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4년만의 ‘바이 코리아’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1분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4분기였다. 겉만 보면 대규모 구조조정의 칼바람으로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내몰린 시기였다. 그러나 ‘불황형 흑자’로 경기 하강세가 둔화됐고, 급락했던 주가와 원화가치가 오르면서 금융시장에 온기(溫氣)가 퍼져갔다. 외국인 주식매입한도 철폐로 운신의 폭이 넓어진 외국인 투자가들은 저평가된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이른바 ‘바이 코리아(Buy Korea)’였다.

▷다소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2004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이런 추세는 그해 하반기부터 바뀌었다.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Sell Korea)’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고 우리 증시가 공포와 혼란에 빠진 지난해 하반기까지 지속됐다. 한국의 ‘얼치기 전문가’들은 코스피 500 선이 곧 무너진다고 겁을 주었다. 하지만 미국 투자전문가인 짐 로저스는 비관론이 팽배하던 작년 10월 한국 경제와 증시의 ‘새벽’을 내다보고 한국 주식을 매입했다. 당시 로저스는 “지금 투자하면 4, 5년 뒤에는 큰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했지만 최근 코스피는 1,400 선을 넘어 7개월 만에 약 50%나 올랐다.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 진짜 전문가의 실력을 보여 준 셈이다.

▷로저스보다는 타이밍이 늦었지만 외국인들이 다시 한국 증시에 몰려오고 있다. 3월 초부터 이달 21일까지 외국인의 주식 순매입액은 8조2000억 원을 넘는다. 원화가치 약세와 기업들의 노력에 힘입어 3, 4월 두 달 연속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기업실적 및 거시경제 지표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좋다고 판단한다. 외국인들은 원화가치가 오를 때 환차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4년 만에 재현된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가 본격적 추세로 굳어질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늦어지거나 한국의 정치사회적 불안이 커진다면 외국인 투자가들은 언제든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개미 투자자’들이 뒤늦게 따라갔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한국 증시가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계속 매력적인 시장으로 남을 수 있도록 기업 정부 사회가 공동 노력할 때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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