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반병희]성공의 덫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김원준과 박병엽. 두 사나이가 돌아왔다.

꽃미남의 원조 김원준은 1990년대 한때 최고의 ‘아이돌’ 가수였다. 5집 앨범을 낼 때까지 거침이 없었다. ‘성공’은 그를 위해 준비된 말 같았다. 내친김에 그는 6집부터 혼자 앨범을 제작했다. 그러나 이후 실패를 거듭했고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전국의 행사장을 있는 대로 쫓아다니며 쓴맛을 본 뒤에야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은 새 솔로 앨범 준비와 함께 뮤지컬 ‘라디오 스타’의 주연 배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의 인생 역정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1991년 창업 후 2004년까지 연간 50% 이상의 성장을 이끌며 ‘벤처 신화’를 창조했다. 준수한 용모에 탁월한 사교성을 갖춘 그는 비즈니스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끝없이 영광을 구가할 것 같던 그도 경쟁사 신제품에 맥을 못 췄고 급기야 2006년에는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처절한 구조조정과 혁신 노력으로 팬택은 이후 여섯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작년 같은 경기 불황에서도 2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두 사나이는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빠졌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가 지나친 자신감에 빠져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가 밀랍 날개를 태워버린 것처럼. 잇따른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김원준은 홀로서기를 감행했다. 박 부회장도 큰 성공을 경험한 탓에 소비자의 기호 변화, 국내외 경쟁구도 재편에 소홀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공의 덫에서 벗어났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재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자존심이나 기득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김원준은 재기를 위해 어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부회장은 회사 지분, 즉 오너의 지위를 기꺼이 내놓고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이들은 마침내 ‘자신을 경영할 줄 아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많은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며 성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 도사린 위험을 경계하는 사람은 드물다. 성공은 강한 자기 최면을 불러온다. 성공을 많이 체험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경험과 지식, 지혜가 항상 옳다는 최면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나 의사결정에 대한 과도한 확신을 갖는 순간 성공은 무서운 독(毒)이 된다.

성공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진 확률을 낮추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상당수 의사는 오진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단 과정을 공개하고 실수가 없었는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회의를 연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상황은 사뭇 다른 듯하다. 윗사람의 의사결정에 자유롭게 이의를 제기하는 문화를 가진 기업은 많지 않다. 리더들이 너무나 쉽게 성공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도 성공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과거 인수합병(M&A)에서의 ‘성공 체험’으로 무리한 인수를 시도했거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면서 방만한 조직 체계와 권위적 문화를 갖게 됐다면 성공의 함정에 빠졌다고 진단할 수 있다. 김원준과 박병엽의 사례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기득권 포기, 뼈를 깎는 혁신 노력이 성공의 함정에서 탈출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반병희 산업부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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