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떠들게 하라, 아이디어가 솟는다

  • 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 DBR리포트 “사내 제안에 불황극복 해답있다”

‘과거는 묻지 말라.’

버려지는 다이아몬드 가루를 체에 한 번 더 걸러보자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연 3억 원어치의 원재료를 추가로 확보하고 있는 일진다이아몬드는 ‘과거 불문(不問)’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가 자칫 “왜 진작 이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느냐”는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은 이처럼 독특한 시스템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불황 극복을 위한 최고의 아이디어는 외부의 전문가나 고학력 컨설턴트가 아니라 내부 직원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혁신적 기업들의 제안제도 성공 요인을 분석한 동아비즈니스리뷰 29호(3월 15일자) 스페셜리포트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재미있어야 제안도 나온다

웅진코웨이는 지난해 4월 ‘상상오션’이란 제안제도를 만들었다.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나 이에 달린 댓글을 심사해 우수 등급 판정을 받으면 보상 명목으로 포인트를 지급하는 제도다. 보상은 ‘새우’로 지급된다. 새우 1마리는 현금 100원에 해당하며, 새우 100마리부터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새우 1만 마리가 모이면 돌고래 1마리(100만 원 상당)와 교환할 수 있다.

웅진코웨이는 10단계의 등급제도 도입했다. 아이디어를 적게 낸 직원은 ‘초보 선원’이며, 아이디어를 많이 낸 직원은 ‘선장’에 오를 수 있다. 돌고래가 3마리 이상이면 ‘항해사’ 자격으로 미주 및 유럽 연수 기회를 갖고, ‘선장’ 단계에 올라가면 특진 기회까지 주어진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제안제도를 만들자 직원들의 반응도 확 달라졌다. 2007년에는 직원 1명당 월평균 제안 아이디어가 1.36건에 불과했지만, 상상오션 도입 후인 지난해 7월에는 8.61건으로 늘어났다.

○ 책임 추궁하는 문화를 없애라

일진다이아몬드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세계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한 중국 업체 때문에 적자에 허덕였다.

이런 가운데 2007년 1월 취임한 이윤영 사장은 직원들의 혁신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TOP(Total Operational Performance)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TOP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과거 불문’ 원칙이다.

이 사장은 “몇 년간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며 “왜 제안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진작 그렇게 했어야지. 이제까지 뭐 하다 지금 얘기하는 건가’라는 질책을 당할까 봐 망설인다는 직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낭비 요소에 대한 잘잘못을 직원들에게 추궁하지 않아야 개선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과거 불문 원칙에 기초한 제안제도를 운영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직원들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절약한 비용은 2007년 6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 7개월간 총 22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단순한 제안제도가 효과 크다

제안 방식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아이디어는 간단한데 이를 제안하려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구체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 반드시 적어내라고 요구하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제안 절차가 까다롭거나 복잡하면 직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LG전자 창원공장의 에어컨 사업부는 이런 복잡성을 없애기 위해 2007년부터 작업 현장에 ‘낭비 제거 제안 현황판’을 설치하고 포스트잇을 활용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도록 했다. 제안 채택 과정도 간단하다. 해당 작업 감독자가 포스트잇 아이디어를 보는 즉시 채택 여부를 판단해 채택된 아이디어에 도장을 찍는다.

단순한 제안제도로 탄생한 아이디어가 바로 부품 박스를 실어 나르는 로봇 자동차(AGV·Auto Guided Vehicle)다. AGV는 제품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일정 속도로 안전하게 각 생산라인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한다. ‘빈 박스를 치우는 일까지 사람이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라는 한 직원의 아이디어로 AGV가 탄생했지만 현재 100여 대가 운행되면서 엄청난 인원과 경비 절감을 이뤄냈다.

○ 제안제도 성패는 교육에 달려

사내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교육이야말로 직원들의 제안 동기를 강화할 가장 좋은 기회다. 일단 제안을 할 만한 시간적 여건을 만들어주고, 스스로를 계발할 기회를 줘야 직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유한킴벌리는 근무체계 변경으로 발생한 직원들의 여가시간을 학습 및 제안제도와 연결해 성과를 창출했다. 유한킴벌리는 1998년 외환위기 속에서 국내 기업 중 거의 최초로 4조 2교대 근무제를 채택해 감원 없이 고용을 유지했다. 이어 직원들의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착안해 ‘평생학습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제안 및 학습제도 연계 체제를 도입했다.

생산 및 기능직 사원들을 위한 4조 2교대 근무는 주간 4일 근무(하루 12시간)→휴무 4일→야간 4일 근무(하루 12시간)→휴무 3일 및 교육 1일의 순서로 이뤄진다. 즉 16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교육 시간 때 직원들이 학습 기회를 활용해 당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스스로 발굴하도록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생산 및 기능직 사원들의 호응이 높았다. 자신의 생산 과정을 면밀히 이해하고 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회사 군포공장은 1998년에는 직원 1인당 제안 건수가 4.3건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11.2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유아용 기저귀의 생산성도 1998년 시간당 25.4개에서 2008년 46.8개로 증가했다. 또 1998년 0.49%에 달했던 유한킴벌리의 재해율은 2008년 0.06%로 하락했다. 이는 국내 제조업 평균 0.9%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경영지식의무한보고-동아비즈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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