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이영]커튼콜 38번-앙코르 10곡 ‘키신의 소통법’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38차례의 커튼콜, 10곡의 앙코르와 자정이 지나도록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 피아니스트. 그 사인을 받으려고 구불구불 줄을 선 관객들….

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러시아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의 독주회가 열렸다.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으로 시작해 쇼팽 연습곡 작품번호 25번 중 11번을 마지막으로 오후 10시 5분 공연이 끝났다. 탄탄한 기교와 완벽한 음색에 “브라보!”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 뒤로 퇴장한 키신이 다시 등장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불꽃놀이처럼 터졌다.

감정 표현과 말이 없기로 널리 알려진 키신은 미소를 머금고 눈빛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객석을 바라봤다. 뒤돌아서서 합창석에 앉은 관객에게도 정중히 인사했다.

이어 키신은 10곡의 앙코르 연주로 ‘또 한 차례의 독주회’를 선사했다. 쇼팽의 녹턴부터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까지 앙코르 무대가 1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관객은 앙코르 곡이 끝날 때마다 환호와 갈채를 보냈고, 키신도 웃는 표정이었다. 그런 키신에게 관객은 더 큰 박수를 보냈다. 8번째 앙코르곡(쇼팽의 마주르카)을 치고 일어설 때 키신은 지친 기색을 보였으나 두 곡을 더 선사했다.

밤 11시 반경 앙코르가 끝난 뒤 키신은 1시간가량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밤 12시 반경. 행사가 너무 늦게 끝나 어쩔 줄 몰라 하는 공연기획사 관계자에게 키신은 “늦은 시간까지 곁을 지키고 응원해준 팬들이 고맙다”며 ‘굿(good)!’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음악 신동’으로 불리던 키신은 10세에 데뷔한 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곤 피아노와 사는 ‘연습돌이’로 통한다. 이번 무대를 위해 3월 30일 오후 한국에 온 키신은 31일부터 매일 서울 예술의 전당 실내악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공연 당일에도 리허설을 오후 7시 15분까지 하는 바람에 공연 30분 전에야 겨우 관객을 들일 수 있었다.

이날 네 시간 반 동안 키신을 지켜보면서 그의 세계에는 피아노와 연습, 관객만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키신은 공연 전 기자 간담회에서 “앙코르로 통상 서너 곡을 준비하지만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10곡의 앙코르는 한국 관객의 열광적인 갈채에 대한 화답이었던 셈이다.

커튼콜이나 앙코르를 가볍게 여기는 아티스트들은 없겠지만, 이번 키신 독주회는 아티스트가 관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무대였다.

조이영 문화부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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