까지 에피소드 2편만을 남겨둔 CBS의 'NCIS: 로스앤젤레스'의 무대가 바로 이곳, LA이기 때문이다.

▶ 따뜻하거나, 무덥거나. LA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2편을 소개합니다

우선 'NCIS: 로스앤젤레스'부터 시작하자. 'NCIS: 로스앤젤레스'를 방영하는 CBS는 올해 시즌10을 달성한, 범죄수사물의 원조 'CSI 과학수사대'를 출범시킨 채널이다. 2010년 5월을 기준으로 'CSI: 뉴욕' 'CSI: 마이애미' '콜드 케이스' '넘버스' '크리미널 마인드' '멘탈리스트' 'NCIS: 미해군범죄수사대' 'NCIS: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최근 NBC로부터 인수해 방송 중인 '고스트 앤 크라임'까지 (휴우~) 다양한 소재의 범죄수사물을 방영중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CBS의 C가 혹시 '크라임(Crime)'의 C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 하지만 'NCIS: 로스앤젤레스'의 뿌리가 CBS라는 것은, 리모콘을 들고 어느 채널을 감상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청자로서는 신뢰할만한 지표가 아닐까?

타이틀이 말해주는 것처럼, 'NCIS: 로스앤젤레스'는 'NCIS: 미해군범죄수사대'(이하 'NCIS')의 스핀오프(Spin-Off: 드라마, 혹은 영화의 번외편)로, 'NCIS'는 2003년에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시즌7을 맞이한 또 하나의 장수 드라마다. 기존에 성립된 범죄수사물이라는 장르에 스크루볼 코미디의 성격을 절묘하게 배합시켜 줄곧 시청률 1위를 누려온 인기 시리즈이기도 하다. 'NCIS: 로스앤젤레스'의 출범은, 2009년 5월 'NCIS' 시즌6에서 에피소드 2편을 빌어 이미 예고된 바 있다. 테러조직의 국제무기밀매를 다룬 이 2편의 에피소드는 꽤 잘 만들어졌고, 'NCIS: 로스앤젤레스'가 'NCIS'의 적자(嫡子)임을 알려 시청자들의 기대를 높였으며, 그 효과는 나중에 시청률 2위라는 수치로 증명되었다.

▶ 'NCIS: 로스앤젤레스', 화려한 대도시의 대규모 범죄를 최첨단 장비로 뒤쫓는다

'NCIS: 로스앤젤레스'의 포스터. 야자수와 햇살이 가득한 LA를 배경으로 한다.
'NCIS: 로스앤젤레스'의 포스터. 야자수와 햇살이 가득한 LA를 배경으로 한다.
‘NCIS'와 'NCIS: 로스앤젤레스'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수사팀의 성격에 있다. 해군이 관련된 사건에 관여한다는 원칙은 같지만, 'NCIS: 로스앤젤레스'는 위장(잠입)업무를 주로 하며, 미해군범죄수사대라는 이름 뒤에 '특수공작국'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쉽게 말하면, 특수임무에 위장 투입되는 수사팀이라는 이야기. 특수공작국이다보니 지원하는 기술과 장비 역시 최첨단이다. 거대한 '터치' 스크린으로 둘러쌓인 상황실은 21세기를 무대로 묘사된 어떤 상황실보다도 우수한 기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우수한 기능이 SF에나 나올법한 거대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기에, 도시에 그물망처럼 깔린 감시카메라를 모조리 불러내 추적하는 장면을 보면 그 기기들의 능력에 가끔 소름이 돋는다.

'NCIS: 로스앤젤레스'를 이끄는 두 '수컷'은 반갑고도 신선한 얼굴들이다. G 또는 캘런이라고 불리는 위장전문 특수요원 역할은 '여인의 향기' '배트맨과 로빈' 그리고 몇 년 전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수의사로 잠시 출연했던 크리스 오도넬이 맡았으며, 캘런과 함께 테스토스테론을 발산하는 특수요원 샘 한나 역은 래퍼 출신의 배우 L. L. Cool J.가 연기한다. 이 두 사람 외에도 기술지원을 담당하는 에릭, 팀원 중 유일한 여자인 켄지, 심리학자 네이트, 신참 도미닉, 매니저 헤티 등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무리 없이 어우러지는 앙상블을 보여준다. 'NCIS'의 핏줄을 이어받아서인지 주거니 받거니 하는 팀원간의 농담 따먹기가 감칠맛 나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NCIS: 로스앤젤레스'가 시즌 시작과 함께 시청률 2위의 드라마가 된 데에는 두 가지 명백한 이유가 있다. 2009년 방영된 스핀오프 에피소드의 결말이 그 첫 번째. 사건을 해결한 뒤 샘과 기분 좋게 헤어진 캘런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돌연히 출연한 승합차에서 쏘아댄 기관총에 난사 당해 쓰러진다. 덕분에 'NCIS: 로스앤젤레스'는 캘런의 총상을 시리즈를 끌어가는 큰 사건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프로그램 편성을 들고 싶다. 'NCIS: 로스앤젤레스'는 과감하게 'NCIS'과 같은 날 연이은 시간대에 편성됐다. "인기드라마 'NCIS'를 다 보고 난 뒤 뭘 볼까 고민하지 마세요, 채널을 그대로 두시면 'NCIS: 로스앤젤레스'가 찾아갑니다." 게으른 시청자에겐 편리하고, 시청률에 굶주린 방송사에겐 영리한 선택이다. 그리고 시청률도 바람직하게 그 전략을 따라와 주었으니, '윈윈'한 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우스랜드'에서 가장 많이 보여주는 장면은, 순찰차에 탄 벤과 쿠퍼다.
'사우스랜드'에서 가장 많이 보여주는 장면은, 순찰차에 탄 벤과 쿠퍼다.

▶ '사우스랜드', 비열한 거리를 발로 뛰고, 비정한 악인을 손으로 잡는다

다음은 NBC에서 시즌1을 출발했으나 TNT로 옮겨서 시즌2를 방영했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최근에서야 겨우 시즌3의 방영이 결정된 '사우스랜드'다. 'NCIS: 로스앤젤레스'가 맑고 밝고 반짝이는 LA라면, '사우스랜드'는 작렬하는 햇볕 아래에서 도망칠 곳이 없어서 찡그린 얼굴을 할 수 밖에 없는 무더운 LA다. '사우스랜드'의 화면은 그렇게 건조하고, 그렇게 또 무심하다. 두 드라마를 한번에 소개하려니까 범죄수사물이라고 묶기는 했는데, 사실 '사우스랜드'는 '경찰드라마'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린다. 최첨단 장비, 기술지원이 있을 리 없다. 순찰차에 앉아 거리를 돌다가 무전으로 호출이 들어오면 급박하게 시동을 걸고 사이렌을 울리는, 유니폼에 권총을 차고 수갑을 차고 그리고 경찰봉까지 차고 거리로 나서는 순찰조, 그리고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진술을 받고 용의자를 만나고 수첩에 사건의 진척을 손으로 적는 형사들이 바로 '사우스랜드'의 주인공들이다.

'사우스랜드'는 오프닝부터 비장하다. 장중한 단조풍의 음악과 함께 범죄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지나가고 내레이션과 함께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이를테면 "베테랑 경찰은 집으로 일을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브라이언트 형사는 이 사실을 다시 힘들게 배워야 했다"라고 침착하게 미리 일러주는 식이다. TV앞의 시청자는 오늘의 주인공이 누구이고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짐작만 할 뿐인데, 그 사건들은 주인공들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냐'고 자문하게 할만한 그런 무거운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사우스랜드'가 보여주는 경찰 업무는 때깔 나고, 긴장감 넘치는 멋진 그림이 아니라, 너덜너덜하고 닳고 닳은 그런데도 그만둘 수 없는 끈끈한 무엇이다.

'사우스랜드'도 다른 드라마들처럼 주연과 조연 연기자들이 회마다 분량을 달리하여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눈에 띄는 톱스타보다는 눈에 익은 미드의 조연배우들이 많은 '사우스랜드'는 배역 마다 비교적 공평하게 이야기를 할당한다. 순경인 벤(벤자민 맥켄지)과 쿠퍼(마이클 쿠들리츠), 여경인 치키, 형사인 리디아, 브라이언트, 네이트 등의 인물과 그 가족에게도 조명이 골고루 돌아가는 편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을 지켜봐야했던 벤이 경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진짜 업무에 투입되면서부터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 계속해서 TV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한 가지 사건을 가지고도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을 채택하여 보여주는 시나리오 덕분이겠지만, 현실에서도 꼭 일어날 것만 같은 그렇게 짜증나는 일들이 주인공들에게도 매일 반복해서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우스랜드'의 포스터. NBC에서 첫 시즌을 방영했고, 시즌2부터는 TNT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사우스랜드'의 포스터. NBC에서 첫 시즌을 방영했고, 시즌2부터는 TNT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 같은 도시를 다르게 그리는 두 드라마의 시선

"가공되지 않은 진짜"라는 NBC의 설명처럼, '사우스랜드'는 드라마인데도 현실 같아서 보는 동안 종종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거친 입자의 화면이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때로는 핸드헬드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에피소드들도 그 설명을 거든다. 그런데 'NCIS: 로스앤젤레스'와 '사우스랜드' 둘 중에 어느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결정하기 망설여질 것 같다. 드라마로서 각각의 재미가 다르기도 하지만, 초콜릿이 맛있는 이유는 달콤한 동시에 씁쓸하기 때문이지 아니한가. 초콜릿이 달기만 하다면 오래지 않아 물릴 것이고, 쓰기만 하다면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하다.

사족 같지만 LA를 보여주는 두 드라마의 방식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다. 'NCIS: 로스앤젤레스'는 관광객에게 홍보하려고 만든 양, 해변과 고층 건물들을 빠른 속도로 회전해서 잡아낸다. LA를 떠올리면 먼저 연상될 이미지들을 화면에 쏟아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사우스랜드'는 내가 발로 밟고 다니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내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뒷골목을 낮은 시선으로 샅샅이 훑는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이미지 모두가 LA라는 것은, 이곳에서 1년을 채 보내지 않은 내가 말하기에도 어폐가 없을 것 같다. (참고로, LA가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니랍니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사람 사는 곳'이죠, 네.)

안현진/잡식성 미드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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