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정찰총국장, 위스키 따라주며 “배신자의 목을 따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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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한 간첩을 파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간첩파견은 북한 군부에서 대남 테러 및 해외공작을 전담하는 정찰총국이 신설된 이후 처음이라는 점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이 황 전 비서의 목숨을 직접 노린 사실이 적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여간첩 원정화 사건 당시 원 씨의 주임무는 황 전 비서의 주거지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이는 1997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황 전 비서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선 것에 크게 자극을 받아 보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잡았나

고향 묘사 他탈북자와 달라… 국정원 한달 추궁하자 자백

왜 암살 꾀했나
탈북자 주축 北민주화 운동… 구심점 제거로 경고 노린 듯

대담해지는 대남공작

‘위장 탈북’ 우려가 현실로… 천안함 사건 관련성도 의심


또 탈북자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는 그를 암살함으로써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되는 1만8000여 명의 한국 정착 탈북자에게 경고를 보내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직파간첩이 체포된 것은 2006년 7월, 국내 주요 시설을 촬영하고 친북세력을 포섭할 목적으로 입국한 정경학 씨 사건 이후 처음이다.

○ 정찰총국 지령… 中-태국 거쳐 입국

20일 구속된 김명호 씨(36)와 동명관 씨(36)는 정찰총국으로부터 황 전 비서 살해 지령을 받은 뒤 한국에 입국하기 위한 방법으로 ‘위장 탈북’을 선택했다. 북한이 탈북자로 위장해 간첩을 남파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들은 밀입국한 탈북자를 한국으로 강제추방하고 있는 태국을 입국 경로로 삼았다.

김 씨 등이 속한 정찰총국은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2006년 7월 직파간첩 정경학 사건 등을 담당했던 인민무력부 소속 정찰국과 노동당 소속 작전부, 35호실이 2008년 이후 통폐합돼 신설된 조직이다. 정부는 지난해 6, 7월 일어난 국가 주요 기관 사이버 테러 공격과 최근의 천안함 침몰 사건도 정찰총국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은 김 씨 등이 남파된 것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

두 사람은 북한을 빠져나온 이후 가명을 사용해 신분을 숨겼다. 특히 ‘황명혁’이라는 이름을 쓴 동 씨는 “황 씨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진급에 불이익을 받아 탈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북자보호소 합동심문센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향에 관한 답변 등 다른 탈북자들과 진술이 달라 집중 추궁을 받은 끝에 한 달여 만에 자신의 신분을 자백했다.

김 씨와 동 씨는 남파에 앞서 20년 가까이 군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1992∼97년 마동희군사대학에서 영어와 군사교육을 받은 뒤 2004년까지 인민무력부 정찰국 산하 ‘577소’에서 추가로 훈련을 받았다. 2004년부터는 35호실에 배속돼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과 요인 암살 특수훈련을 받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무술 고단자라는 점 때문에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는 국정원 소속 무술요원들과 법정경위 3명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정찰총국 총국장 김영철 상장으로부터 직접 황 전 비서 살해 명령을 받았다. 김 총국장은 이들을 남파하기 직전 가진 만찬에서 고급 위스키를 권하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은 뒤 “배신자 황장엽의 목을 따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 등은 한국에 들어온 뒤 고정간첩망과 접선해 도움을 받아 황 전 비서의 동향을 파악해 북한에 보고한 뒤 구체적인 살해 실행 지시를 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접촉하려 한 대상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영장 심사에서도 최후진술을 통해 “이미 일이 이렇게 됐으니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北, 꾸준히 살해 위협

황 전 비서에 대한 북한의 살해 위협은 이번 사건 이전에도 꾸준히 계속돼 왔다.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운영하는 온라인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달 5일 당시 일본을 방문하고 있던 황 전 비서를 겨냥해 ‘산송장의 역겨운 행각놀음’이라는 논평을 내고 “황가 놈이 도적고양이처럼 숨어 다니지만 결코 무사치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매체는 “가장 너절한 변절과 배신으로 현대판 유다로 저주받는 황가 놈은 비공개 ‘초청강연’이니 뭐니 하는 데서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악랄하게 헐뜯으며 기염을 토하였다”고 공격했다.

북한은 또 탈북자들을 통해 황 전 비서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황 전 비서의 주소와 동선 등을 1급 기밀로 분류하는 등 신변보호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황 전 비서에 대한 신변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12월 붉은색 물감으로 칠한 그의 사진과 손도끼, 살해협박문이 배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간첩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기획영상=황장엽, “김정일 정권이 北의 주인인가? 환상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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