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어제 ‘사단법인 시대정신’이 주최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정치적 자유와 평등, 참여와 경쟁, 법의 지배 등을 민주주의 내용으로 볼 때 이명박 정부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근거는 없다. 헌법을 지키려 하지 않고, 이를 단속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주장한다”고 반론을 폈다.

최근 일부 대학교수가 발표한 시국선언은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임 교수의 시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국선언 교수들이 민주주의 위기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서울광장 봉쇄와 미디어 관계법 정비 추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등이다.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 위기론의 합리적 근거가 되는가.

서울광장 봉쇄를 집회 시위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주장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불법 폭력이 예상되는 대규모 집회 시위를 금지했었다. 1999년 5월 한총련 출범식, 2000년 4월 자동차 4사 노조의 서울 도심 차량 시위, 2001년 민노총의 부평역 노동자대회,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2006년 11월 서울광장 총궐기 대회, 2007년 3월 서울 도심 시위도 모두 경찰의 원천봉쇄와 저지로 무산됐다.

서울광장, 청계광장이나 대한문 앞 인도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의 자유가 소중하면 남의 자유와 평화도 소중하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고 타인의 행복권을 침해하는 폭력은 헌법도 보장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로 무장한 시위대가 3개월 넘게 서울 도심을 마비시킨 작년의 광우병 시위가 바른 민주주의는 아니다.

미디어 관계법 제정 개정을 반대하며 좌파매체들의 기득권만 보호하려는 것도 민주주의 수호와 거리가 멀다. 현행 방송 체제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초법적으로 단행한 1980년 언론통폐합의 유산이다. 신규 방송사 진출 기회 확대와 경쟁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게 미디어 관련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단 말인가. 방송체제 개편은 미디어 산업 발전과 고용 확대의 계기도 된다. 더욱이 미디어 관계법은 올 3월 여야가 6월 국회에서 표결처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신문법은 노무현 정부 때 일부 위헌 판결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엔 좌파 매체들도 그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제 와서 ‘정치보복’ ‘정치적 타살’ 운운하는 것은 기회주의적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비리 혐의가 있어도 수사할 수 없다면 법치가 무너진다. 이런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시국선언 교수 중 상당수는 좌파성향 단체 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소속이다. 지난날 좌파정권에 우호적이었고 일부는 정치참여도 했던 그들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보수 정권을 위축시키고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려는 정파적 의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시국상황을 판단함에 있어 객관성과 합리성, 균형감각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지성인들이라면 표류하는 의회민주주의를 살리라고 해야 옳은 것 아닌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