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지방권력 15년]<中>위기의 지방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자체수입 빈약한 기초단체…축제 등 전시행정엔 펑펑
교부금-국고보조로 충당…결국 중앙예산 갉아먹는 셈

《#사례1 대전 유성구청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유성구 봉명동 온천문화의 거리에서 이팝나무 꽃 축제를 열었다. 통상 5월 10일경 행사를 개최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행사를 10일가량 앞당겼다. 그러나 이상한파로 꽃이 전혀 피지 않은 상태에서 축제를 치렀다. 유성구청은 축제 예산으로 5억 원을 집행했다. 돈은 돈대로 썼지만 관람객은 줄어들었다. 지역에선 유성구청장의 6·2지방선거 재출마와 이 행사 개최를 연결짓는 시각이 많다. 유성구의회 의원들은 행사에 앞서 “유성구는 구 예산 250억 원가량이 부족해 지방채 발행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인데 축제에 거액을 쏟아 부었다”고 비판했다.

#사례2 경기 성남시는 지난해 11월 유명 개그맨의 사회로 신청사 개청식을 열었다. 공사비가 3000억 원이나 들어 호화청사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성남시는 개청식 이후 대규모 공연과 불꽃놀이까지 했다. 성남시는 이날 행사에만 2억여 원을 썼다. 성남시 관계자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청중 앞에서 시장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공식적인 행사가 몇 개 안 된다”고 털어놨다.

#사례3 2012세계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한 전남 여수시의 재정자립도는 28.8%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박람회를 준비하느라 지방채를 발행하면서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는 1734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미 2006년과 지난해에만 총 405억 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박람회장까지 연결되는 도로를 왕복 4차로로 확장하는 예산 388억 원 중 230억 원을 지방채 발행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19일 경기 성남시가 공사비 3000억 원을 들여 지은 신청사 개청식에 8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북적거리고 있다. 성남시는 인기가수가 축하공연 등을 한 이날 행사에 2억여 원을 썼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11월 19일 경기 성남시가 공사비 3000억 원을 들여 지은 신청사 개청식에 8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북적거리고 있다. 성남시는 인기가수가 축하공연 등을 한 이날 행사에 2억여 원을 썼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방자치단체의 곳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지자체의 낭비성 예산 지출이 계속되면서 지방재정이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 세입은 주는데 지출은 오히려 증가

5일 국회 입법조사처의 ‘지방재정 위기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인해 경기가 둔화된 데다가 감세 정책 등으로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은 2008∼2012년 약 18조6000억 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출은 오히려 줄지 않아 재정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입법조사처 분석 결과 2010년 총지방재정 세입 139조8000억 원 중 지방세와 세외 수입 등 자체 수입의 비중은 56.8%인 79조4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이는 2006년(60.3%)에 비해 3.5%포인트 낮아졌다. 그만큼 중앙정부에 기대는 의존재원의 비중이 높아진 셈이다. 특히 자체수입 비중이 높은 서울과 광역시에 비해 군(18%)과 구(35.4%) 단위의 자체수입 비중은 크게 낮았다. 전국 지자체의 올해 예산 중 자체수입을 제외한 의존재원은 지방교부세(25조5000억 원)와 국고보조금(29조7000억 원) 등이었다. 2009년 지방채 발행은 9조7817억 원으로 전년(3조7382억 원)에 비해 161.7%나 증가했다.

○ 지방재정은 여전히 방만 운영

재정지표는 나빠지고 있는데도 지방재정은 방만하게 운영해온 것으로 분석됐다. 감사원이 1995년 민선 자치단체장 선출 이후 축제와 전시행사 체육대회 등에 쓰인 예산을 분석한 결과 2003년 관련 예산은 1994년에 비해 14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조사처는 “최근까지도 이런 예산이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거액을 쏟아 부어 호화 청사를 지은 경기 성남시, 용인시처럼 1995년 이후 59개 자치단체가 청사 신축에 2조4883억 원을 썼다. 이 중 3583억 원은 지방채를 발행해 충당했다. 기초자치단체의 자체수입 비중이 30%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청사 건립과 낭비성 행사의 예산을 상당 부분 중앙 예산에서 충당해온 셈이다. 다만 입법조사처는 지자체가 당장 재정파산(fiscal bankruptcy)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했다. 전체의 90%를 넘는 지자체의 예산대비 채무 비율이 5% 미만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국 지자체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동원해 정부 교부금을 끌어다 각종 행사 등에 사용함으로써 중앙재정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입법조사처는 “지자체의 예산편성 및 집행과 지방채 발행을 중앙정부와 협의하도록 의무화해 자치단체장의 재정에 대한 권한을 일부 제한해야 무책임한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재정 악화에 책임이 있는 자치단체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개선을 명령하는 직무이행명령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