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G20서 2020 G10으로]<3>‘그린이 살길’ 녹색성장 엔진 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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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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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 빅3’ 스페인 가메사 “무작정 뛰어들면 낭패…녹색 기초-경험 쌓아야”


태양전지 강자 中선테크

대량생산보다 기술력 우선
350여명 다국적 연구진
효율 높이고 가격은 낮춰


몰타 전력史바꾸는 美IBM

스마트그리드 새 엔진 삼아
1년간 테스트로 실력 검증
몰타 1155억원 사업 따내


덴마크의 베스타스, 미국의 GE윈드와 함께 세계 풍력발전 설비제조업체 ‘빅3’로 꼽히는 스페인 가메사의 마드리드 지사. 밖에서 보기에는 여느 기업 사옥과 다를 게 없지만 사무실에 들어서면 녹색성장의 동력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사무실 곳곳에 걸려있는 풍력발전 터빈의 제조 공정과 제품 사진이 가메사가 어떻게 세계 풍력 시장을 이끌어 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회사가 처음 풍력발전 시장에 뛰어든 1997년의 매출은 6600만 유로(약 1090억 원). 11년 만인 2008년엔 34억9900만 유로(약 5조7730억 원)로 매출이 무려 53배로 뛰었다.

지난해 12월 15일 이곳에서 만난 페드로 아르티구 아시아태평양담당 디렉터는 13년째 세계 풍력발전 시장을 누벼온 이 분야 베테랑. 그는 신재생 에너지 등 녹색산업의 성장세를 ‘언빌리버블(Unbelievable·믿기 어렵다)’로 요약했다.

그는 “처음 이 업무를 담당할 때는 ‘이런 기술도 있구나’ 하는 수준이어서 이렇게까지 시장이 커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지금까지의 성장 속도도 놀랍지만 앞으로는 더욱 경이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전지, 풍력발전,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 등을 아우르는 녹색산업은 2000년대 들어 매년 20% 이상씩 성장하는 세계 경제의 신형 엔진이다. 최근 녹색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만난 글로벌 녹색 기업들은 우리보다 분명 한 발짝 앞서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정확한 시장 예측과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없이는 ‘그린(Green)의 꿈’이 정말 꿈으로만 그칠지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 스페인, 신재생 에너지 선진국으로

아르티구 디렉터는 인터뷰 도중 회의실 벽면에 붙어있는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이 회사가 2011년 첫선을 보이려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G10’이라는 차세대 풍력발전 터빈으로 발전용량이 세계 최대인 4.5MW다. 가메사는 이 제품으로 세계 풍력발전 시장을 뒤흔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스페인이 풍력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 부문에서 선진국으로 불리는 데는 정부의 지원도 한몫을 했다. 1980년대부터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독려해온 덕분에 태양열, 풍력발전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지난해 스페인 전체 전력 생산에서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24%로 2020년에는 전체의 50%까지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2007년 기준 이 비율이 1.4%에 불과할 정도로 이 분야의 후진국이다.

스페인 에너지절약 및 다변화연구소(IDAE) 마가레트 로제 매니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재생 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사용하면 정부가 일정한 금액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며 “이를 통해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 기업이 출현했고, 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기술력은 점점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아르티구 디렉터는 한국 신재생 에너지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실제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위해 방한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수 시장에서 성공한 후에 세계 시장에 나갈 수 있는데 한국은 내수 기반이 약해 인접한 중국, 일본보다 이 분야의 경험과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가메사도 스페인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 해외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 ‘녹색기술’에서도 앞서가는 중국

지난해 12월 12일 중국 장쑤(江蘇) 성 우시(無錫)의 선테크(SUNTECH) 본사. 건물의 외벽이 온통 유리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건물 디자인이 특이하다’고 하자 선테크의 셰샤오난(謝曉南) 부총재는 “유리처럼 보이지만 태양전지판이다. 본사와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40%가량을 태양전지로 충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취재팀이 방문한 이날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탓에 햇빛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는 “중국이나 한국과 같이 기후 변화가 심한 곳에서도 태양전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태양열을 전력으로 바꾸는 비율인 전환율을 높이는 기술이 향후 이 시장에서 성패를 가르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선테크는 이를 위해 중국, 일본, 독일, 호주 등 다양한 국가 출신으로 구성된 350여 명의 연구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같은 R&D 역량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기업들이 태양전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국내에서는 ‘반도체처럼 양산 체제를 구축해 생산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업체들의 성공 확률이 높다’는 낙관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셰 부총재는 이에 대해 “기술력이 우선”이라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기업이 넘어야 할 장벽은 기술력뿐만이 아니다. 중국과 미국 시장에 진출한 스페인 중견 태양전지 설치 업체 아프리마는 납품업체 다변화를 위해 지난해 말 한국 기업과 접촉했지만 계약을 하지 못했다. 이 회사의 에스텔라 리 마케팅 디렉터는 “한국 제품의 효율성은 선테크보다 떨어지고, 가격은 기타 다른 중국 업체보다 비쌌기 때문”이라며 “기술력과 브랜드를 갖추는 것도 좋지만 낮은 가격을 유지해야만 쉽게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중해 작은 섬의 똑똑한 전력망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는 지금 거대한 사업이 진행 중이다. 몰타의 전력망 전체를 스마트그리드로 교체하는 프로젝트로 녹색산업에 관심 있는 전 세계 기업이 주목하고 있다.

약 7000만 유로(약 1155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25만 개의 몰타 내부 아날로그 전기미터기를 정보기술(IT)기반 미터기로 교체해 실시간으로 가구별 전력량을 파악, 전력 활용도를 높이는 그린 프로젝트다. 한국도 스마트그리드 비전을 통해 2030년까지 68조 원 규모의 내수시장을 창출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밝힌 상태다.

몰타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미국 IBM은 2006년부터 미국 에너지국과 함께 스마트그리드 시범사업인 ‘올림픽 페닌슐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 워싱턴 주에서 1년 동안 이뤄진 이 사업에서 IBM은 스마트그리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했다. 귀도 바텔스 IBM에너지 유틸리티부문 대표는 “1년 동안의 테스트 운용에서 25%의 전력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둬 대부분의 가구가 계속 사용하겠다고 할 정도였다”며 “한국은 IT 기술에 앞서 있는 만큼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드리드(스페인)·우시(중국)=특별취재팀
풍력 진출 6개월만에 5000억원 수주… 스마트그리드 단지 2400억원 투자…
한국 녹색산업, 늦었지만 힘찬 발걸음

지난해 12월 STX그룹은 폴란드에서 날아온 낭보에 환호했다. 세계 풍력발전 시장에 뛰어든 지 6개월 만에 자회사인 STX윈드파워가 3억 유로(약 5000억 원) 규모의 풍력발전단지 개발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STX는 “폴란드 BCG, 그린에너지 등이 참여하고 있는 풍력발전단지 개발 컨소시엄과 220MW 규모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며 “이에 따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기어리스형 풍력발전 설비를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등 동유럽 지역에 공급하게 된다”고 밝혔다.

세계 풍력발전 시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은 STX뿐만이 아니다. 이미 많은 국내 기업이 풍력발전, 태양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 시장에 진출했다. 또 원자력발전소,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 등과 같은 녹색 산업에서도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국내 기업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해 세밑을 달궜던 40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프로젝트 수주 성공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업체는 두산중공업이다. 두산중공업은 원자로 및 터빈발전기 기술력을 토대로 원전 주기기 업체로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이 회사는 원전 외에도 풍력발전, 바닷물 담수화 사업 분야 등에서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다. 두산중공업 측은 “2005년 이후 3000억 원을 녹색성장 분야에 투자한 결과 지난해 10월 아시아 최초로 3MW급 해상풍력시스템 실증 플랜트 설치에 성공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투자로 녹색분야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효율적인 전기 사용으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도 본격 추진되고 있다. SK텔레콤, 한국전력, LG전자, KT, GS칼텍스 등이 참여해 2011년 제주도에 시범 조성되는 실증단지에는 친환경 그린홈과 전기차 인프라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당초 1200억 원 규모였던 민간 기업의 투자 규모가 2배로 늘 만큼 기업들의 관심과 열의가 뜨겁다”며 “‘그린 IT’ 기술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 수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박현진 경제부 차장
▽미국 영국=박형준 기자
▽핀란드 프랑스 스위스=정재윤 기자
▽싱가포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세형 기자 (이상 경제부)
▽독일 오스트리아=강혜승 기자
▽스페인 중국=한상준 기자
(이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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