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정운]입꼬리가 처지는 만큼 삶은 허전해진다

  • 입력 2009년 8월 8일 02시 59분


요즘 내게 강연요청이 많이 온다. 어지간한 요청에는 다 응하지만 강연하기가 꺼려지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우선 사장님이 모인 자리다. 대부분 조찬모임이다. 새벽에 일어나기를 싫어하는 내게 조찬강연은 정말 큰 고역이다. 그뿐만 아니다. 강연하려고 올라서면 대부분 팔짱을 끼고 아주 무표정하게 올려다본다. 웬만한 강연은 다 들어봤기에 ‘어디 한번 해보라’는 표정이다. 참 감당하기 힘들다.

지위 오를수록 부정적 표현 잘해

두 번째로 힘든 집단은 교수다. 이들은 내 강의를 열심히 듣는다. 내용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강의를 평가하기 위해서다. 교수들은 남의 이야기에 설득당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 아주 묘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도 이 범주에서 예외는 아니다. 세 번째, 여기는 정말 강력하다. 과천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이다. 중앙부처의 국장급 이상을 교육하는 곳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다. 그래서 이곳을 ‘강사들의 무덤’이라 부른다. 어떤 강사도 한번 가면 다 죽어나오기 때문이다.

강사를 좌절하게 하는 이 세 집단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이들의 얼굴 표정은 신기할 정도로 닮아 있다. 한결같이 입꼬리가 내려와 있다. 입꼬리가 처지는 것은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아주 묘한 현상이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여자에게도 입꼬리가 처지는 현상은 예외 없이 나타난다. 입꼬리가 처지는 만큼 어투도 아주 묘하게 권위적이다.

도대체 입꼬리는 왜 내릴까? 간단하다. 볼의 근육을 움직이지 않기 위해서다. 볼의 근육이 퇴화되어 입꼬리가 처지는 경우는 예외다. 볼의 근육은 긍정적 정서를 표현할 때 움직이는 근육이다. 웃을 때는 볼의 근육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볼의 근육을 못 움직이게 입꼬리를 힘줘 내린다. 스스로 ‘존귀와 위엄’을 갖추려는 행동이다. 볼의 근육이 마비되는 만큼 이마의 근육만 발달한다. 이마의 근육은 부정적 정서를 표현할 때 움직인다. 긍정적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은 사라지고 부정적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만 발달한다는 이야기다.

한국 남자에게는 아주 이상한 습관이 있다. 자기가 볼의 근육을 움직여 긍정적 정서를 먼저 표현하면, 즉 자신이 먼저 웃으면 권력관계에서 밑으로 들어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남자는 가장 먼저 이 권력관계를 확인하려 한다. 마치 동물의 수컷이 뿔이나 이빨을 드러내며 서로의 서열을 정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 또한 권력관계를 확인하려는 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권력관계가 불분명하면 마지막으로 서로의 나이를 확인하며 권력관계를 결정한다. 위아래가 불분명한 일처럼 한국 남자를 불안하게 하는 점은 없기 때문이다. 일단 권력관계를 확인하면 서열에 따라 얼굴 표정도 결정된다.

‘타인의 기쁨’ 함께 누려야 참 행복

인간의 신경세포에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 존재한다. 타인의 정서표현을 거울처럼 똑같이 흉내 내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는 이야기다. 타인이 울면 따라서 울고, 웃으면 따라서 웃는다. 같은 내용도 웃으며 이야기할 때 더 설득력이 높은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으며 듣기 때문이다. 오래된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도 바로 거울뉴런 때문이다. 생김새가 닮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서를 흉내 내는 얼굴근육이 비슷해져서다. 정서를 흉내 내는 능력은 타인의 내면의 상태를 유추하는 이해능력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동일한 의미체계를 공유하는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으로 발전한다. 서로를 이해하는 인간의 의사소통능력은 바로 거울뉴런의 활동 때문에 가능해진다.

입꼬리가 처진다는 것은 타인의 긍정적 정서상태를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망가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최고경영자(CEO), 교수, 고위공무원의 긍정적 정서교감 능력이 한결같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다.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타인과의 의사소통능력이 사라진다. 그 대신 부정적 정서는 아주 빨리 공유된다. 이마의 근육은 아주 섬세하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분노, 적개심이 이토록 빠르게 전파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처진 입꼬리로 인해 삶이 형편없이 외로워진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의 기쁨이 있다. 내 기쁨을 남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처진 입꼬리는 웬만해선 올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은퇴한 후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보통사람에 비해 몇 배나 높다. 요즘 괜히 사는 게 우울한가?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쉽게 좌절하는가? 나를 이해해주는 이가 없어 한없이 외로워지는가? 거울 한번 보기 바란다. 분명 입꼬리가 내려와 있을 것이다. 아, 내 가족, 내 이웃의 기쁨을 공유할 수 없는데 어찌 내 삶이 즐거울까?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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