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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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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은 이들의 시위를 수수방관했다. 회의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바람에 각국 정상들도 우왕좌왕했다. 이런 혼란 속에 이명박 대통령은 12일로 예정돼 있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하루 앞당겨 열자고 중국과 일본 측에 제안했다. 두 나라는 “그게 좋겠다”고 동의했다. 무산될 뻔했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린 것은 격식보다는 내용을 따지는 이 대통령의 ‘선제적 대응’에 힘입은 바 크다.
한중일 정상회의에선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놓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신경전이 팽팽했다고 한다. 두 정상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이번에도 이 대통령이 나섰다는 후문이다.
“로켓 문제에 대해서는 3국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며 그래야 어떠한 형식이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해 조속한 시일 안에 단합된 목소리로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의 중재로 3국 정상은 “북한에 강력한 목소리를 보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경제 대통령’을 기치로 대선에서 승리를 했던 이 대통령이 의외로 외교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의 국정운영 평가에서 이 대통령의 외교 역량 항목은 다른 항목보다 점수가 10%포인트가량 높게 나온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각국 정상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적잖은 성과를 거두곤 한다. 또 의전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이다. 영어도 뒷받침된다. 리셉션이나 회의 중간 각국 정상들과 영어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서로를 가깝게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각국 정상들의 회동에서 주된 화제는 단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 경제회생 문제다. 여기서 이 대통령은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 경험과 자신의 개인적인 기업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대화를 풀어가기 때문에 타국 정상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지난달 호주를 국빈 방문했을 때 케빈 러드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러드 총리의 즉석 제안으로 예정에 없던 ‘맥주 대화’를 한 것도 그런 이유다.
국제 질서의 새 판이 짜이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외교 역량은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은 공허하다. 아마도 각국 정상들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대응책을 숙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경제 회복의 전망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공동의장국이 될 만큼 국제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어려운 나라 살림에 눈길을 돌려보면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주목받는 게 혹시 외화내빈(外華內貧)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국제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 못지않게 경제를 살리는 ‘경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이 가장 먼저 회복되기를 무엇보다 절실히 소망한다. 이 대통령이 혹시라도 ‘외교 대통령’에 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