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노무현 레일’을 달리는 ‘이명박 열차’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꼭 3년 뒤인 2012년 4월 17일은 한미 군사동맹에 큰 획을 긋는 날이다. 60여 년 군사동맹의 사실상 종착점이 될 것인지, 새로운 차원의 튼튼한 동맹관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합의한 계획대로라면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한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내놓고 연합사령부(CFC)도 해체된다.

전작권과 연합사는 한미 군사동맹의 상징이자 실체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이 ‘칼집’이라면 연합사는 ‘칼날’이라고 말한다. 연합사 없는 군사동맹은 무의미하며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다. 혹시라도 주한미군의 감축 수순(手順)에 들어간다면 큰일이다.

2012년 戰作權전환 재검토할 때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부터 노무현 정권의 전작권 전환(환수) 결정에 대한 재검토 의사를 수차례 밝혔다. 작년 2월 취임을 앞두고는 동아일보-아사히신문-월스트리트저널과의 공동인터뷰에서 “남북관계와 핵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재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희 국방장관도 그 무렵 국회에서 “매년 안보상황을 지속적으로 평가해 요인이 생기면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대포동 2호 로켓 발사실험을 강행했고, 유엔의 제재에 직면하자 6자회담 파기와 핵개발을 계속할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은 도발 가능성으로 팽팽한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 한반도의 이런 안보상황 변화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자세에는 변화의 움직임이 없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이 깔아놓은 위험한 레일 위를 계속 달려가는 형국이다. 2007년 2월 전작권 전환에 양국이 합의한 지 2년이 넘었다. 이제 가속도까지 붙어 종착역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양상이다.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는 전쟁수행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게 될 것이다. 방위개념이 ‘공동 책임’에서 ‘한국 주도, 미국 지원’의 형태가 되고, 전작권 행사 및 작전 수행도 이원화(二元化)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연합작전을 하지 않으면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쟁의 원칙이고 전사(戰史)의 교훈이라고 지적한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 연합군과 유엔군의 승리, 베트남전쟁 때 단독작전에 치중한 미군의 패배가 그 본보기다.

유사시 주한미군의 자동개입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도 예상된다. 미군이 해공군 위주의 증원병력 69만 명을 한반도에 배치하려면 미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북은 속전속결로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 목표다. 심지어 주한미군도 직접 공격을 받지 않는 한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 용산 기지가 평택으로 옮겨가면 자동개입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사 해체 기뻐할 사람은 김정일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전언은 한미연합 전력(戰力)이 한반도 평화의 필수 조건임을 잘 시사해준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방북한 카터는 미국의 영변 핵시설 공격 준비와 관련해 “김일성이 겁을 먹고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김정일은 2012년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북은 미군 핵무기 철거,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핵무기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완전히 철거됐고,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됐다. 3년 뒤엔 주한미군 감축 시계가 째깍째깍 소리를 내기 시작할지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미군과 점점 멀어지는 ‘노무현 레일’을 벗어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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