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깔리자 긴장 더 팽팽… 바그람은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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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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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하태원 특파원 ‘아프간 종군기자 프로그램’ 1信
칸다하르∼카불 483km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
탈레반 저항 아직 거세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1개월여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지원하는 탈레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다. 그 이후 아프간에는 카르자이를 주축으로 하는 정부가 들어서 집권 2기를 맞고 있으나 혼란은 여전하다. 탈레반이 다시 세를 넓혀 가고 있다. 본보 하태원 워싱턴특파원(사진)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임베드 프로그램(Embed program·종군기자 프로그램)’에 참여해 제1신을 보내 왔다.》

17일 오전(현지 시간) 기자를 태우고 두바이 공항에서 이륙한 바그람 미군 공군기지행 전세기가 1시간 반 정도를 비행했을까. 기장이 기내방송으로 항공기가 아프간 영토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헬만드 주를 지나고 있다고 했다. 창밖으로 내다본 헬만드 주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이었다. 아프간 주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제안보지원군(ISAF)과 아프간 정부군이 최근 벌인 마르자 대공세로 사실상 탈레반 세력을 파키스탄 국경 밖으로 몰아낸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으며 밤이 되면 탈레반의 저항이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기는 칸다하르 지역으로 넘어갔다. 여전히 황토색 사막의 향연이었지만 군데군데 민둥산이 드러났다. 산 위에 나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계곡으로 물이 흘렀던 흔적이 드러났지만 바닥이 바싹 말라 거북 등딱지 같은 표면이었다. 언뜻 2000년과 2007년 남북 장관급회담 취재차 탑승했던 평양행 특별기에서 내려다 본 북한의 산하가 떠올랐다. 북한 역시 녹지대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민둥산이었지만 그래도 앙상한 나무줄기는 눈에 띄었다. 하지만 칸다하르 지역에는 과연 나무가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프간 남부 최대 도시이자 전통적인 탈레반의 거점도시였던 칸다하르는 1747년 이란 장교 출신인 아마드 샤 두라니가 수도로 삼고 아프간에 처음으로 민족적 독립왕조를 수립한 곳이기도 했다. 칸다하르를 지나 북쪽으로 방향을 잡자 처음으로 길다운 길이 나타났다. 바로 칸다하르와 카불을 잇는 483km의 고속도로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킨 뒤 대표적인 전후복구 사업으로 1억90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로 불린다. 탈레반의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테러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2007년 7월 경기 성남시 샘물교회 자원봉사자 23명이 납치된 곳도 바로 이 도로였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순간에도 간간이 차량 행렬이 눈에 띄었다. 항공편 편도 탑승권이 100달러 이상이기 때문에 아프간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6달러만 내면 탈 수 있는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수도인 카불 근처에 이르자 도시 형태를 갖춘 집단주거지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렇기만 했던 땅에는 드문드문 경작지가 눈에 띄었다. 아프간에서 농업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고 전체 일자리의 70%를 공급할 정도의 주요 산업이다.

‘T월’ 수백개 두른 철옹성… 군인들 식사때도 총 놓지않아

10년째 전쟁으로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을 현지 취재하기 위해 아프간 주둔 미군이 운영하는 종군기자 프로그램(Embed·임베드)에 참여했다. 17일부터 25일까지 바그람 미군기지에 머물면서 미군이 벌이고 있는 탈레반과의 전쟁 전략과 실제 병력운용, 아프간 현지의 경제 재건을 위한 미국의 활동, 지방재건팀(PRT)의 운영실태 등을 취재하게 된다.

또 5월경 공사를 시작하고 7월부터 임무를 시작하는 한국 독자운영 PRT 현장을 둘러보고 치안상황과 안전대책 등을 상세히 알아볼 계획이다. 바그람 기지 내에서 최근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 병원과 직업훈련센터 소식도 전할 예정이다.

기자는 아프간 주둔 미군 동부지역 사령부의 ‘태스크포스 울버린(TF Wolverine)’에 배속돼 미군 장병들이 탑승하는 특수방탄장갑차(MRAP)를 타고 바그람 기지 밖에서 벌이는 군사작전 및 민간작전을 현장에서 취재하게 된다. 안전을 위해 10kg이 넘는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군용 헬멧을 쓴다. 기자는 7박 8일간 미군이 배정한 간이숙소인 호텔 캘리포니아에 머문다. 객실명은 로스앤젤레스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군인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게 만든 목조 조립식 막사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그람 기지 큰 사진은 하태원 특파원이 25일까지 아프가니스탄 종군 취재를 위해 머물게 될 바그람 미군기지를 비행기에서 촬영한 모습. 아래작은 사진은 바그람 기지 안에 탈레반 공격에 대비해 설치한 미사일 공격 대피호. 바그람 미 공군기지=하태원 특파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그람 기지 큰 사진은 하태원 특파원이 25일까지 아프가니스탄 종군 취재를 위해 머물게 될 바그람 미군기지를 비행기에서 촬영한 모습. 아래작은 사진은 바그람 기지 안에 탈레반 공격에 대비해 설치한 미사일 공격 대피호. 바그람 미 공군기지=하태원 특파원

<1신> 대테러전 교두보 바그람 美공군기지

모래바람 몰아치는 사막에 격납고 3개 활주로 2개

탈레반 툭하면 로켓탄 공격…기자도 10kg 방탄조끼 필수
조립식 나무막사서 첫날밤


현재 국토 전체의 12% 정도인 790만 ha가 경작이 가능하지만 고질적인 가뭄 등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절반인 6%만이 경작되고 있다. 그나마도 아프간 국민의 약 9%인 200만 명이 아편 재배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전 세계 유통 아편의 92%를 생산하고 있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2시간 반 만에 힌두쿠시 산맥의 만년설이 나타나자 바그람 미 공군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1492m 고지대에 위치한 바그람 기지는 3개의 격납고와 길이 3000m의 활주로 2개를 갖추고 있다.

17일 둘러본 바그람 기지는 거대한 공사장을 연상케 했다. 현재 미국은 2억 달러를 투입해 기지 내 기반시설과 주둔 장병 편의시설 공사를 벌이고 있다. 또 부대 주요 시설 곳곳에는 탈레반의 로켓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대형 방호벽인 T월(T자 모양의 강화 콘크리트 벽) 수백 개가 서 있고 유사시 대피하기 위한 대피터널도 있었다.

매일 진행되는 공사에 사막의 모래바람까지 겹친 바그람 기지는 사람들이 눈을 뜨고 걸어 다니기 힘든 형편이었다. 게다가 바그람 기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왕복 2차로인 디즈니 스트리트는 군용 차량과 공사용 차량, 그리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민간요원들의 차량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도로 기능을 상실하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도로의 먼지 탓인지 기지 내 식당 입구에는 예외 없이 손을 씻는 곳이 설치돼 있었다. 비누로 1분 이상 손을 씻지 않으면 식당 출입이 금지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시속 5km 미만의 거북운행을 하는 중간에도 곁길에서 디즈니 도로로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에 거의 양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미군 관계자는 “아마도 모두가 총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바그람 기지에 있는 ISAF 소속 미군들은 예외 없이 소총이건 권총이건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브래드 밀러 대위는 “자신의 막사에서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무기를 놓을 수 없게 돼 있다”며 “군복을 입고 있든, 운동복을 입고 있든 예외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군용식당에서 군인들은 모두 허리춤이나 어깨에 총을 소지한 채 식사를 했다.

오후 6시가 되자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내려서 그런지 바그람 기지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밝아 보였다. 갑자기 기지 한편에 있는 배구 네트에 일과를 마친 장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배구를 하기 시작했다. 조지 헨드릭 병장은 “이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책”이라고 말했다. 영내에 있는 레크리에이션센터에도 여가를 즐기는 장병이 많았다. 당구나 축구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보드게임을 즐기는 장병도 있었다. 일부 병사는 그저 소파에 편하게 앉아 소설을 읽기도 했다.

기지 내에서 군인들에게는 음주와 섹스가 엄격히 금지돼 있다. 하지만 자체 통계에 따르면 2009년 45건의 성추행 사고가 발생했다. 미군 측은 야간에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 3월에 태양열을 이용한 가로등 150개를 설치했다. 군 매점이 있는 곳에 위치한 이발소는 장병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차지하는 곳이라고 현지 근무인력들은 귀띔했다. 키르기스스탄 여성들이 머리를 손질하는 이곳에는 이발 외에 마사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근무 중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장병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기도 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바그람 기지 내 인적은 급격히 줄었다. 그 대신 기지 곳곳을 순찰하는 미군들의 감시가 더욱 강화됐다. 막사와 막사 사이를 돌며 이상한 흔적이 없는지를 점검하는 미군들의 눈에서 테러나 안전사고를 차단하려는 결의가 보였다. 하지만 바그람 기지는 2007년 2월 당시 바그람 기지를 방문했던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을 노린 폭탄테러로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하사가 사망하는 등 탈레반의 테러 위협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9년 6월에도 탈레반의 로켓탄 공격으로 2명의 미군이 숨지고 6명의 민간인이 부상하는 일도 있었다.

17일 밤 12시를 넘긴 시간까지 다행히 아무런 공격 신호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시간에도 굉음을 울리며 군용기가 이착륙하는 등 바그람은 잠들지 않았다. 바그람 기지 임베드 첫날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바그람 미 공군기지(아프가니스탄)=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바그람 기지는?
알렉산더 - 소련군도 주둔했던 군사 요충지
탈레반, 아프간 95% 장악할때
끝까지 점령 못한 천혜요새


아프가니스탄 주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주력군으로 활동하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이 앓고 있는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중앙아시아의 교차로이자 동양과 서양을 잇는 주요 육상도로의 연결지점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 속에서 아프간은 고대(古代)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감내해야 했고 바그람 기지는 그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바그람 기지는 마케도니아의 유명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재위 기원전 336년∼기원전 323년)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 인도를 공략할 때 처음으로 만든 군사 주둔지다. 이후 1979년 아프간 공격을 감행한 옛 소련군이 철군한 1989년까지 10년간 군사기지로 활용한 곳이다. 힌두쿠시 산맥에 움푹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바그람 기지는 초기부터 옛 소련 공수부대와 비행여단의 아프간 남부 공격의 전진기지로 활용됐다.

이후 바그람 기지는 소련군의 철군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결성된 북부동맹과 남부 칸다하르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한 탈레반이 벌인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중심에 서게 된다. 아프간을 통일하겠다며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 양측은 바그람 기지를 수중에 넣기 위해 지속적인 전투를 벌였다. 바그람 기지 주변에 세워진 전봇대에 아직도 남아있는 총탄의 흔적은 당시 치열했던 백병전의 상황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

탈레반은 결국 1998년 북부산악지대 일부를 제외한 아프간 전 영토의 95%를 장악했지만 결국 바그람 기지 전체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 뒤 2001년 9월 미국 세계무역센터 건물 테러사건이 탈레반 정부의 비호를 받던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의 소행으로 알려진 뒤 미국은 그해 10월 7일 아프간 공격을 감행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탈레반 붕괴를 위한 군사작전의 주요 기지 역시 바그람 기지였다.

바그람 미 공군기지=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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