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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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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식애(海蝕崖)로 유명한 채석강변 관광지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금방 후회했다. 건물에 간판을 단 것인지, 아니면 간판으로 건물을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요란하기 짝이 없는 풍경과 소음에 진저리치고 말았다. 난장(亂場)도 그런 난장이 없었다. 결국 우리 부부가 간 곳은 조금 떨어진 김밥집. 3000원짜리 김밥을 먹고, 채석강변의 럭셔리한 리조트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난장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변산 난장에 우리 교육행정의 실경(實景)이 겹치기 시작했다. 웬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도 도무지 알아먹기 힘든 입시제도, 점수면 점수지 원(原)점수는 뭐고,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는 또 뭔지, 급기야 ‘T점수=(원점수-평균)/표준편차’라는 신종 표준화점수까지 등장하고. 그리고 이젠 고등학교를 고르는 메뉴판에도 웬 메뉴가 그렇게 많은지…일일이 열거하려면 끝도 없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공사(公私) 교육정책은 또 어떤가. 연세대 김한중 총장이 그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각 대학이 지원자들의 진짜 실력을 가려내기 위해 비교과 영역을 강조하다 보니 입시가 복잡해져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더욱 의지하게 된다. 입시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 말이 더 기가 막힌다. 대학들이 ‘진짜 실력’을 가려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면 ‘가짜 실력’이 그만큼 많다는 얘긴데, 정말 요지경이 따로 없다. 변산 난장이 울고 갈 지경이다.
어지럽기 짝이 없던 중국 춘추시대 말기, ‘주례(周禮)의 단순이상향’으로 복귀하자고 외쳤던 공자의 절박한 심정이 헤아려질 정도다.
단언컨대, 제도가 복잡한 이유는 십중팔구 관료들 탓이다. 독재·권위주의 시대의 관료들은 민간의 정보 접근 자체를 차단함으로써 제도를 그네들의 이권보호막으로 삼았다. 세상이 바뀌고 투명성이 강조되자 그들은 ‘문호는 개방하되 미로(迷路)를 만드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꿨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마저도 고교가 만드는 게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주는 다양화다. 그뿐인가. 미래기획 전사(戰士)가 나타나 ‘전사(戰死)’를 각오하고 공교육은 공교육답게, 특목고는 특목고답게 바로잡겠다고 창검을 세워도 곧 관료들의 미로에 갇히고 만다.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 근대건축의 거장인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남긴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모토다. 장식에 대한 욕심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가장 아름답고 본질적인 건축공간이 탄생한다는 뜻이다. 요즘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은 물론이고 의자 하나까지도 뭔가 ‘작품’이다 싶으면 미니멀리즘의 영향이 엿보인다. 교육이야말로 관료들이 만든 허울좋은 장식과 규제의 껍데기를 모두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겨야 한다. 전사의 기치(旗幟)도 그런 미니멀리즘이어야 한다.
김창혁 교육생활부장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