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 매이면 확증 편향
유능한 경영자가 되려면
경험 바탕한 직관력 키워야
한국 리더들은 직감보다는 정보와 통계 등에 더 의존하는 분석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성이 여성보다 더 분석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인은 즉흥적인 성격이어서 직감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가 많을 것이라는 일부의 예단과는 다른 결과다.
하지만 분석적인 의사결정 성향이 강한 리더들은 심리적 오류에도 쉽게 빠져, 오히려 직관적인 리더들보다 의사결정의 오류에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직관에 의존하는 리더들이 심리적 오류에 쉽게 빠진다는 기존 학설과는 상반된 내용이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안서원 연세대 심리학과 연구교수와 함께 국내 최초로 기업체 과장급 이상 리더를 대상으로 의사결정 유형 등을 파악하기 위한 ‘인지 스타일 척도(CSI)’ 조사와 심리적 편향성 분석을 실시했다.
이번 연구는 국내 최초로 기업 리더들의 의사결정 유형을 분석하고, 의사결정의 심리적 편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영국 리즈대 경영대 연구팀이 1996년 개발한 척도를 활용해 국제적인 의사결정 유형의 비교도 시도했다.
이 조사는 8월 17일부터 27일까지 e메일과 오프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총 165명의 기업 간부들이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 참가자의 평균연령은 48.4세. 대표이사 등 임원급 이상 응답자는 109명으로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남성은 149명(90.3%), 여성은 16명(9.7%)이었다.
|
○ 세계 평균보다 더 분석적인 한국의 리더
이번 조사에서 한국 기업 리더 165명의 CSI 점수는 평균 45.5점(최저 11점∼최고 68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각국에서 9427명의 리더(MBA 전공 학생 포함)를 대상으로 실시된 86번의 CSI 조사 평균치(41.8점)보다 3.7점 높다.
CSI 조사는 의사결정 유형을 판단하기 위한 기법으로 38개 문항에 대한 점수(최고 점수는 76점)를 합산해 ‘직관(intuition)’과 ‘분석(analysis)’의 두 기준 중 어디에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분석적이다.
이번 조사결과 한국 기업리더들은 멕시코의 벤처 사업가(45점), 중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42.8점), 호주 IT 설계자(41.9점), 미국의 벤처 사업가(40.7점)보다 더 분석적 성향을 보였다. 반면 홍콩 경영자(50.1점), 영국 전자업계 중간 관리자(46.5점), 캐나다 변호사(46.3점)들은 한국보다 더 분석적인 유형으로 나타났다.
안 교수는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에서는 일회성의 복잡한 단서를 고려하는 직관적 의사결정이 많이 일어난다”며 “농경사회에서 초기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는 분석적인 사고가 우위를 차지하지만,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직관적인 사고가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성의 평균 점수는 46.5점으로, 여성의 평균 점수(36.5점)보다 10점이 높았다. 여성보다 남성이 더 직관적이며 후기 산업사회에 맞는 의사결정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 분석적일수록 심리적 오류에 취약
이번 조사에서는 대표이사와 임원급 109명(66%)을 대상으로 의사결정 스타일과 심리적 편향성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분석적인 스타일의 임원들이 틀 효과(framing effect), 매몰 비용 편향 등의 심리적 오류에 더 쉽게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틀 효과는 대안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틀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같은 내용이지만 긍정적인 틀(50개의 프로젝트 중 30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연구팀)과 부정적인 틀(50개의 프로젝트 중 20개의 프로젝트를 실패한 연구팀)을 제시해 1억 원 한도에서 얼마의 연구비를 지원하겠는지를 물었다.
분석적인 스타일의 임원들은 긍정적인 틀이 제시됐을 때와 부정적인 틀이 제시됐을 때 응답 값의 차이가 약 1698만 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직관적 스타일인 임원의 긍정 틀과 부정 틀의 차이는 약 234만 원에 불과했다. 분석적인 스타일이 틀 효과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매몰 비용 편향도 분석적인 스타일의 임원에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매몰 비용이 있을 때 계속 투자하겠다는 응답은 분석적 스타일이 66.7%, 직관적 스타일은 48.1%로 조사됐다. 분석적 스타일이 매몰 비용에 더 연연하는 셈이다.
이는 분석적인 사람들의 심리적 편향이 작을 것이라는 이중처리체계 이론의 기존 연구 결과와는 다른 결론이다.
안 교수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 사안이 복잡해지면서 분석적인 접근이 어려워진다”며 “성공적인 경영자일수록 직관적 스타일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기준점 효과(anchoring effect)’와 ‘매몰 비용 편향’ 현상이 한국 기업 리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기준점 효과는 미리 제시된 기준점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현상으로 예컨대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이 먼저 제시한 가격(기준점)이 최종 가격 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례를 들 수 있다.
○ 유능한 경영자가 되려면 순간 판단력을 키워라
‘기준점 효과’에서 벗어나려면 여러 개의 기준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의 기준점을 고려하거나, 혼자서 수치를 추정하고 나중에 기준점과 비교하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협상과정에서 상대방의 초기제안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협상 시작 전에 자신의 기준점을 미리 정해두는 게 좋다. 거꾸로 먼저 기준점을 제시하고 협상을 주도할 수도 있다.
매몰 비용 편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잘못 내린 결정을 스스로 인정하고 매몰 비용에서 자유로운 제3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다.
안 교수는 “경험에서 나오는 패턴 인식능력(순간 판단력)을 뜻하는 ‘전문성으로의 직관’을 키워야 유능한 경영자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피드백을 구하고 기록해 자신의 직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