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모르는 건 무식한 게 아니라…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단지 섭섭한 일’일 뿐입니다

어제 한 TV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다가 “모르는 건 무식한 게 아니라 단지 섭섭한 일”이라는 말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우리가 남들에게 무식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모르는 상식과 맞닥뜨릴 때마다 속으로 당황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요. 상대의 무식을 발견하면 우리는 또 얼마나 엄격하게 재단해왔습니까.

그러나 ‘무식하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몰라줘서 섭섭해해야 한다’는 것은 무료한 주말 저녁 TV에서 건져 올린 예상치 못한 탁견이었습니다.

몇 년 전 옛 정보통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질의서에 적힌 ‘3G(3세대) 이동통신’을 ‘삼지’라고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삼세대’ 또는 ‘스리지’라고 읽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보좌관이 적어준 대로 그냥 읽는구먼, 무식하게…”라며 비난한 일이 새삼 미안해집니다.

사실 정보기술(IT) 분야는 새로운 용어가 거침없이 등장하는 ‘무식의 지뢰밭’입니다.

얼마 전 통신업체들이 요금을 내린다고 줄줄이 내놓은 통신상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망내 할인’ ‘기본 약정’ ‘할부 지원’ 등 난무하는 전문용어를 모르면 혜택을 제대로 받기 어려워 보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휴대전화 대리점 직원의 복잡한 설명을 여러 번 듣고도 제대로 이해 못한 채, 쑥스러움을 느끼며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할 테죠. 이들이 소비자의 무식을 진정 섭섭하게 생각했다면 좀 더 쉽게 요금을 내려줘야 합니다.

앞으로는 전문용어에 주눅 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기자가 직접 목격한 일화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청년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모르는 건 단지 섭섭한 일’이라는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몇 년 전 광복절. 종로 한복판에 대형 태극기를 든 너덧 명의 ‘처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태극기를 바닥에 놓은 뒤 손과 발에 물감을 묻혀 발랐습니다. 이때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거리의 행인들을 술집으로 잡아끌던 몇몇 ‘애국 청년’들이 다가왔습니다.

“어이, 아가씨들. 태극기에 뭔 짓이여.”

“저희 지금 행위예술을 하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광복절인데 이래도 되는 거여?”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태극기 행위예술단’의 대장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나섰습니다.

“아. 아저씨들, 우리 지금 퍼포먼스하는 겁니다.”

움찔한 한 ‘애국 청년’이 말했다.

“그러면 그거라고 진작 말하지. 이게 뭐요? 헷갈리게.”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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