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갈등 해결의 룰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중국 사람은 워낙 다른 게 많아서인지 되도록이면 같은 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반면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서 그런지 다른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3년간 베이징에서 특파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 기자가 두 나라 사회 분위기를 비교한 말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이 많아 분열될 소지가 많은 만큼 통합에 주안점을 두고, 우리는 비슷한 게 많다 보니 자꾸 가르거나 나누려 한다는 분석이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보면 일리 있는 지적이다.

대북 문제, 지역 문제, 부동산 정책 등은 우리 사회를 심하게 가른 이슈들이다. 사안마다 상반된 시각 때문에 시끄러운 날이 많았다. 최근에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폭력사태로 번지는 일까지 잦아지고 있다. 이달 초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 취소도 그러한 예다. 시위대가 개막식 식전행사 도중 서울광장 무대를 점거하는 바람에 구경나온 시민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치 지난달 태국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아세안+3’ 정상회의장에 난입하는 바람에 회담을 취소한 일을 연상하게 한다. 그 사건으로 태국의 국제 신인도가 크게 떨어졌고, 관광객들도 줄어들었다. 서울의 이번 시위도 알게 모르게 서울의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시위대는 지난해 MBC PD수첩 보도로 촉발돼 날이 가면서 불법으로 변질된 거리시위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도부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관련 없는 문제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민노총은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진 주장에 열성이다. 좌파와 우파, 평등과 자유 등 서로 다른 생각들로 심하게 갈라져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다른 나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이 우리와 비슷하다. 인종, 종교의 차이로 갈라져 우리보다 훨씬 심하게 싸우는 곳도 적지 않다. 20여 년간 싸우고 있는 스리랑카의 신할리족과 타밀족 간의 갈등, 이라크 내 쿠르드족과 아랍족 간의 갈등,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이 그렇다. 또 중국은 티베트 문제가 소수민족 분리 독립의 뇌관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고, 미국에선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는 했으나 흑백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독일에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동서 간 지역차별이 존재하고, 프랑스에서는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불만들이 방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갈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주요 변수다.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나라들은 우연하게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훨씬 넘는다. 이들 나라에선 갈등이 시스템으로 처리돼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2만 달러의 벽을 넘지 못해서인지 아직 갈등 처리에 미숙하다.

남과 생각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민주적 절차를 따라 일을 진행하면 될 일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게임의 룰이 필요하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존중하는 관용과 함께 다수결의 원칙 등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룰이 아닐까. 제 편을 늘리는 과정에서 폭력이나 거짓 선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거리에서도 국회에서도 모두 지켜져야 한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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