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 깨기 전문 민주당, 몽롱한 한나라당, 힘든 국민

  • 입력 2009년 1월 8일 02시 58분


국회가 20여 일간의 무법천지 끝에 정상화됐지만 국가와 국민에게 끼친 손실은 막대하다. 민생 법안의 처리가 늦어지면서 누구보다도 서민들이 더 힘들어졌고, 경제 살리기 핵심 법안들은 처리 자체가 불투명해져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이 차질을 빚게 됐다. 더구나 이번 여야 합의는 미봉에 불과해 언제 다시 충돌과 파행이 재연될지 모른다.

경제위기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은 막연하게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로 논의가 미뤄졌다.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금산분리 완화 법안도 처리 시기가 명시되지 않았다. 산업은행 민영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합, 5+2 광역경제권 개발 등 주요 법안들도 연장된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되도록 노력하기로만 해 실제 심의과정에서 수정되거나 처리가 미뤄질 수도 있다.

수출이 큰 폭으로 줄고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회의 법안 처리 지연은 금융시스템의 정비를 늦춰 기업파산과 부실채권 증대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예산부수 법안 처리가 당초보다 늦어짐에 따라 정부가 예고해 놓은 각종 재정지출 계획마저도 실기(失機)해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미디어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법안들도 ‘빠른 시일 내 합의 처리 노력’이라는 애매한 합의문 속에 묻혀버렸다.

민생 경제 입법 늦어져 국민 고통 더 커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후유증은 의회정치의 기본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신성한 의사당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난무하고 격투기 선수 뺨치는 난투극까지 벌어졌다. 야만의 시대에나 통할 소수의 폭력, 불법, 떼쓰기 앞에 헌법이 보장한 다수결 원칙은 무릎을 꿇었다. 입법(立法)의 전당이 무법, 떼법의 정글이 됐으니 앞으로 누구에게 법치(法治)를 말할 것인가.

민주당은 점거농성을 마치면서 활짝 웃는 얼굴로 기념촬영까지 할 만큼 승리감을 만끽했다. ‘강한 야당’의 면모를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민심은 민주당의 억지와 불법, 폭력 앞에서 등을 돌렸다.

극렬 투쟁은 표면상 정세균 대표가 이끌었지만 실질적으로는 386 출신인 재선급 의원들이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상징했던 이들은 거친 가두투쟁으로 단련된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노무현 정권의 갈등과 혼란, 비효율이 이미 보여줬듯이 이들은 여당으로서 국민을 잘살게 해줄 생산력은 없고, 야당으로서 집권당을 궁지로 모는 파괴력만 있음을 확인시켰다,

한나라당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경제 살리기, 국가 정상화 입법’이라며 쟁점 법안들을 연내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큰소리쳐놓고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172석의 ‘거여(巨與)’가 82석의 민주당에 시종 끌려다녔다.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치밀한 전략 전술도, 소신도, 용기도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차명진 대변인만이 ‘백기투항’에 대한 책임감과 자괴감으로 사표를 냈을 뿐이다.

대선 戰利品에 혈안 됐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한나라당의 전략부재는 지난해 4월 총선 공천을 포함해 정권의 설계과정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당 대표감이 없어서 공천에서 탈락시킨 사람을 대표에 앉힌 것이 단적인 예다. ‘무원칙, 내 욕심 채우기’ 공천을 주도했던 이재오 이방호 씨의 책임이 역시 크다. 당의 주류라는 친이(親李)계도 이번 사태에서 아무 역할을 못했고, 친박(親朴)계는 수수방관했다. 명색이 여당이라면서 제 손에 피는 안 묻히려는 비겁한 논평가들만 득시글했다. 대선 승리의 전리품을 차지하려고 눈에 핏발을 세우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청와대 또한 바뀐 정치 환경에 대한 적확한 인식 없이 ‘한나라당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일관하는 정치력의 빈곤을 드러냈다. 대통령은 “국회만 도와주면 된다”고 했을 뿐 법안의 절박성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여야 의원들을 설득하는 리더십도 성의도 보이지 못했다.

야당이 대의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회를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동안에도 그 많은 대통령 참모 가운데 국민 설득과 난국 타개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 ‘속도전’ 운운할 때의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이런 ‘약골 웰빙’ 체질로는 당장 2월 임시국회로 미뤄진 ‘2차 입법전쟁’에서도 완패할 가능성이 높고, 그 폐해는 또한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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