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40>

  • 입력 2009년 3월 2일 13시 16분


뜻밖의 초대는 불길하다.

앞장선 사라가 '바디 바자르' 건너편 골목으로 바삐 접어들었다. 민선도 사라를 따라 보폭을 넓혔다.

두 사람은 둔각과 예각으로 어긋나게 꺾이는 골목을 20분이나 돌아다녔다. 사라가 속도를 유지한 채 말했다.

"왼쪽으로 돌면 쪽문이 나와요. 그 안으로 숨는 거예요."

민선이 등 뒤를 의식하며 답했다.

"오케이."

두 사람은 몸을 직각으로 돌리자마자 곧바로 허리를 숙여 쪽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행하던 석범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사라가 속삭였다.

"제 방으로 가요."

다시 부엉이 빌딩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고철이 그득 쌓인 뒷마당으로 들어섰다. 녹슨 철 계단이 콘크리트 벽을 따라 똬리를 틀었다. 사라가 발을 얹자, 철 계단이 삐걱 삐거억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이, 이거 안전한 거예요?"

민선이 철 계단에 다리를 얹으려다 말고 물었다. 사라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단을 오르며 답했다.

"그럼요. 2009년 3월 3일 완공된 다음엔 단 한 사람도 떨어지지 않은 튼튼한 계단이랍니다."

민선이 양손으로 탱크탑을 고쳐 올린 다음 첫 계단을 밟으며 다시 물었다.

"다리는 괜찮으세요?"

어제 대련을 하다가 사라의 왼발이 통째로 뽑혔던 것이다.

"우는 발 말이죠? 말끔해요. 최박 솜씬 민선 씨도 잘 알잖아요?"

왼발만 자꾸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볼테르는 그 발이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일부러 우는 아이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 발은 '우는 발'이 되었다. 사라의 기계몸은 볼테르가 직접 고쳤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라는 계단을 쿵쿵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검붉은 녹들이 눈처럼 떨어져 민선의 긴 머리와 벗은 어깨에 떨어졌다. 민선이 얼굴을 찡그리며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녹 부스러기가 손금에 가득 앉았다.

하긴, 30분이나 격렬하게 스테이지를 누비고도 말짱하니까.

민선도 두 손을 탈탈 털고 사라처럼 뛰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쿵 철 계단이 울리고 흔들렸다. 이음쇠가 부서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계단과 벽에 틈이 벌어진 곳도 여럿이었지만 그 곁을 지날 땐 더 힘껏 발을 굴렸다.

서사라의 방은 텅 비었다.

책상도 침대도 옷장도 없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벽의 일부인 시크릿 냉장고를 제외하면, 가로 세로 6미터 남짓한 정사각형은 텅 비었다.

"정말, 사라 씨, 놀리는 게 아니라 ……정말 놀랐어요. 여기가 사라 씨 방 맞아요?"

"들어오세요."

민선이 텅 빈 방으로 들어가서 바닥에 앉았다. 사라가 냉장고에서 맹물 두 잔을 가져왔다.

"혹시 다른 음료가 필요하면……."

"아뇨. 목마를 땐 물이 최고죠."

기계몸의 비율이 높을수록 깨끗한 물을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 자연몸의 탈수 증세를 기계몸이 완벽하게 대처하기엔 아직 해결할 과제가 많았다. 사라가 물을 홀짝홀짝 마시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짐작하시겠지만, 83퍼센트 기계몸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턴 여러 가구랑 물품을 내다버렸죠."

"저도 가끔 수퍼스마트슈트를 입긴 하지만 특별한 날을 위해 천연 섬유로 만든 옷도 마련해 둔답니다."

수많은 의복회사를 도산시킨 발명품이 바로 수퍼스마트슈트였다.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최소한 백 벌까지 변신이 자유롭기 때문에 의복회사와 옷가게의 폐업이 줄을 이었다.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친 후 성격이 판이한 두 의복회사만 살아남았다. 한 쪽은 수퍼스마트슈트를 생산하는 회사고 한 쪽은 천연 섬유로 옷을 짓는 회사였다.

"83퍼센트 기계 몸을 천연 섬유로 가리는 것 자체가 난센스죠."

"오늘 솔직히 세 번 놀랐어요."

사라가 질문 대신 민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라 씨가 '바디 바자르'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처음 놀랐고요. 또 이렇게 직접 방으로 날 데리고 올라가리라 상상한 적이 없기에 또 놀랐죠. 그리고 텅 빈 방이라니!"

사라는 비밀이 많은 여자였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라면 사소한 습관 하나도 밝히기를 꺼렸다. 신체의 83퍼센트를 기계로 채운 후유증이라고 꺽다리와 뚱보는 혀를 차댔다. 격렬한 대련을 마치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듯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여자였다.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고 집으로 누구를 초대하는 일은 더더욱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검은 무희 사라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보안청 사내는 언제부터 달고 다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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